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불자 기록 최대 12년 보관’ 재기 막아”

2013. 3. 20. 21:50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신불자 기록 최대 12년 보관’ 재기 막아”

한겨레 | 입력 2013.03.20 20:40

 

[한겨레]금융위, IMF때 연체정보 실태 파악


한쪽선 "기록 보존기간 단축


채무조정·탕감 등 필요" 지적

외환위기 때인 1997년, 권아무개씨는 거래처인 ㅈ백화점이 부도나면서 수천만원의 납품대금을 받지 못했다. 자금 사정이 악회되면서 권씨 회사도 동반부도가 났다. 권씨의 금융기관 채무는 1억원까지 늘었다. 여기에 부가가치세와 소득세 등 세금까지 낼 수 없었고 결국 2000년 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가 됐다. 16년여가 지난 현재 권씨가 짊어진 금융기관 빚과 체납세금액은 4억원에 이른다. 권씨는 "신용불량자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추심 압박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떻게든 갚아서 재기해보려 했지만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그런 목돈을 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권씨는 은행 이용 등 필요한 금융거래는 아내의 이름을 빌린다.

권씨처럼 당시 채무불이행자가 된 사람들 중에는 '신용사면'을 받더라도 여전히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상환능력을 넘어서는 과다한 빚을 지고 있거나, 추심의 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청와대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위기에 따른 채무불이행자의 신용회복을 꾀하는 방안을 마련 중(<한겨레> 18일치 2면)인 배경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20일 "구제금융 여파로 발생한 선의의 피해자들에게 적용되는 부정적인 신용기록은 최장 12년이어서 대상자가 많이 남아있지 않을 것으로 본다. 현재 구체적인 실태를 파악 중"이라면서고 밝혔다.

현행 신용정보업 감독규정을 보면, 신용정보회사빚을 갚는 날부터 최장 5년 동안 연체기록을 보관해 신용평가에 활용할 수 있다. 법원으로부터 파산·면책 판결을 받으면 파산 확정일로부터 최대 5년 동안 기록을 활용할 수 있다. 원리금이나 세금을 전혀 갚지 않을 경우, 7년이 경과하면 은행연합회는 연체등록을 해제해야 하고, 신용정보회사는 이때부터 5년 동안 연체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 빚을 못 갚고 있더라도 12년이 지나면 연체기록을 신용평가에 활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신용등급과 별개로 채권자는 채권의 소멸시효를 수차례 연장해 채권을 추심할 수 있다. 상법상 채권의 소멸시효는 5년이지만, 채권 금융기관이 법원에 압류신청을 하거나 소송을 제기하면 소멸시효가 연장된다. 세금은 소멸시효 연장이 훨씬 쉽다. 소송을 제기할 필요도 없이 체납자에게 고지서를 보내면 소멸시효를 연장할 수 있다. 사실상 영구적으로 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이헌욱 변호사는 이에 대해 "소송을 통해 채권 소멸시효를 중단할 수 있는 횟수를 제한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유럽에서는 최근 그런 논의가 이뤄지고 있고 실제 횟수 제한을 도입한 나라가 있다"고 말했다.

신용불량자 기록 등 불량신용정보를 삭제한다고 해서 채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닌 만큼 아이엠에프 때 발생한 채무나 세금을 탕감해주는 등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현재 세금은 면책채권에서도 제외돼 법원에 파산신청을 하더라도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는 "결국은 채무조정이나 탕감 같은 방식으로 부실채권을 정리하는 것과 같이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 도덕적 해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심도깊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별개로 연체정보 보존기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행 제도에서는 빚을 갚지 않을 경우 최대 12년, 빚을 갚더라도 5년 동안 연체기록을 보관할 수 있어 장기간 신용등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009년 연체기록 보존기간을 단축해 빚을 갚을 경우 최대 3년, 빚을 갚지 않을 경우 최대 8년 동안만 기록을 보존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 연체기록이 오랫동안 보존돼 금융기관 대출이 어려워 사채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고 취업에도 어려움을 겪는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박아름 기자parka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