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함정 빠진 한국경제

2013. 6. 10. 21:18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정책함정 빠진 한국경제

금리 내려도 되레 소비 줄이고 파격 부동산 대책도 반짝효과 매일경제 | 입력 2013.06.10 17:37 | 수정 2013.06.10 19:51

 

"과연 그래서 내 살림살이는 나아지는 건가?" 국책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소연 씨(가명ㆍ30)는 올해 초부터 나왔던 각종 경기부양 정책의 효과에 대한 신문기사와 자료를 매일 접하고 있지만, 그럴 때마다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17조원의 추경을 했다고는 하지만 그중 12조원은 세수 부족을 메우기 위한 것이고, 나머지 5조원도 2조원가량이 4ㆍ1 부동산 대책에 따른 지방세수 감소분을 지원하기 위해 나간다고 하니 자신에게 돌아오는 몫은 별로 없어 보인다. 한국은행에서 금리를 인하했다고 하는데 당장 집을 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금처럼 위험한 때 카드빚을 내서 소비를 할 것도 아니니 자신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것 같다.

대한민국이 정책 함정(Policy Trap)에 빠졌다. 한은이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내려도 국민은 지갑을 열지 않는다. 정부가 야심 차게 내놓은 4ㆍ1 부동산 활성화 대책에 대한 시장 반응도 '효과를 잘 모르겠다'는 인식이 팽배해지고 있다.

새로 집을 사거나 더 나은 집으로 이사가겠다는 국민은 얼마 되지 않는 반면, 아예 집을 살 의향이 없다는 국민은 점점 늘고 있다.

정부는 추경을 편성했다가 나중에는 '추경으로 어그러진 재정건전성을 2017년까지 회복하겠다'고 밝히면서 시중에 추가로 돈을 풀겠다는 의지를 의심케 만들었다.

매일경제신문과 LG경제연구원이 엠브레인을 통해 대한민국 성인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5월 말 유ㆍ무선 설문조사를 한 결과, 금리가 낮아져도 소비를 현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의견이 68.8%에 달했다. 소비를 늘리겠다(9.4%)는 답변보다는 줄이겠다(18.5%)는 답변이 두 배가량 많았다. '금리 인하→민간소비 증대'라는 기존 통화정책의 개념이 무너지고 있는 셈이다.

이자소득으로 생활하는 은퇴 후 노년층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 가계부채를 지고 있는 저소득층의 경우 제2금융권과 사금융 부채가 많아 기준금리 인하 혜택에서 소외돼 있다는 점 때문으로 분석된다.

4ㆍ1 부동산 대책이 나온 이후 정부가 꺼내 든 부동산 부양책의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의견이 69%를 차지했고, 이번 4ㆍ1 부동산 대책 효과도 금방 사그라질 것이라는 의견이 60%를 넘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도 최근 사석에서 "정부의 경기부양 정책 효과가 떨어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선진국에서도 나오고 있다. 그때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뜯어봐야 한다"고 털어놓았다.

글로벌 경기 침체를 벗어나기 위한 각국의 환율 전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대한민국 경제 사령탑의 정책이 국민에게 먹히지 않고 있다면 심각한 문제다.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와 한은이 정책 함정에서 빠져나오려면 수립 당시부터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해 꼼꼼히 정책을 세우고 한번 공표한 정책은 끝까지 밀어붙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신뢰와 심리가 정책의 생명력을 좌우한다는 얘기다. ■ <용어설명> ▷ 정책함정(Policy Trap):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ㆍ통화ㆍ부동산 정책을 펴도 민간심리가 움직이지 않으며 함정에 빠진 것처럼 정책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현상. 케인스는 시장에 돈이 넘쳐도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을 유동성 함정으로 표현했다.

[전범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