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궁이 있는 현대주택…그곳에 살고 싶다

2013. 3. 23. 22:55건축 정보 자료실

[3040 건축가]⑥ 아궁이 있는 현대주택…그곳에 살고 싶다

  • 조선 허성준 기자

  • 입력 : 2013.03.23 09:00

    “신도시 아파트 앞에 단독주택을 짓거나 허허벌판에 집을 세울 때, 집장사가 찍어내듯 만든 낡은 빌라를 카페나 미용실로 리모델링할 때, 부호들이 몰려 산다는 평창동에서 주택을 지을 때도 나는 물었다. 천차만별인 상황 속에서 좋은 주택을 짓는 것은 무엇인가.”

    1970년에 태어나 서울 홍익대학교 인근에서 30여년을 산 정현아(43) 디아건축 소장. 그가 찾은 건축 키워드는 ‘삶’이다. 그는 건축주의 삶을 내밀하게 들여다보는 과정과 시간이 흐른 뒤 건축주의 삶을 예상해 보는 과정, 해당 건축물에서 생활하는 건축주와 주변과의 관계를 살피는 것이 작업의 시작이라고 했다. 그는 건축주의 삶의 방식과 색깔이 집을 통해 드러나는 것을 볼 때 건축은 ‘준공’의 단계를 넘어 ‘완성’의 단계에 진입하는 것을 확인한다. 그제야 그는 애틋한 애인과 같은 건축물을 마음 놓고 떠나보낸다.

    ◆ 건축주에 대한 내밀한 진찰

    “주택은 제한된 필지 안에서 개인 삶의 현재 모습을 담아내는 일이다. 그러나 주변과의 관계를 좀 더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허허벌판에 짓더라도 해당 주택 주변이 어떻게 변할지를 예상해볼 수 있어야 한다. 세월이 흘러 건축주, 그들의 가족이 어떻게 변화해나갈지도 고려해야 한다. 주거의 유형, 방의 구성, 가족이 만나는 방식이 세월이 흘러 어떻게 맞물리게 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해 고민한다.”

    정현아 소장./디아건축 제공

    이 때문에 정 소장은 건축가가 의사와 같은 존재라고 했다. 마치 청진기를 가슴팍에 대고 진찰하는 의사처럼 건축주의 관심사부터 건축주의 삶과 고민을 깊이 있게 진찰해야 한다. 또 전문 지식을 통해 환자·건축주보다 한 발 앞서 해결책을 제시해줘야 한다. 그런 교감을 통해서 건축주에게 꼭 맞는 집이 탄생된다.

    “건축주와 건축가는 갑을 관계지만, 온 힘을 다해 설계한 집이 완공되면 건축가는 섭섭한 마음이 든다. 연애 상대가 다른 사람과 결혼한 느낌이다. 그런데 몇 년 후 그 집에 가보면 집도 건축주에게 맞게 변화해 있다. 결혼해 잘살고 있는 것이다. 건축주의 삶의 방식과 색깔이 집을 통해 드러나는 것을 보면, 건물이 준공을 넘어 완성됐다는 느낌을 받는다.”

    ◆ 정현아式 퓨전 건축, “아궁이 있는 현대주택”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유현리에 있는 ‘횡성주택’은 지난해 준공된 정 소장의 최근작 중 하나다.

    2415㎡의 대지에 2층 규모로 지어진 별장 겸 단독주택이다. 콘크리트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골조를 철골로 세우고 외부를 흙을 다져 마감해 자동으로 습도 조절과 단열이 가능하다.

    안에 들어가면 단출하다. 방 1칸에 거실, 화장실이 전부인 이 현대식 주택에는 아궁이와 구들장이 깔렸다. 땔감을 아궁이에 넣어 불을 때면 향토 방식 그대로 음식을 조리해 먹을 수 있다. 또 그 열기가 구들로 전달돼 온돌 방식으로 방이 데워진다.

    정현아 소장이 설계한 횡성주택. 현대식 주택에 아궁이와 구들을 설치했다./신경섭 사진작가

    “외국 생활을 오래한 건축주가 유년시절 지냈던 시골집에 대한 향수를 전하며 흙과 나무만을 이용해 집을 지어달라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생활방식이 현대적이라는 것을 감안해 접점을 찾고자 했다. 아주 전통적인 재료를 매우 현대적으로 이용한 이유다.”

    건물은 대지의 높이에 따라 긴 박스 형태로 구성됐다. 개인 공간인 구들방은 집을 둘러싼 숲에 가려지게 했고, 훤히 트여 있는 골짜기 방면에는 거실을 배치해 개방감을 더했다.

    “사회와 도시를 읽는 관점, 재료와 구법에 대한 도전과 연구 모두 건축가의 작업과정이다. 공간을 조직하는 논리와 더불어 구조·재료·설비 등 각종 기술적 문제를 얼마나 통합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횡성주택 야간 전경./신경섭 사진작가

    ◆ “싹쓸이식 자본이 지역을 망친다”

    정 소장은 주택 작업을 많이 했지만, 도시건축에 대한 관심이 많다. 홍대 앞에서만 30년을 살아오면서 한 지역의 변화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봤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의 자유와 소통의 메카로 자리 잡았던 홍대는 이제 명동과 다를 바 없는 ‘번화가’가 됐다. ‘유동인구=돈벌이’ 공식이 일반화되고 메뚜기떼처럼 달려드는 자본의 힘을 홍대는 막아낼 수 없었다.

    정 소장은 서울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와 같은 지역의 쇠락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했다.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이른바 오렌지족·X세대로 대표되는 문화가 꽃피웠던 지역들이 다양성을 잃고 있다. 엄청난 자본의 힘 때문이다. 최근엔 지역 쇠락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정책적으로라도 이 속도를 늦춰줘야 한다. 그런데 시(市)는 주차장을 만들고 간판을 세우고 건축허가를 더 많이 내준다. 결국 압구정 로데오거리, 신촌·이대 지역은 색깔을 잃어버렸다. 이곳에 다시 고유한 정체성이 생기고, 문화가 꽃피우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

    정 소장은 번개불에 콩 구워먹듯이 갑자기 우후죽순 생겼다가 어느 날 제 기능을 잃은 건축물을 보면서 지속가능한 도시건축을 고민하게 됐다고 말한다.

    “판박이는 싫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새로운 건축물을 짓고 싶다. 그러나 사회 변화에 잘 적응하는 오래가는 집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공간체계, 재료, 공법, 에너지 효율 등 여러 요소를 통합해 단순하고 명쾌한 해결방식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