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4. 26. 20:44ㆍ건축 정보 자료실
[테크 트렌드] 인류사 새로 쓸 중국의 도시 이주 프로젝트
매년 1조 위안 도시화에 투입…개발 연대 거친 한국에 큰 기회 될 수도
지난 3월 중국 정부는 '대륙의 스케일'에 걸맞은 장대한 '신형도시화 규획 2014~2020'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10여 년 내로 시골에 있는 인구 2억5000만 명을 도시로 이주시켜 도시 거주 인구 비율을 현재 53.7%에서 2020년까지 60% 이상으로 끌어 올리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 정부는 매년 1조 위안 이상의 재원을 투입해 궁극적으로는 42조 위안(약 7000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경제 효과를 불러일으킬 계획이다. 각국 언론이 이야기하는 대로 '세계 역사상 최대의 이주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개발 연대에 강력한 국가 주도의 도시화 정책을 겪으며 도시 중심의 주거 형태가 정착된 한국에서는 도시화라는 용어가 구시대적인 느낌마저 주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보면 이렇게 중국과 인도를 필두로 하는 도시화야말로 글로벌 경제와 기술 트렌드를 뒤흔드는 강력한 동력이다. 낙관적인 예상으로도 2030년까지 인류는 추가로 13억~14억 명 이상이 도시로 유입돼 세계 인구 90억 명(2030년 예상) 가운데 절반이 도시에 거주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이 막대한 도시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도시의 넓이도 120만 ㎢ 이상이 증가해 현재의 3배 이상으로 뛰어오를 전망이다. 한국이 재빨리 경제성장의 차를 잡아탄 1970~2000년대 세계 도시권 면적이 고작 6만 ㎢ 정도 증가했던 것을 생각하면 가까운 미래에 닥칠 도시화의 규모가 얼마나 거대한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도시화가 각종 건설·토목 경기를 부양하고 경제를 일으키는 효과는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직접적인 효용이다. 하지만 도시화가 이미 충분히 이뤄지고 이제는 귀촌을 꿈꾸기도 하는 한국에서 본다면 득보다 실이 많을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신도시를 건설할 때마다 들썩여 온 부동산 가격, 그 속에서 토지 보상금과 함께 벼락부자가 된 소유주와 거리에 나앉은 세입자의 모습이 겹쳐지고 한가롭던 시골이 자동차와 공장이 내뿜는 매연으로 더럽혀진 과거를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그런 부작용을 반복해 가며 왜 저런 공격적인 도시화를 하려고 할까. 그러나 도시화에는 그런 어두운 측면만으로 외면하기 어려운 가치가 있고 바로 그 어두움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의 도약이 이뤄지기도 한다. 도시는 단순히 거대한 건물과 도로·철도 등 교통망, 수도·에너지 배급망 등의 물리적 집합체가 아니다. 물적 인프라만 놓고 도시의 가치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일지 모른다. 이를 뛰어넘는 도시의 핵심 기능은 수많은 인간과 인간이 가깝게 모여 활발하게 교류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는 데 있다.
혁신 용광로의 불을 지피는 도시화
실제로 역사적으로 보나, 과학적으로 보나 인간이 모이는 것이 지식 활동을 촉진한다는 사실은 다각도로 증명된다. 미국 산타페연구소의 연구진이 실증한 바에 따르면 도시의 크기가 2배가 될 때마다 1인당 창출해 내는 (특허와 같은) 지식의 산물은 15%씩 증가한다. 도시가 커질수록 지식 창출의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그만큼 더 강력한 성장의 동력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국이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의 전환기에 세계적인 주자로 도약할 수 있었던 요인의 하나로 높은 도시화율이 지적된 것도 그 예다. 인구 대부분이 대도시 속의 아파트·다세대주택에 밀집해 있다 보니 우수한 통신 인프라를 설치하는 비용이 절감되고 뒤이어 온·오프라인의 정보 교류가 함께 폭증하다 보니 유행에 극도로 민감하고 역동적인 사회가 된 것이 지난 20여 년간 한국의 궤적이었다. 신형 도시화 정책을 발표하면서 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가 공공연히 한국을 벤치마킹 모델로 내세운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음미해야 한다. 진정한 미래 지식 선도 국가라는 '중국의 꿈'을 향한 도약을 이루려면 더욱 거대한 혁신의 용광로를 만들어야 한다는 비전이 담겨 있다.
도시화의 또 다른 장점은 자원 이용의 효율성을 높여준다는 점이다. 닭장처럼 들어찬 아파트와 쉴 새 없이 사람을 쏟아내는 버스와 지하철은 숨 막혀 보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인간 활동에 따른 오염과 훼손의 범위를 좁혀 주는 효과도 있다. 선진국의 거대도시들을 보면 정작 비도시 지역에 비해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적고 주민들의 평균 수명도 길다. 도시는 인간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시설을 집적함으로써 이동에 소모하는 자원을 최소화하고 후생도 증진시키는 기능이 있다. 집중화된 에너지 공급과 오·폐수 처리 시설이 운영됨으로써 생태에 미치는 충격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신흥국들이 꿈꾸는 도시화도 결국에는 최단시간 내에 이런 선진 도시로 변모하는 것이다. 중국만 해도 지난 10여 년간 초기 도시화 과정에서 난개발된 도시 문제에 대한 반성이 이어지고 있다. 선진국도 겪었던 최악의 거주 환경, 위생 상태 속에 빈민굴이 창궐하던 도시가 아닌 깔끔한 환경 친화적 고효율 도시로 건너뛰려는 다양한 실험이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는 것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현재 중국 에너지 소비의 36%가 건물에서 이뤄지고 있는데, 전 세계적인 친환경 건축 트렌드의 도입을 가속화해 에너지 절감의 주 전선으로 삼는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중국 정부는 2014년부터 공공 건축물에 친환경 건축 인증을 의무화하고 이를 단계적으로 높여 2020년에는 인증 수준을 30%, 2050년에는 100%까지 높일 계획이다. 또한 도시를 뒤덮는 자동차의 필요를 줄이도록 방대한 친환경 대중교통 체계를 구축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친환경 고효율 성장의 최전선
이러한 움직임은 당연히 당장 우리가 해결해야 할 수많은 기술적인 과제를 쏟아내고 있다. 직접적으로는 건물 단열재라든지 친환경 소재, 화학약품에 덜 의존하는 정화 설비, 폐열이나 폐수를 회수하는 장치 등 다양한 요소 기술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각종 인프라와 거기서 일어나는 자원 활용 상태를 도시 단위로 통합 관리하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도시 전체의 교통 상황을 단순 모니터링하는 것에서 벗어나 개별 차량에 어디어디로 돌아가라고 적극적으로 지시함으로써 교통량을 분산하고 효율적인 도로 사용을 촉진한다. 마찬가지로 전기·수도·가스 등 다양한 에너지원도 어딘가 낭비되고 있는 지점, 부족한 지점을 찾아 즉시 서로 채워주는 기술도 요구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도시를 만들어 가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그 유기체의 견실한 세포 하나하나뿐만 아니라 이를 엮어주는 신경망과 두뇌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에 맞닥뜨리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연말부터 '상속자들', '별에서 온 그대' 등 드라마가 중국 시청자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우리는 새삼스레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해 가는 '한류'의 위력을 엿볼 수 있었다. 초기 한류가 동아시아의 공통적인 정서가 공감을 일으킨 바가 컸다면 이제는 중국인들의 시선이 이미 한 발 앞서 도시화를 이뤄 낸 한국의 생활상 하나하나까지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천송이가 즐기던 '치맥'이나 각종 의상·소품뿐만 아니라 도민준 교수가 자연스럽게 이용하던 지문인식 도어록, 각종 인테리어 제품, 빌딩 관리 솔루션까지 갑자기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우리 눈앞에 펼쳐진 중국과 세계 곳곳의 신흥국이 밀어붙이는 거대한 도시화 트렌드는 더욱 광범위한 '테크 한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앞으로 40년간 펼쳐질 도시화가 지난 4000년 동안의 도시화 규모를 뛰어넘는다는 이 시대에 우리는 가장 최근에 도시화를 성공적으로 진척시켜 온 경험을 갖고 있으며 미래에 요구되는 기술을 발전시킬 ICT 분야의 역량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쟁의 폐허 뒤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여기까지 발전시켜 온 이 과밀한 도시들이 단순히 해소해야 할 굴레가 아니라 귀중한 기반이라는 인식의 전환일 것이다. 우리는 이 속에서 앞서 이야기한 대로 보다 많은 혁신이 일어나고, 살기 좋고, 효율적인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다양한 기술적인 실험을 이어가야 한다. 우리가 매일 지혜를 짜내며 변화를 시도하고 적응해 가는 그런 모습이 나날이 고도화되는 각종 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에 비쳐질 때 어느새 우리는 글로벌 테크 트렌드의 당당한 한 축으로 각인돼 갈 것이다.
채승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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