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은커녕…간판 내리는 포장이사·가구업체

2013. 3. 20. 21:41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머니위크 | 노재웅 기자 | 입력 2013.03.20 09:44

 

[[머니위크 커버]주택거래 실종이 남긴 것들/ 포장이사 10곳 중 4곳 '폐업'… 인테리어·가구업체도 '찬바람']

부동산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주택거래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그 후유증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주택 거래량의 감소는 공인중개업자뿐만 아니라 포장이사와 인테리어, 가구 등 관련 생계형 자영업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 등에 따르면 건설·부동산 연관업종 종사자는 약 250만명. 4인 가족 기준으로 1000만명 가까이가 생계의 위협을 받고 있는 셈이다.

부동산시장 관련 생계형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은 수치보다 현장에서 더욱 피부로 와 닿았다. 유명 가구거리는 찾는 손님 하나 없이 휑한 모습이었으며 포장이사업체들의 전화기는 울릴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흔들리고 있는 부동산 생태계 현장을 직접 살펴봤다.

◆폐업…폐업… 문 닫는 점포 속출

"작년에 협회 회원업체 10곳 중 4곳이 폐업했다. 봄철은 포장이사업계가 가장 바빠야 할 시기지만 올해는 역대 최악이라던 작년보다도 더 힘들어졌다."

한국포장이사협회 관계자의 울분 섞인 목소리가 현장의 어려움을 대변했다. 포장이사 종사자들의 앓는 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크다고 그는 토로했다. 포장이사업체는 공인중개업소 못지 않게 부동산경기 흐름에 민감한 곳이다. 주택거래가 뚝 끊기면서 일거리를 한달에 한건 맡기도 힘든 것이 영세포장이사업체의 현실이 됐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말 기준 전국 이사화물주선업체는 4785개로 집계됐다. 2008년 5503개보다 5분의 1가량 감소된 규모다. 협회는 무허가업체가 많은 이사업계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업체들이 문을 닫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협회 측은 "실제 전국적으로 약 3만여업체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각 업체에 종사하고 있는 인력을 10명으로만 추산해도 약 30만명의 포장이사 종사자들이 생업을 잃을 위기에 놓인 것"이라며 "이사업계는 특히 신체 건강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뛰어들 수 있다는 점에서 건설현장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이들이 많이 모인 곳인 만큼 서민경제에 미치는 파급은 더욱 클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협회에 따르면 이사업계는 최근 부동산경기 침체와 더불어 저가 경쟁에 따른 파장과 대기업 프랜차이즈업체 및 연예인 이름을 딴 업체 등과의 경쟁력 약화로 인해 살 길을 모색하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북아현동 가구거리의 한 가구점. 부동산 경기 한파에 손님이 뚝 끊기면서 점포정리를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사 가는 사람 없으니 손님도 '뚝'

인테리어업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최인승 인테리어경영자협회 사무국장은 "폐업처리했다는 회원들의 신고가 이전까지는 1년에 3~4건 정도 들어왔는데, 올해는 1~2월 두달 동안에만 무려 10건 이상의 폐업 신고가 처리됐다"며 인테리어 종사자들의 힘든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인테리어 시공이라는 게 집의 주인이 교체돼야 주문이 들어오고 일감이 생기는데, 올해는 이사철이 됐는데도 불구하고 매매나 전세 거래가 이뤄지지 않다보니 주문량이 대폭 줄었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렇지 않아도 경기가 나쁜 판국에 동반성장을 무시한 일부 대기업들의 횡포까지 늘어나면서 영세업체 사이에서 시공 따내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는 말이 돈다"고 협회 측은 전했다.

유명브랜드라고 해서 사정이 나은 것은 아니다.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모 유명브랜드 인테리어업체 관계자는 "주말에도 하루 종일 손님이 단 2명밖에 찾아오지 않았다"며 "이마저도 계약으로 이어진 건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나마 손님이 많이 찾는다는 브랜드업체도 손님의 발길이 끊어졌을 정도면 영세업체들은 더욱 힘들 것이라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도배 및 장판업체도 부동산경기 침체로 한숨을 내쉬고 있는 업종이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 도배업소 관계자는 "10년 넘게 일해 왔는데 올해 봄만큼 일감이 없었던 기억이 없다"며 "한창 때 비해 수입이 절반 이상 줄었다"고 푸념했다.





◆'점포정리' 나붙은 북아현동 가구거리

지난 13일 직접 찾아간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가구거리에서는 부동산 생태계의 위기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점포정리'라는 문구가 적힌 가게가 곳곳에서 눈길을 끌었다. 이사철인 봄이 왔음을 무색케 할 만큼 거리는 텅텅 빈 모습이었다.

아현동 가구거리에서 30년 넘게 가구점을 운영해왔다는 김모씨는 "작년대비 40~50%가량 매출액이 떨어졌다"며 "직원들에게 월급 주고 매장 임대료 내고 나면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곳 거리 상인들의 번영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는 박모씨 역시 "집값은 계속해서 떨어지기만 하고 부동산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이곳 가구거리도 폭탄을 맞은 기분"이라며 "이제까지 보통 10명의 손님이 방문하면 7명 정도는 거래를 하는 편이었는데 올해는 실수요자가 10명 중 1명꼴"이라고 전했다.

그는 또한 "상인들끼리 단체광고를 내는 등 자구책을 마련해보고 있지만 실질적인 부동산경기 회복이 이뤄지지 않는 한 어려움은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부동산경기 침체의 영향뿐만 아니라 어려운 가계 살림으로 인해 인터넷 구매나 중고 인테리어·가구, 셀프 이사 등이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이 때문에 이들 부동산 관련 생업 종사자들의 어려움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개선될 기미가 없어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부동산 연관 업종이 줄줄이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이 계속되자 업계 전문가들은 주택거래 정상화 방안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앞서 현장에서 만나본 이들 역시 "지금은 부동산업계 종사자들 모두가 박근혜 새 정부만을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라며 하나 같이 정부의 부동산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분양가상한제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며 표류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모두의 바람대로 부동산경기 부양책이 올해 안으로 마련될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 본 기사는 < 머니위크 > (www.moneyweek.co.kr) 제27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