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청년 노숙 1200명, 내 이름은 드림리스

2014. 7. 2. 19:09이슈 뉴스스크랩

[젊어진 수요일] 청춘 카툰리포트 - 서울 '절망의 섬' 이야기

 

2030 청년 노숙 1200명, 내 이름은 드림리스

중앙일보

노숙인의 영어 표기는 홈리스(homeless)입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집(home)이 없어(less) 거리를 떠도는 홈리스가 전국에 1만2656명이 있다고 합니다(2013년 12월 기준). 걱정되는 것은 홈리스 행렬에 20~30대 청춘들이 합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보건복지부는 전체 홈리스의 약 10%가 2030 세대인 것으로 추정합니다. 전국에 1200명 남짓한 ‘청년 노숙인’이 있다는 얘기죠. 청춘리포트는 서울역 인근에서 스물아홉 살의 한 청년 노숙인을 만났습니다. 심층 인터뷰를 통해 청춘 세대가 노숙인으로 주저앉게 된 사연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꿈이 없다”고 했습니다. 요컨대 청년 노숙인은 ‘홈리스’라기보다 ‘드림리스(dreamless)’인 것입니다. 미래세대인 20~30대가 꿈을 잃고 노숙인으로 전락하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합니다. 청년 노숙인의 이야기를 ‘카툰리포트(cartoon report)’란 새로운 기사 형식에 담았습니다. 취재기자가 직접 그린 만화·일러스트로 청년 노숙인 이야기를 재구성했습니다.

가정해체 겪은 ‘IMF 키즈’, 홀로서기 실패 후 거리로

“이게 젤 밑바닥인 거 같지? 아냐. 바닥 같은 건 없어. 바닥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또 바닥으로 떨어져 버려.”

김혜진의 소설 『중앙역』은 서울역 청년 노숙인 이야기다. 다른 노숙인을 경멸하던 주인공은 차츰 그곳에 젖어들어 구걸조차 아무렇지 않게 된다.

한창 일해야 할 20~30대가 노숙인으로 전락하는 이유는 뭘까.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전후로 등장한 대다수 노숙인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40대 가장’이었다. 최근 등장한 청년 노숙인은 경제 문제와 정서적 문제를 복합적으로 겪고 있다. 여재훈 서울노숙인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소장은 “상당수 청년 노숙인은 IMF 시기에 가정 해체를 경험한 이들”이라며 “이들은 자존감이 낮아 자활능력이 떨어지는 편”이라고 말했다.

청년 노숙인의 또 다른 공통점은 휴대전화·신용카드 명의 도용 사기를 당하거나 카드 빚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다. 신용불량자가 되고 자취방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거리로 내몰리는 것이다. 청년 노숙인 B씨(32)는 “서울역 노숙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사회로 나가는 게 두렵다. 서울역에는 나와 비슷한 젊은 노숙인이 많아 위안이 되기 때문에 자꾸 이곳으로 오게 된다”고 말했다.

이태진 한국보건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청년 노숙인은 성인이 되기 전부터 빈곤이나 노숙 상태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청년 신용불량자가 양산되지 않도록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스물아홉, 난 왜 노숙인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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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3학년 때 부모 이혼


남들처럼 따뜻한 부모님이 계셨다면 제 처지도 달라졌을까요? 스물아홉. 한참 세상을 향해 꿈을 펼쳐야 할 나이에 서울역 주변을 맴돌고만 있는, 저는 ‘청년 노숙인’입니다. 노숙 생활을 한 지도 4년이 다 됐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게 저를 버린 부모님 때문이라는 원망도 듭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저를 매일 때리던 엄마는 아버지와 이혼한 뒤 집을 나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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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할아버지 품으로

부모님에게 버림받은 저는 할아버지·할머니 손에서 자랄 수밖에 없었어요. 두 분은 저를 성심성의껏 길러주셨어요. 엄마는 소식조차 몰랐지만 아버지와는 가끔 연락이 닿았어요. 그러나 아버지는 저와 함께 살 생각이 없었죠. 그렇게 저는 부모 없는 아이로 자랐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는 술과 담배를 익혔고, 학교도 가는 둥 마는 둥 문제아로 살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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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살 혼자가 되다

할아버지·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더 큰 시련이 닥쳤습니다. 두 분이 세상을 떠나시자 함께 살던 고모와 삼촌이 눈치를 주기 시작했어요. ‘제발 좀 이 집에서 나가 달라’는 무언의 압력이 거세졌죠. 부모님에게도 버림받은 주제에 더 이상 눈칫밥 먹고 살고 싶진 않았어요. 고등학교 2학년, 그러니까 열여덟 살 되던 해에 저는 친척 집에서 뛰쳐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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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된 알바, 꿈은 있었다

혼자가 된 저는 주유소와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주유소에 딸린 숙소에서 먹고 자며 죽어라 일만 했어요. 사실상 학교는 자퇴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죠. 한 달을 일해봐야 손에 쥐는 건 겨우 수십만원. 그래도 이렇게 계속 돈을 모으면 어디 변두리에 자취방 한 칸쯤 마련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처음으로 제게도 꿈이란 게 찾아온 순간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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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사기당해 빚더미

그러나 꿈이란 건 저 같은 실패한 청춘에겐 가당치도 않은 것이었던 모양입니다. 스무 살이 넘도록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던 저는 주유소에서 사귄 형에게 사기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별생각 없이 형에게 휴대전화 명의를 빌려줬는데 수백만원의 요금이 체납돼 돌아왔어요. 형은 제 명의로 신용카드까지 만들어 1000만원 정도의 카드 빚까지 떠넘기곤 자취를 감추고 말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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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불자’ 낙인 무작정 상경

신불자(신용불량자). 그것이 갓 20대 중반에 들어선 저의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신불자는 아르바이트도 구하기 어려웠어요. 충남 아산의 한 공장에 어렵게 취직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카드 회사에서 계속 독촉 전화가 오자 회사에서 나가달라고 하더군요. 갈 곳이 없어진 저는 서울 표지판만 보고 무작정 걷기 시작했습니다. 일주일쯤 걸어 도착한 곳이 서울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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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지하도 박스를 깔다

처음엔 서울역 지하도에 박스를 깔고 지냈습니다. 제 몸에서 얼마나 냄새가 났던지 사람들이 코를 막고 지나가더군요. 한 달 뒤쯤 노숙인 쉼터를 알게 됐어요. 그때부터 쉼터와 거리를 번갈아가며 4년째 노숙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가끔 이삿짐 일도 하는데 대부분은 서울역 광장에서 멍하게 시간을 보내요. 제 누추한 청춘도 언젠가 따뜻한 집으로 돌아갈 날이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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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강현 청춘리포트팀장 , 취재·그림=이유정 기자

정강현.이유정 기자 fon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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