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하락기 치킨게임 벌이는 건설사-조합

2013. 1. 19. 21:57건축 정보 자료실

집값 하락기 치킨게임 벌이는 건설사-조합

  • 조선비즈 강도원 기자
  • 입력 : 2013.01.18 17:04

    “분양가요? 평당 50만원이라도 낮추고 싶지요. 그런데 조합 눈치 보느라 낮추자는 말이 나왔다가도 들어갑니다. 결국엔 비싸서 미분양이 날 게 뻔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네요.”

    한 재건축 시공사 관계자의 푸념이다. 그는 침체된 시장 탓에 조금이라도 낮은 값에 분양하고 싶지만 추가부담금 인상을 우려하는 조합 눈치를 보느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에서 건설사와 조합이 치킨게임(양쪽이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극단적인 상황)을 벌이고 있다. 조금이라도 비싸게 팔겠다는 조합과, 침체된 시장 상황에서 미분양 부담을 줄이기 위해 조금이라도 싸게 팔아야 한다는 건설사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며 분양가 책정을 둘러싼 양측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가 벌어지고 있다.

    건설사는 조합 눈치를, 조합은 조합원들 눈치를 보느라 미분양이 날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고분양가 무덤’을 사업주체 스스로가 파고 있는 것이다.

    ◆ “이건 아닌데…” 눈물 머금고 분양 나서는 건설사

    부동산 활황기에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조합과 건설사 모두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건설사는 대단지 아파트를 수주해 공사를 진행하면 수익이 많이 남았다. 조합은 수백만원씩 조합원들에게 되돌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집값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건설사와 조합 모두에게 골칫거리다.

    건설사는 재건축·재개발 공사에서 조합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조합원이 투표를 통해 시공사를 선정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건설사는 조합에 대해 싫은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그렇다고 조합이 원하는 대로 들어줬다가는 당장 ‘쪽박’ 찰 수도 있는 상황. 사업이 잘못 물릴 경우 미분양으로 공사비도 제때 회수하지 못하고 부채만 떠안을 수도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미분양이 날 걸 뻔히 알면서도 분양가를 낮추자는 말을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 조합원 눈치 보는 조합장

    이런 문제를 조합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분양가를 낮춰야 분양이 잘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분양갸를 낮추기는 쉽지 않다. 당장 분양가를 낮추면 조합원들이 부담해야 하는 ‘추가 분담금’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예컨대 500가구의 아파트를 재건축해 700가구로 재건축할 경우 200가구는 조합원이 아닌 제3자에게 일반분양한다. 200가구를 일반 분양해 발생하는 수익은 조합원들이 새 집으로 들어갈 때 추가로 내야 하는 부담금을 좌지우지 한다. 높은 가격에 분양이 잘 되면 조합원들이 내야 할 돈이 줄어든다.

    조합에서 부동산 불경기를 반영해 일반 분양가를 낮추면 그만큼 조합원들의 분담금이 늘어난다. 갑자기 분담금이 늘어나면 불만을 품은 조합원들이 조합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를 낸다. 조합의 존립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 외면받는 정비사업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요즘은 건설사도 조합도 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을 외면하고 있다.

    최근 서울 태릉현대아파트 재건축조합이 진행한 시공사 입찰에는 건설사가 단 한곳도 참여하지 않았다. 시공사 선정 유찰은 벌써 이번이 두 번째.

    작년에 두 차례나 유찰된 서울 고덕 주공2단지 재건축사업의 시공사 입찰도 상반기에 다시 시행될 예정이다. 조합은 다음 달 초 대의원회의를 거쳐 입찰 조건을 변경하고 2~3월 중 건설사를 대상으로 현장설명회를 갖고, 5~6월 입찰에 나설 예정이다.

    뉴타운·재개발도 지지부진하긴 마찬가지. 서울시는 뉴타운 출구 전략을 통해 ‘추진주체’가 없는 정비예정구역 18곳의 지구지정을 최근 해제했다.

    추진 주체가 있는 70개 구역 중 시범시행 5개 구역은 2월 말에 나머지 65개 구역은 4월쯤 실태조사 결과를 주민에게 통보해 사업 지속 여부에 대한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추진주체가 있는 경우라 해도 사업성이 낮기 때문에 사업 포기 요구도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