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평방 틀어박혀 밤샘…연11억 버는 36세男

2012. 8. 9. 08:40분야별 성공 스토리

3평방 틀어박혀 밤샘…연11억 버는 36세男

예술가의 공간 ⑦ 작곡가 조영수 역삼동 작업실
`라라라` `아리랑` 등 차트 1위곡 쏟아낸 산실
"기계로 가득한 좁은 공간이 가장 행복한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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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수는 비좁은 작업실에서 9년간 400곡을 만들었다. 작업실에는 `실패를 두려워 말라/무념무상/나는 최고다`라 쓰여 있는 붓글씨 액자가 놓여 있다. <박상선 기자>

하루 유동인구 100만명에 달하는 서울 강남역. 빼곡하게 들어선 빌딩 숲 뒤쪽으로 10분가량 들어가보면 강남이라는 사실이 믿기 힘든 한적한 단독주택 골목이 나온다. 규모 있는 주택들 사이에서 아담하게 웅크리고 있는 2층 단독주택이 작곡가 조영수(36)가 매일 출근하는 곳이다. 현관문을 열면 바로 나오는 1층 방이 조영수의 작업실이다. 베이스 신시사이저(음을 합성하는 전자악기), 컴퓨터, 스탠딩 마이크, 건반, 스피커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컴퓨터 모니터 앞에 놓인 의자만 조영수에게 허락된 공간이었다. 성인 2명이 들어가기도 비좁은 이 공간에서 그는 오후 4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멜로디를 만들고, 음을 조율하고, 가수의 목소리를 체크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휴가나 휴일은 남의 얘기다. 샤워를 하려고 화장실 갈 때를 빼놓고는 이 방을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만들어진 노래는 널리 퍼져 사랑을 시작한 사람에게 용기를 불어넣었고(`라라라`, SG워너비), 이별로 아파하는 사람을 위로(`미인`, 이기찬)했다.

최근 역삼동 작업실을 찾아갔다. 그는 여전히 녹음실에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정말 음악이 너무 좋아서 하는 거예요. 제 곡이 발표될 때마다 뿌듯하고 기뻐서 녹음실을 떠날 수 없어요. 물론 놀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지만 복귀했을 때 너무 힘들더군요. 그래서 아주 조금씩만 쉬지 계속 일을 해요."

신기하게도 "곡 작업하느라 연애도 엄두가 나지 않는" 그가 쓴 사랑 노래는 공감 가는 가사와 마음을 울리는 멜로디로 대중의 감성을 자극한다.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이승철) `라라라` `아리랑`(SG워너비) `너는 내 운명`(하하) 등 음원차트 1위를 휩쓴 곡을 셀 수가 없다. 지난해 최고의 수입을 올린 작곡가에게 주는 `한국음악저작권대상`도 받았다. 2009년 저작권료만 11억원이 넘었는데 지난해는 이보다 많았다고 한다. 돈 관리를 묻자 그는 "펀드나 주식은 안 하고 착실하게 모으는 편이다. 재테크는 못한다"며 웃었다.

연세대 생명공학과를 다니던 그는 1996년 대학 2학년 때 MBC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으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2003년 전업 작곡가로 들어선 그를 유명 작곡가 박근태가 끌어줬다.

"운이 좋았어요. 신인인데도 박근태 선생님 덕분에 당시 최고로 핫했던 신화 옥주현처럼 `큰 가수들`과 곡을 작업했거든요. 처음에 이름을 알리기가 어려운데, 저는 그런 어려움은 없었던 편이죠."

작업실 구석에 처박혀 있는 서화가 눈에 들어왔다. "실패를 두려워말라/무념무상/나는 최고다" 세 문장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성공의 원인을 운에 돌리지만 그는 주변 사람들이 혀를 내두르는 노력파다. "슬럼프가 잘 안 오는 편이에요. 곡이 안 나올 때는 일부러 더 붙잡고 있어요. 한번 놓기 시작하면 더 붙잡기 힘들더라고요."

책임감도 있다. "가수들은 노래 하나 망하면 다시 뜨기가 힘들어요. 특히 가수랑 친할 때는 더욱 더. 작곡가나 제작자는 다음이 있지만, 가수는 잘나가다가 안 되면 인생이 불안해져요. 제 노래로 인해 가수의 인생이 좌우되니까요."

특정 장르에 천착하는 여타 작곡가와 달리 그는 장기인 미디엄 템포의 발라드곡부터 트로트, 아이돌 노래까지 아우른다. 티아라 `데이바이데이` `너 때문에 미쳐`, 오렌지카라멜 `마법소녀`가 대표적이다.

"신인 때부터 여러 가지 음악을 하자고 생각했어요. 가요계가 아이돌 중심인데 그쪽 노래를 포기하기가 싫었어요. 트렌드를 놓치지 않으려고, 아이돌 노래를 꾸준히 만드는 노력을 하는 거죠."

그는 다작(多作)이다. 9년간 약 400곡 정도 만들었다. 일주일에 1곡꼴로 뽑아낸다. 감정이 떠오르는 대로 멜로디를 붙이고 가사를 입힌다. `한여름밤의 꿈`(SG워너비) `미인`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는 1~2일 만에 녹음을 마쳤다. 모두 힘을 빼고 만들었는데 대박을 쳤다.

"아리랑(SG워너비, 2007년)은 녹음만 한 달 걸렸어요. 국악과 발라드를 접목시켰어요. 국악고등학교를 찾아가 국악부 지휘자한테 악기를 배웠어요. 준비 작업만 한 달이었죠. 곡이 나왔을 때는 서태지와 아이들 `하여가` 때처럼 난리가 날 줄 알았는데 반응은 영 아니었어요. 대박의 기준? 잘 모르겠어요."

올해 생애 처음으로 가수 제작에 도전했다. 지난 3월 데뷔한 2인조 남성 알앤비 그룹 `투빅`이 그의 첫 작품. 멤버 구성부터 앨범 프로듀싱까지 그의 손을 거쳤다.

"작곡가들은 쉽게 말해 하청업자죠. 제작자의 요청에 따라 컨셉트에 맞춰 음악을 써주죠. 그래서 일정 부분 음악적인 불만이 있었어요. 제작은 가수의 처음부터 완성까지 총괄할 수 있잖아요. 너무 재미있고 풀지 못한 음악적 욕심도 풀 수 있어서 시작했어요."

빠르면 10월에는 그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5인조 걸그룹이 나온다.

"SM이나 YG(엔터테인먼트)랑 비슷하면 경쟁력이 없잖아요. 전혀 본 적이 없는 `신기한 걸그룹`이 될 거예요. 푸시캣돌스(5인조 미국 걸그룹)같이 알앤비, 힙합 느낌이 날 것 같아요."

[이선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