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제품을 사면 '잘 사는 삶'인가

2013. 3. 15. 20:16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친환경 제품을 사면 '잘 사는 삶'인가

[그린칼럼]우리 삶을 진짜 친환경으로 만드는 조건

 

 

잘 사는 삶’이란 무엇일까. 이런 갈망은 인간으로서 매우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지향이다. 서구에서 시작된 웰빙(Well-being) 열풍, 한국의 친환경 열풍도 그러한 갈망에 뿌리를 둔다.

서구의 웰빙은 삶에 지친 현대인들을 위한 사회대안운동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삶을 돌보고 새로운 가치를 모색하고자 시작된 웰빙은 한국으로 넘어와선 소비를 부추기는 트렌드이자 또 다른 자본을 양산하는 산업으로 바뀌었다.

한국에서 친환경은 ‘시장’이 되고 ‘산업’이 됐다. 2012년 농림수산식품부는 친환경 유기농 시장이 매해 큰 폭의 성장을 거듭해 2015년에는 5조3000억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이것은 소비자들이 친환경을 단순한 트렌드가 아닌 일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하지만 찬찬히 살펴볼 일이다. 친환경 시장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그 시장에는 '사람'이 있는가. 그들의 ‘얼굴’과 ‘목소리’가 있는가. 이 시장은 어떤 지역적 배경과 가치를 지향하고 있는가. 수조 원을 넘나드는 이 시장 또한 대기업을 더욱 살찌우는 마케팅 전략의 일부 아닌가. 대형 유기농 마트에서 소비로 부를 과시하고자 하는 일부 소비자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은 아닌가.

그래도 다행이다. 최근 들어 사회 곳곳에서 작은 ‘실천’과 ‘행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어떤 이는 비어 있던 베란다와 옥상을 텃밭으로 채우고 사람들을 초대하며 파티를 연다. 주말이면 농부, 예술가, 음악가 할 것 없이 자신이 직접 만든 상품을 들고 나오는 마르쉐나 달시장 같은 친환경 장터가 곳곳에서 열린다.

도시농업이나 지역공동체, 협동조합에 대한 배움의 열망도 활발하다. 지역의 콘텐츠를 살리고 도시의 삶도 존중하는 협업 형태의 비즈니스가 새롭게 시도되기도 한다. 여기서 공통점은 모두 자발적이고 자생적이라는 데에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야말로 생명력 있고, 지속가능하며 실체 있는 행동이다.

지자체의 정책과 지원도 고무적이다. 서울시의 마을공동체 사업뿐만 아니라 사회적 경제 생태계를 위한 기반 조성, 전국적으로는 풀뿌리 경제 활성화를 위한 지역사업과 마을 기업의 움직임이 지역마다 속도의 차이는 있으나 서서히 번져나가고 있다.

친환경적인 삶이란, 삶의 총체가 환경에 친화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환경에는 자연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속한 공동체, 사회도 환경이다. 그리고 그 환경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총체적으로 친환경적인 삶에는 학교폭력 문제도, 자살률 1위 국가라는 불명예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부모가 없는 아이들, 가족이 없는 사람들, 고향이 먼 사람들, 이주민들, 외로운 사람들이 서로 돌보고 건강을 챙기는 삶, 바쁜 도시인들이 조금은 천천히 뒤를 돌아보고 멈출 줄 아는 삶이 친환경적인 삶이다. 도시와 농촌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고,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빈번한 만남이 주선되는 삶, 그 안에서 소통이 있고 작은 경제가 살아나는 삶이 진짜 친환경적인 삶이다.

공동체 회사를 지향하는 우리 회사에서는 최근 제주도에 새로운 둥지를 틀 준비를 하고 있다. 청소년 요리대안학교인 '영셰프스쿨'의 졸업생들이 자립할 일터이자 학교로서 새로운 레스토랑을 열고자 한다. 이 식당은 지역의 농산물로 요리하는 로컬푸드 레스토랑이면서, 지역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커뮤니티 공간이 될 것이다. 시골이 없는 아이들의 새로운 가족과 고향이 되어줄 것이고, 지역의 아동들에게 배움을 나누는 것으로 기여하는 지역 순환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라오스 사람들에게 최고의 가치란 '자신이 태어난 마을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라고 한다. 라오스에서 잘 사는 삶이란 삶의 근원을 되돌아보는 삶인 것이다. 50년 넘게 외형 성장에만 몰두했던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친환경 산업보다는 삶의 근원을 되돌아보는 낮은 자세다.

낮은 자세로 새롭게 발견할,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잘 사는 삶'은 우리 사회의 누구나 이룰 수 있을 만치 '작고 소박한 삶'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