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술판'…추락사·자동차 경주까지

2013. 3. 1. 20:09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죽음의 술판'…추락사·자동차 경주까지

연간음주율 94%… 성인 웃돌아 세계일보 | 입력 2013.03.01 18:44 | 수정 2013.03.01 19:34

 

[세계일보]

"소주는 1인당 1병, 맥주는 1600㎖ 피처로 5인당 1병을 준비했습니다."

서울 A대학은 얼마 전 2013학년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하면서 소주(360㎖) 4000병과 맥주(1600㎖) 800병을 소비했다. 신입생과 재학생 2000명이 2박3일 동안 마신 양이다.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한 학생들 대부분이 술밖에 생각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인 것은 당연하다.

이 대학 총학생회장 B(27)씨는 "오리엔테이션 준비에서 가장 신경 쓰는 것 중 하나가 술 준비"라고 말해 대학사회에서 전해지고 있는 '오리엔테이션=술'이라는 상관관계를 뒷받침했다.

최근 서울의 대학 신입생이 엠티(MT)에서 술을 마신 뒤 갑자기 숨진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학생들의 '과도한 음주문화'가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학교 내 음주 금지 등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봄학기 시작과 함께 이어지는 '학교 내 술판'은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다.

1일 각 대학 학생들에 따르면 대학 신입생들은 입학도 하기 전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술을 접한다. 재학생과 신입생이 콘도 등에 모여 2박3일 동안 하는 일은 사실상 음주밖에 없다. 큰 그릇에 소주와 맥주를 섞어 떠 마시는 이른바 '사발주'도 여전하다.

입학 후에도 술자리는 멈출 줄 모르고 이어진다. 대학생 박모(20)씨는 "지난해 3월을 생각만 해도 속이 울렁거린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박씨는 입학 후 매주 각종 신입생 환영회와 엠티에 참석했다. 학과와 동아리, 고등학교 동문회 등 종류도 다양했다. 모임에는 어김없이 술이 등장했고, 술자리는 2, 3차로 이어졌다.

그는 "술독에 빠져 살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중간고사가 코앞이었다"며 "올해 신입생과의 술자리가 벌써 두렵다"고 말했다.

이처럼 도를 넘은 음주는 돌이킬 수 없는 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해마다 대학의 입학이나 축제를 전후해 음주 관련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21일에는 충남 보령의 한 콘도에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한 서울의 한 대학 2학년 김모(20)씨가 술을 마신 뒤 건물에서 떨어져 숨졌다. 지난해 9월에는 대학축제에서 술을 마신 대학생 8명이 차를 몰고 경주를 벌이다 1명이 죽고 1명이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에서 2010년 조사한 '전국 대학생 음주실태'에 따르면 대학생의 연간음주율(1년간 한 잔 이상 술을 마신 경험)은 94.4%로 성인(88.3%)을 웃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이 같은 현실을 개선한다는 이유로 지난해 9월 대학 내 주류 판매와 음주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당시 대학생들은 "무조건 금지해서 해결한다는 발상은 잘못"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일부 대학에서는 대학생들의 과도한 음주가 사망사고로까지 이어지자 '술 없는 오리엔테이션'을 실시해 학생들의 호응을 받고 있다. 서울대는 지난 1월17일부터 2박3일 동안 진행한 '새내기 대학'을 음주 대신 교수들의 강의와 간담회로 진행했다.

신입생들이 '술 때문에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술이 없어도 충분히 재미있었다'는 등의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게 학교 측의 전언이다.

음주문화 전문가들은 "신입생들이 각종 술자리에 불려다니는 봄학기를 전후해 올바른 음주습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몇몇 대학에서 '술 없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오현태 기자 sht9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