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광고, 거저 만들어 드려요”

2013. 8. 25. 20:54C.E.O 경영 자료

블로터 넷 정보라 | 2013. 08. 25

얼마 전 아주 신기한 곳에 다녀왔다. 광고를 만드는데 광고로 돈을 벌지는 않겠다는 곳이었다. 바로 8월15일 창립한 독립광고협회다.

광고를 만들지만, 광고로 돈 벌지 않겠다

독립광고협회는 광고를 만들어 인터넷에 뿌린다. 유튜브와 비메오, 페이스북, 트위터를 광고판으로 삼는다. 광고할 돈이 없는 곳을 광고해 주겠단다. 그렇지, 광고로 돈을 벌려면 굳이 협회를 만들 까닭이 없다.

잠깐, 돈 벌 생각이 없다니. 그럼 직원에게 월급을 주고, 광고를 만들 돈은 어떻게 구할까. 사무실 임대료를 낼 돈은 있는지 걱정부터 들었다.

박정화 독립광고협회 대표는 “제가 뷰티풀펠로우예요, 하하”라고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그는 2012년 아름다운가게가 운영하는 사회혁신기업가에게 3년 동안 월 150만원 지원하는 뷰티풀펠로우 프로그램에 뽑혔다. 이 돈으로 독립광고협회를 운영한다는 얘기다.

그리고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청년 등 사회적기업 육성과정’, 정몽구재단의 ‘H-온드림’, 서울벤처처파트너스서울 등 각종 지원 프로그램에 뽑혀 운영 비용을 2억원 가까이 구했다.

박정화 대표는 “우리는 광고로 인간의 행복에 도움을 주는 단체”라며 “돈 없이도 광고를 만들고 틀 수 있게 하는 방법을 고민한다”라고 독립광고협회를 소개했다. 광고를 만드는 재능을 기부하는 곳이란 얘기다.

▲박정화 대표(왼쪽)와 김수현 씨. 나머지 두 직원은 휴가를 떠나 함께하지 못했다.

“광고 만드는 사람을 ‘자본주의의 예술가’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전 단순해요. 젊을 때 배운 기술로 더 많은 사람이 도움을 받으면 좋겠어요. 저처럼 대리급 되는 사람이, ‘찌라시 만들 때 고민이 들면 전화하라’라고 해서 도움을 줄 수도 있거든요. 의사들이 의료 봉사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그런데 이런 거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별 것 아닌데….”

“광고 불평등이란 말을 들어봤나요? 광고 회사에 다니며 제가 하는 일이 부자가 더 부자가 되게 만드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부분 기업은 광고할 기회조차 없지요. 비용의 장벽이 있기 때문인데요. 돈 많인 기업이 광고를 내보일 미디어를 독점해서지요. 인디씨에프의 기조는 ‘돈 없어도 광고할 수 있어야 한다’예요.”

(2012년 8월 기사 “광고불평등, 들어봤나요?”  중에서 박정화 대표의 말)

거짓말하지 않는 광고 만들고, 돈 없는 곳 광고하고파

그는 홍대 판화과를 졸업하고 광고 기획자로 5년, 광고 조감독으로 2년을 일했다. 일하면서 굵직한 광고도 맡았다. 주로 통신・중공업・건설・자동차・카드・금융・가전・식품회사 등 대기업 광고를 만들었다. 그렇게 광고쟁이로 일하면서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직한 기업이 아닌데 바람직한 곳인 것처럼 광고를 만들어야 하고, 환경을 생각하지 않는 기업인데 친환경 기업으로 포장하고 싶지 않아진 게다. 광고주 입김에 광고 방향이 오락가락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광고 회사에 들어가는 건 쉽지 않다. 그곳에서 기획자로 일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광고 기획자로 들어간 회사의 입사 동기 4명 중 박정화 대표만 정규직이 됐다. 그런데도 그는 그 일을 그만두고 나왔다.

“선배들이 그랬어요. ‘너 돌았구나’라고요.”

▲독립광고협회는 박정화 대표가 광고회사를 나온 까닭을 광고로 만들었다. 이 광고의 제목은 ‘광고인 개과천선’이다.

그러고서 2012년 독립광고협회의 전신인 ‘인디씨에프’를 차렸다. 같은 대학 예술학과에 다니던 유은정 씨와 박정희 대표가 애니메이션 강사로 일하며 학생 중에 눈여겨 본 김수현 씨에게 함께 일을 하자고 제안했다. 실은 두 사람이 ‘나보다 그쪽이 하는 게 좋겠다’라고 서로 미뤘는데 박정화 대표가 ‘그럼 둘다 채용하겠다’라고 하여 반강제로 붙들었다. (채용 과정은 인디씨에프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자세하게 나왔다. ☞보러가기)

인디씨에프는 2012년 8월15일 첫 광고를 세상에 틀었다. 서울 이문동에 있는 ‘작은공간’이라는 슈퍼마켓을 알리는 동영상을 만들었다. 이 동영상을 ‘만능공간 작은공간 슈퍼’라는 이름으로 유튜브와 비메오에 올렸다. 그리고 곧바로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작년에 보도가 제법 됐어요. 우리에게 있는 역량보다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해요.”

▲독립광고협회의 전신인 인디씨에프의 첫 광고 ‘만능공간 작은공간 슈퍼’

성적이 별로라고? 그래도 우린 계속한다

헌데 정작 광고에 대한 사람들 반응이 별로였다. 1년 동안 유튜브 조회수가 1천건을 넘지 않았다. 광고라는 게 회사나 제품 같은 걸 널리 알리는 건데, 성적만 보면 이 동영상을 ‘광고’라고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다.

1년 동안 만든 나머지 ‘우유팩의 착한변신 코주부’, ‘개미스폰서 개미팡’, ‘청파동 사진관’의 성적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2년 8월께 박정화 대표는 전화 인터뷰를 하며 개인이 광고판이 되어 소셜미디어로 광고한 가게나 기업의 입소문을 내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얘기를 떠올리는 게 머쓱할 만큼 인디씨에프가 만든 광고는 성적이 좋지 않다.

그런데도 박정화 대표는 이번에 인디씨에프를 8월15일 사단법인 독립광고협회로 만들었다. 회원은 100명 넘게 모았다. 이 날은 1년 전 인디씨에프가 첫 광고를 튼 날이다.

“하려는 건 지금이나 그때나 똑같아요. 사람들이 모여서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서 사단법인, 협동조합, 비영리 민간단체, 주식회사가 될 수 있어요. 그 중에서 고민을 하다가 매체를 기부 받으려면 투명하게 운영하고, 비영리로 운영하는 게 신뢰를 얻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비영리 사단법인을 만들자고 했죠.”

▲독립광고협회가 광고로 전하고 싶은 건 위 이미지와 같은 얘기다. ☞이미지 크게 보기

독립광고협회는 인디씨에프 때와 마찬가지로 광고로 돈을 버는 걸 목표로 삼지 않는단다. 설령 수익이 나도 나중에 만들 광고 제작비로 쓴다. 아니면 독립광고를 만드는 법을 가르칠 계획이다. 아예 독립광고 학회를 만들 생각도 한다.

박정화 대표의 얘기를 죽 듣고 나서 ‘계속 할 수 있겠느냐’라는 질문이 저절로 나왔다. 그러자 그는 “질문이 잘못됐다”라며 “답 없는 질문을 왜 하죠”라고 되물었다.

“생존할 방법을 찾아야지, ‘생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답을 찾기가 어려워요.” ’잘 될까?’, ‘할 수 있을까?’를 걱정할 시간에 ‘어떻게 하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그는 동영상 광고의 성적이 좋지 않은 데에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광고 회사에 있을 때 만든 광고는 TV에 실렸다. 만들기만 하면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보였다.

하지만 온라인으로만 광고를 트는 건 한계가 있다. 웬만큼 화제를 일으키지 않고서는 관심을 끌기 어렵다. 유튜브로 세계에 화제를 일으키는 건 싸이 정도가 아니고선 아무에게 오는 기회가 아니다.

“폭주할 줄 알았어요. 광고도 괜찮았고요. (생각한 것과 결과가 달라서) 괴로웠죠. 회사 열고 한두 달 앓았어요. 이런 게 너무 낯설었어요. 정서적으로, 상황적으로 힘들었고 제 능령과 조직의 한계를 깨달았죠.”

괜히 이런 얘기를 꺼냈나는 후회가 들 때 그가 “내년에 대박을 쳐야해요”라고 힘있게 말했다.

“인천 공항에 있는 옥외 전광판을 운영하는 쪽에서 매체를 기부하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올 가을께 교육 사업도 할 거에요. 약간의 참가비를 받아서 이슈 하나를 가지고 광고를 만드는데 과정이에요. 사회적 기업이나 비영리 단체가 만들고도 틀 곳이 없어서 묵힌 광고를 많은 사람에게 소개하는 일도 할 거예요.”

박정화 대표는 독립광고협회가 광고를 만드는 사람이 찾아오는 일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개발자는 치킨집한다고 들었는데요. 광고하는 사람은 직업 수명이 참 짧아요. 일하는 사람 중에 40대가 없어요. 가로수길에 술집을 열죠. 우리가 잘 되고 한 달에 한 번 광고를 만들면 기획자, 촬영감독, 연출자 등을 뽑을 수 있을 거예요. 정말 잘하는 사람이 가치 있는 일에 자기 재능을 쓰면 좋겠어요.”

독립광고협회는 조만간 IT 기업을 위한 광고를 만들 계획이다. 지금은 광고할 기업을 물색하는 중이다. 관심 있는 기업은, 또는 추천할 기업이 있는 사람은 독립광고협회에 문의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