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목항에서의 열나흘, 잔인한 '시신 확인'의 나날들
2014. 4. 29. 22:33ㆍ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팽목항에서의 열나흘, 잔인한 '시신 확인'의 나날들
[[세월호 참사]희망은 체념, 분노로…"얼굴 한 번 제대로 만져봤으면"]
세월호 여객선 침몰 사고 13일째인 28일 오후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한 여성이 기도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
세월호 침몰 13일째인 28일 오후 2시30분쯤. 우중충한 날씨마냥 축 가라앉은 팽목항 가족대책본부가 웬일로 술렁였다. "우리 아들은 키가 175 정도야." 한 아버지가 천막을 나왔다.
189번째 사망자 종이가 붙었다. 연이은 악천후로 시신 수습마저 뜸한 요즘, 이젠 희생자 쪽지가 반가운 소식이 됐다. 189번째 사망자는 '신원 미상. 남자'였다. 4층 좌현 3번째 객실에서 오후 2시10분쯤 수습됐다.
실종자 부모들은 천막에 들어가 189번째 사망자의 키와 인상착의 등을 듣고 나왔다. 자신의 아들이라고 예감한 이들은 잠시 눈물을 보인 후 시신확인소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어떤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아닌 걸 확인하고 울었다.
한 아버지는 시신확인소 쪽으로 좀처럼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매점에 들러 맥주 한 캔을 들이켜며 눈물을 흘렸다. 줄담배를 피우며 바다를 응시한 채 한숨을 내뱉었다.
오후 4시20분, 시신 한 구가 팽목항으로 들어왔다.
◇"이번엔 내 아이일까"…'시신 확인'의 나날들
한참을 망설이다 시신확인소로 간 아버지. 그러나 이번에도 그의 아들은 아니었다. "키 185cm라고 해서 맞다고 생각했는데, 확실하다고 생각했는데 안타까워. 직접 보니 생각 외로 아니야. 아 이번엔 진짜 내 아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다 맞았는데 로고 색깔이 달랐다. 아들이 입은 트레이닝복의 아디다스 로고는 검은 색이었는데 189번째 사망자는 빨간 로고 차림이었다.
'시신 확인'은 내 아이를 찾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절차다. 희생자가 신분증을 지참해 신원확인이 즉시 되지 않는 한 많은 부모들이 같은 시신을 열어봐야 한다. 찾은 사람은 떠나지만, 남겨진 사람들은 앞으로 몇 번이나 시신을 더 봐야 할 지 알 수 없다. 한 아버지는 계속 시신을 본 충격으로 쓰러져 링거를 맞았다. 이후 병원복을 입고 팽목항을 지켰다.
한 실종자 부모는 "시신 확인하러 몇 번을 갔는지 모른다"며 "내 딸은 귀걸이 안 한다. 귀걸이 했다고 하는 아이 말고 150~160cm 신원미상 여자아이는 무조건 찾아가 봤다"고 말했다.
단원고에 첫째 딸을 둔 아버지(53)도 "170번대까지 긴머리에 키가 일치하면 다 찾아가 봤는데 그다음부터는 금니를 했다고 해서 우리 딸아이는 아닌 것 같아 안 가봤다"고 말했다.
이 아버지는 맞벌이를 하느라 사고 당일 딸이 무슨 옷을 입고 갔는지 보지 못한 게 못내 한스럽다. 부인은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밥도 못 먹고 링거를 맞고 있다. 늦장가 가서 낳은 예쁜 딸. 수학여행가기 전날 아내 몰래 용돈을 5만원 쥐어줬는데 그걸 바로 엄마한테 알릴 정도로 딸은 착했다.
아버지는 "딸이 속한 2반은 생존자들이 있었다. 2반 카톡을 보면 다 손잡고 나왔는데 뒤엉켰다고 한다"며 "그저 우리 애를 빨리 찾아줬으면 좋겠다. 그것밖에 없다. 겨우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 12일째인 27일 전남 진도 팽목항에 실종자 가족들이 적은 '우리 아이들 물속에서 춥다 빨리 데려와'라고 적은 메시지가 빗물에 젖어 있다. /사진=뉴스1 |
◇14일의 기다림, 희망과 체념, 분노 사이에서
'14일'. 희망이 절망으로, 다시 체념과 분노로 변한 시간이다. 14일 간 변함없이 시신이 수습됐다는 방송이 나올 때면 실종자 가족들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시신 확인소로 뛰어갔다.
초반엔 '내 아이는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자신의 가족이 아님을 확인하고 뒤돌아서면, 남은 건 한없는 기다림. 그래도 마지막 희망을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요즘은 시신을 찾으면 '축하한다'는 말을 듣게 됐다. 수색이 장기화되면서 시신이 유실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수습이 늦어지면서 시신의 훼손 정도도 심해질 것이라는 걱정이 가족들을 지배하고 있다.
가족을 찾은 뒤에도 정신적 외상은 오래 남는다. 한 40대 중반 남성은 사촌여동생 시신을 확인한 후 여동생이 계속 떠올라 경찰청 심리지원센터를 찾았다. 스트레스와 불면 증세가 심해지고 생각을 안 하려 해도 당시 상황이 상상된다며 불안을 호소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9일째인 24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들과 시민들이 사고해역쪽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뉴스1 |
팽목항의 저녁, 기다림에 지친 가족들의 자책과 분노가 쏟아진다. 실종자 어머니 3명은 모여서 "아이들 못 찾으면 다 부모 잘못이야, 다 죽어야 돼. 찾을 때 까지 기다릴 거고 그놈의 선장 바다에 쳐 넣어버려야 해"라고 언성을 높였다.
한 어머니는 "아이는 바다에 처넣어놓고 밥이 넘어간다는 게 웃긴 거야. 살고는 있지, 어떻게 사는지가 문제지"라며 자책했다. 아들을 둔 아버지는 "새끼 덩치도 크면서 그 유리창 하나 못 깨고 나왔는지, 생각하면 분하고 화가 나"라고 눈물을 글썽였다.
또 다른 아버지는 "시신 부패가 심해지고 있다. 마지막 가는 길 얼굴 한 번 제대로 만져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내비쳤다.
깊은 밤, 바다를 향해 아이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는 부모들의 모습은 팽목항의 일상적 풍경이 됐다. 불러도 대답 없는 바다. 팽목항은 오늘도 울고 있다.
진도(전남)=박소연기자 soyun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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