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 아이 구하고 두 발 잘린 남성 "사고 후…"

2012. 12. 31. 09:00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그날 이후… 감동 2막] 5세 아이 구하고 두 발 잘린 남성 "사고 후…"

바다 한 번 못 봤다는 아이들 너무 딱해 기차여행 결심
사고 후 아이들이 날 일으켜 - 저마다 편지 들고 병문안 와 눈물이 찔끔 났습니다
빨리 일어나 여행가고 싶었죠… 후회요? 누구라도 그랬을 것
조선일보 | 엄보운 기자 | 입력 2012.12.31 03:19 | 수정 2012.12.31 08:18

 

"새해엔 아이들과 함께 해돋이 보러 강원도 속초로 갈 거예요. 'ITX (준고속열차)'를 타고 가서 생전 처음 동해 바다도 보고, 눈썰매도 타면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할까요."

27일 오후 경기도 부천 역곡역에서 만난 김행균(51) 역장은 다음 달 22일로 예정된 새해맞이 여행 얘기를 꺼내며 활짝 웃어 보였다. 인천 지역 5개 보육원 아이 300명과 동인천역에서 출발해 속초로 가는 1박 2일 기차 여행이다. 김 역장은 "여행도, 바다를 보는 것도 처음인 아이들이 많아 일출 시각부터 간식까지 꼼꼼히 챙기고 있다"고 말했다.

↑ [조선일보] 9년 전 사고로 두 발을 잃었지만 김행균 역곡역장은 달리는 기차가 무섭지 않다. 김 역장은 “보육원 아이들을 제시간에 날씨에 상관없이 목적지로 이동하게 해주는 열차는 ‘좋은 여행 친구’”라고 말했다. 27일 오후 경기 부천 역곡역 인근 선로 앞에서 김 역장이 손을 흔들고 있다. /이준헌 기자

↑ [조선일보]본지 2003년 7월 26일자 A9면에 나온 김행균 당시 서울 영등포역 열차운용팀장 사연. ‘“아이가 위험하다” 몸 던진 철도원’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됐다. / 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해당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여행은 김 역장이 보육원 아이들과 함께 떠나는 여섯 번째 기차 여행이다. 2001년 1월부터 작년 1월까지 다섯 번의 여행에 1600명 넘는 아이가 김 역장을 따라나섰다.

김 역장의 기차 여행은 우연한 계기에서 시작됐다. 2001년 당시 3년째 인천의 한 보육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김 역장은 보육원 아이들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여행'이라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김 역장은 "부모만 있었으면 여기저기 다녔을 아이들이 바다 한번 본 적 없다는 말을 듣고 함께 새해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첫 여행은 소박했다. 보육원 아이 50명과 무궁화호를 타고 정동진에 가서 일출을 보고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김 역장은 "바다를 보며 연방 환호성을 지르는 아이들을 본 뒤 매년 데려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꿈은 김 역장이 서울 영등포역 운용팀장으로 있던 2003년 열차 사고를 당하면서 중단됐다. 그해 7월 25일 김 역장은 기차가 들어오는데도 플랫폼 근처에서 놀고 있던 다섯 살 아이를 구하다 왼쪽 발목과 오른쪽 발등이 잘렸다. 이 사고가 당시 언론에 보도되면서 김 역장은 '아름다운 역무원'으로 불렸다본지 2003년 7월 26일 A9면〉.

김 역장은 이 사고로 5번 이상 수술을 받았다. 발목이 잘린 왼쪽 다리는 의족을 끼우기 위해 무릎 아래까지 절단했다. 발등이 잘린 오른쪽 다리는 인공 피부를 덧씌우고 특수 신발을 신겼다. 진통제와 수면제 없이는 고통을 견딜 수 없는 날들이 이어졌지만, 김 역장은 재활 치료 후 1년 만에 역으로 복귀했다. 김 역장은 "날 돌아오게 한 건 당시 함께 기차 여행을 갔던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사고 후 종일 병실에 누워 있었어요. 답답하고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편지를 들고 병문안을 온 거예요. 눈물이 났습니다. 빨리 일어나서 다시 아이들과 여행을 가고 싶었습니다."

당시 한 아이의 편지에 '저는 해가 뜨는 것을 처음 봤습니다. 저는 저 태양처럼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또 다른 아이는 '저도 역장님처럼 훌륭하고 멋진 사람이 돼 다른 사람에게 좋은 추억을 선물해주고 싶어요'라고 적었다.

김 역장은 복귀 후 방송 출연 등을 통해 만난 유명 인사들에게 '기차 여행'에 대해 설명하며 기부금을 모았다. 2006년 초에는 한 방송국 협찬으로 킬리만자로 등반도 했다.

그는 2010년 전후 신종플루 등이 유행한 때를 제외하곤 2007년부터 매년 1월이면 어김없이 아이들과 기차 여행을 떠났다. 매년 여행에 들어가는 비용 2500만원은 코레일과 아동복지연합 등의 지원금에 그의 사비를 보태 마련했다.

김 역장의 '기차 여행'이 계속되면서 아이들의 편지도 이어졌다. 지금까지 받은 편지만 1200통이 넘는다. 김 역장은 "대학생이나 직장인이 된 아이들도 감사하다며 편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어왔다"고 말했다.

김 역장은 지금도 절뚝거리는 다리로 역사 곳곳을 누빈다. 직접 선로에 내려가 사고사한 시신을 수습한 건만 10건이 넘는다. 그는 "내 사고는 생각나지 않는다. 이렇게 처참하게 삶의 마지막을 맞은 분이 참 안타깝다는 생각만 든다"고 말했다.

9년 전 자신의 사고를 회상하던 김 역장은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뛰어들었고, 역무원이라면 누구나 그랬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살린 아이와 아이 부로모부터 사고 이후 지금까지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을 원망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했다.

"대신 수많은 분의 위로와 관심을 받았잖아요. 민망하게 팬카페까지 생겼고요. 그 아이에 대한 원망은 전혀 없습니다. 제 두 아이처럼 어디서든 잘 크기만 바랄 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