이민 간 '전라도 남자', 2000억 대박 난 사연
'호주판 자라(ZARA)' 패스트퓨처브랜즈(FFB) 마 짐 대표, 한국 증시 입성
미국에 '포에버21'에 있다면 호주엔 '밸리걸'이 있다. 두 회사 모두 자라, H&M과 경쟁하는 '패스트패션' 브랜드다.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두 회사 모두 '교포'가 주인이다. 무일푼으로 미국에 가서 30여 년 만에 4조원의 재산을 모아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 400대 부자 가운데서도 상위권인 88위에 올라 화제가 된 포에버21의 장도원 회장은 '아메리칸드림'으로 이미 꽤 알려진 인물.
"주변에서 금의환향이라고 하는데 한국이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국적은 호주지만 한국 사람이다. 말, 문화 음식, 생김새 모두 한국인이다. 그래서 호주 대신 한국 증시에 상장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뿐이다. " 전라도 여수 출신인 마 대표는 성균관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의류 회사에 입사했다. 폴로, 베네통 등을 수입·판매하던 신한, 합동통산 등 국내 의류업체서 10년간 일했다. "내가 잘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은 의류인데 1980년대를 지나 90년대 접어들면서 섬유산업이 사양 산업화되면서 한국에서는 비전을 찾기가 힘들어 이민을 결심하게 됐다." 이민자로 생활하기도 힘든데 언어, 문화적 차이가 큰 외국에서 사업까지 한다면 고난과 역경이 담긴 한편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펼쳐 법도 하지만 그는 담담했다.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없다. 물론,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냐. 인생이 굴곡이고 비즈니스가 굴곡이다. " 마 대표는 오로지 트렌디한 옷으로 사업을 해보자는 게 유일한 목표였다. 지금은 패션업계에서 흔히 쓰이는 말이 된 패스트패션, SPA의 뜻도 몰랐다. 옷장사의 최대 적인 재고를 줄이는 데만 관심을 쏟았다. 재고를 줄이게 위해 손님들이 찾는 옷을 유심히 관찰했고 손님들의 반응에 따라 생산을 조절하다보니 그만의 노하우를 익혔다. "1990년대에 인터넷도 없는 시절에 호주에서 한국 신문을 보겠나. 패스트패션의 본고장인 유럽 신문을 보겠나. 어떻게 하면 재고를 줄일 수 있을까 고민해 상품 주기를 짧게 하는 노하우를 터득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게 '패스트패션'이더라." 호주에서 사업을 시작한 지 10년째 되던 2006년 한국 시장에도 진출했다. 새로 시작한 한국 사업은 '리스크 요인'이라 FFB가 아닌 VBA라는 별도 법인으로 시작했다. 2009년 영업이익 기준으로 한국 사업도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적자의 '터널'을 벗어날 조짐을 보이자 한국 증시 상장을 준비했다. 국내법과 호주법의 차이로 관련 절차들이 복잡해지면서 상장하기까지 2년이 걸렸다. 당초 계획대로 절차를 밟으며 진행해왔는데 하필 상장하는 시점이 유로존 리스크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게 되면서 증시가 급락한 때다. 상대적으로 밸류에이션이 나빠질 수밖에 없어 상장사에게는 불리하다. 2011년 호주 경기가 최악으로 나빠지면서 소매업도 직격탄을 맞아 FFB의 실적도 꺾였다. 여러모로 상장하기에는 좋은 타이밍이 아니다. "그렇다고 상장 계획을 미룰 수도 없었다. 계획대로 진행한 것이고 상장보다는 비즈니스 본연의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상장이 기업이 재도약하는 발판은 될 수 있지만 상장하는 것 자체가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일은 아니다. 본연의 비즈니스가 중요하다." 최대주주는 마 대표와 특수관계인으로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상장 후 최대주주 지분은 70%로 낮아지고 나머지 30%가 공모주가 된다. 마 대표는 "상장하는 기업에 '배드타임'이면 투자자에게 '굿타임'을 의미하는 게 아니냐"며 향후 회사의 성장에 대해 자신감을 내비쳤다. 패스트패션 업계에서는 격전지인 명동에 대형 매장을 내는 게 통과의례로 통한다. 하지만 마 대표는 오히려 1호점인 명동 매장을 접었다. 천청부지로 치솟는 명동 임대료를 감당하며 외형을 키우기 보다는 '내실'에 주력하자는 뜻에서다. "뜬 구름 잡는 일은 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한발 한발해도 실수가 생기는 게 사업인데 뜬구름 잡는 일은 하지 않는다. 열심히는 하지만 분에 넘치는 일은 하지 않은 스타일이다." 현재 호주 시장에서 패스트패션 비중은 5% 가량이다. 호주에서 상위 1~10위 패션회사들은 대부분 업력이 30~40년 넘은 회사다. 8위인 FFB만 16년 된 '뉴페이스'다. "호주 시장에서 3배 정도 커질 룸은 있다고 본다. 꿈은 글로벌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