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 100년…곳곳서 3차대전 경고음

2014. 6. 28. 19:25이슈 뉴스스크랩

1차 세계대전 100년…곳곳서 3차대전 경고음

 

매일경제


지금부터 100년 전 1914년 6월 28일은 인류역사상 첫 세계대전의 단초인 사라예보 사건이 일어난 때다. 사라예보 사건을 기점으로 유럽에 돈 전운은 한 달 후쯤 '실제'가 된다.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세계는 큰 변화를 겪게 된다. 기존 유럽 중심의 글로벌 체제가 무너지고 당시 신흥 강대국으로 떠오르는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가 만들어진다. 국제사회는 이후 또 한 번의 인류 전체의 '패싸움'인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더 이상 이 같은 전쟁은 없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고 그 결과물로 국제연합을 탄생시킨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대전의 그림자는 국제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 다시 고개드는 민족주의

지난 5월 실시된 유럽의회 선거는 지구촌을 깜짝 놀라게 했다. 어느 정도 예상됐지만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극우성향의 유럽 각국 정당들이 돌풍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유럽 통합을 주도했던 프랑스를 포함해 영국 그리스 등에서 극우정당은 제1당으로 올라서거나 과거와는 다른 수준의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유럽 민족주의성향은 1차 세계대전 발발의 원인 중 하나다. 사라예보 사건은 세르비아 청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저격한 사건이다. 세르비아는 당시 발칸 민족주의를 추구했다. 세르비아는 러시아를 등에 업었고, 오스트리아는 독일과 손을 잡았다. 당시 떠오르는 국가였던 독일도 강한 민족주의 성향을 보이고 있었다.

이 때문에 최근 유럽에서 부는 민족주의 바람에 우려 섞인 시각이 있다. 더구나 이 민족주의는 근래 글로벌 차원에서도 몰아치며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일본의 아베 신조 정권이 대표적이다. 아베 총리가 군대 위안부 문제 등 세계가 인정하는 자신들의 과거사에 대해 왜곡된 시각을 고수하며 중국 한국 등 주변국들과의 긴장관계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크림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갈등도 따지고 보면 그 자락에는 민족주의가 깔려 있다.

◆ 강대국 패권다툼도 재연

기존 국제질서를 위협하는 글로벌 패권 다툼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도 100년 전과 서로 닮은 꼴이다.

1차 세계대전 발발의 단초가 사라예보 사건이긴 하지만 당시 신흥강대국인 독일과 기존 패권국인 영국의 대립 관계도 전쟁 원인 중 하나라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당시 양국은 식민지 확보를 둘러싸고 첨예한 경쟁을 벌였고, 힘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군비경쟁도 치열하게 벌였다. 이 두 국가는 1차 세계대전 직전 군함 건조에 열을 올렸는데, 1906년부터 1912년 6년 동안 영국은 29척, 독일은 17척의 배를 건조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이 기간 해군 예산은 독일의 경우 2배, 영국은 40%나 증가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군비 경쟁은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는 동북아 지역에서도 재현되고 있다. 글로벌 패권을 노리고 있는 중국과 주도권을 지키려는 일본은 센카쿠를 둘러싼 영토 분쟁을 벌이며 군비경쟁에 몰두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10년간 170%에 달하는 군비를 올렸고, 아베 신조 정권도 11년 만에 지난해 군비를 증강시켰다. 물론 미국과 중국의 패권다툼도 빼놓을 수 없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올 1월 다보스포럼에서 중국과 일본의 갈등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영국과 독일의 상황에 빗대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 중동 불안도 1차 대전의 잔재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는 중동 문제도 따지고 보면 1차 세계대전의 연장선상이다. 현재 중동 지도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이 지역을 다스리던 오스만제국이 사라지면서 만들어졌다. 당시 오스만 제국은 독일 오스트리아 등 국가와 손을 잡았다. 전쟁에 패한 결과는 오스만제국의 와해였다. 이후 영국과 프랑스는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중동을 나눠버렸다.

오스만제국은 터키, 시리아, 팔레스타인, 예멘, 메소포타미아(현재 이집트) 등 5개국으로 나눠졌다. 이 과정에서 영국의 꼼수도 있었다.

전후 영국과 프랑스는 비밀리에 영국의 팔레스타인 지배를 합의하는 사이크스-피코 조약을 맺는다. 하지만 이는 영국이 아랍민족에 했던 기존의 약속을 저버린 조치였다. 영국은 전쟁 와중에 아랍민족에 독립을 약속하며 오스만제국에 등을 돌리라고 했고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슈피겔은 "영국과 프랑스의 욕심이 중동에 역사적인 부담을 안겼다"고 꼬집었다.

전쟁당사자였던 영국, 프랑스, 독일을 포함한 28개국 유럽연합(EU) 정상들은 26일 1차 세계대전 격전지 중의 한 곳이었던 벨기에 서부 이프레스지역을 방문해 추모행사를 가졌다.

[문수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