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마케팅’ 울고 웃는 기업들…날씨는 돈이다

2014. 12. 13. 19:48C.E.O 경영 자료

‘날씨 마케팅’ 울고 웃는 기업들…날씨는 돈이다

 

마른장마에 제습기 판매 ‘뚝’·초겨울에 아이스크림 ‘불티’

이상기온에 수요예측 어려워…연간 기후정보 고액 거래도

“날씨도 안 도와주네요.”

국내 대형마트의 한 관계자는 올 한 해를 이렇게 정리했다. 올 초 포근한 겨울 탓에 겨울의류와 난방용품 매출이 떨어졌다. 여름엔 서늘한 날씨와 주말마다 닥친 태풍 탓에 물놀이 용품 매출도 부진했다. 고육지책으로 기능성 내의를 9월부터 내놓는 등 예년보다 한 달 빨리 가을·겨울 장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11월 따뜻한 날씨가 계속됐다. 결국 재고를 털기 위해 12월 말 실시하던 ‘창고 대방출’ 할인행사를 3주나 앞당겼다.

업계가 날씨에 울고 웃고 있다. 업계가 천수답(天水畓)식 마케팅에서 벗어난 지 오래지만, 여전히 날씨는 영업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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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상 기온으로 예측에서 벗어나는 상황이 속출하면서, 업체들은 수요와 공급 맞추기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전문업체에서 날씨 정보를 구입하는 업체도 늘고 있다. 1년치 날씨 정보는 미국에서 최소한 10만달러 이상일 정도로 고가지만 그만큼 날씨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이다.

기온 1도 오르면 점포 하루 매출 1만원 늘어

유통업계 중 날씨에 가장 민감한 곳은 편의점이다. 편의점은 소비자들이 차량이 아닌 걸어서 출입하는 시설인 데다가 점포 공간이 상대적으로 좁아 물품을 많이 쌓아둘 수 없다. 평균적으로 기온이 1도 오르면 점포의 하루 매출은 1만1000원가량 늘어나고, 기온이 내려가면 그만큼 매출도 감소한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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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일레븐이 지난달 17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지역에 위치한 10개 점포의 상품별 매출을 분석했더니 아이스크림과 탄산음료·맥주 등 여름 상품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8% 이상 많이 팔렸다. 초겨울이 시작되는 11월 말 여름 상품 수요가 증가한 것은 이례적이다.

반면 겨울 대표 별미 찐빵과 어묵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15.2%, 7.4% 떨어졌다. 시기상 초겨울인 이 기간 동안 서울 지역 평균기온이 13.0도로, 지난해 7.0도보다 6.0도나 높았기 때문이다.

하루 평균 발주량에서도 차이가 났다. 아이스크림과 탄산음료, 맥주는 각각 40.1%, 38.1%, 29.6% 증가했지만 찐빵과 어묵 발주량은 각각 24.2%, 22.1% 줄었다. 점주들이 기온이 예년보다 높다는 점을 알고 발주량을 조절했기 때문이다. 세븐일레븐은 1990년대 후반부터 민간 기상업체의 기상 정보를 구입해 전국 7230여개 점포에 제공하고 있다. 이 정보는 점포가 위치한 지역별로 6시간마다 업데이트된다.

CU와 GS25 역시 상품 종류와 수량을 주문할 때 날씨 정보를 활용하고 있다. 세븐일레븐은 “초콜릿은 겨울에 잘 팔리지만 사탕은 11월을 기점으로 매출이 떨어진다”며 “기온 변화에 따라 상품별 판매 추이가 크게 변하기 때문에 날씨를 미리 예측해 판매전략을 달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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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업계, 제습기 생산 늘렸다 낭패

전자업계에선 제습기가 날씨 때문에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위닉스는 1997년 제습기 사업을 시작했지만 국내 기후가 고온다습한 아열대성으로 바뀌면서 2011년부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특히 2012년 30일이던 장마가 지난해 역대 최장인 49일까지 늘어나면서 제습기 시장 규모가 2012년 40만대 수준에서 지난해 130만대까지 커졌다. 당시 업계는 올해 시장 규모가 250만대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난해 여름 제습기를 제때 공급하지 못해 품귀현상까지 벌어졌다. 이에 업체들은 날씨 정보를 미리 받아 제품 수요를 예측, 일찌감치 생산량을 늘렸고 유통업체들도 물량을 확대했다.

위닉스의 선전을 본 LG전자도 생산량을 늘렸다. 삼성전자·동부대우전자·대유위니아 등까지 새로 제습기를 내놓으면서 경쟁은 과열 양상까지 갔다.

하지만 실제 올여름 예상만큼 비가 많이 오지 않았다. 오히려 20년 만의 마른 장마였다.

위닉스는 올해 제습기를 70만~90만대 생산했지만 20만~25만대만 판매해 나머지는 재고로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매출에서 제습기 비중이 60~70%에 달해 3분기엔 106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재고를 감소시키기 위해 위닉스는 출고가 48만9000원짜리 제습기를 인터넷에서 33만9000원에 할인 판매하고 있다.

특히 LG전자는 “제습기는 사계절 가전”이라며 ‘탈(脫)날씨·계절’ 홍보를 하고 있다. 그나마 LG전자는 자체 유통망으로 계속 판매할 수 있어 위닉스보다 사정이 나은 편이다.

민간 기상업체 케이웨더의 반기성 예보센터장은 “제습기 업체들은 주로 6개월 단위의 날씨 정보를 구입했는데 올해 처음으로 1년치를 요청하는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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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 패딩은 잘 팔릴까

의류업계도 날씨에 따라 매출이 춤을 춘다. 날씨를 잘못 예측하면 신상품도 고스란히 재고로 남는 신세가 되기 일쑤다. 최근 3년간 인기를 끌던 패딩 제품은 올겨울 날씨가 포근할 것이라는 기상 전망에 지난달까지만 해도 판매가 부진했다. 신세계백화점의 지난달 아웃도어 브랜드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5% 줄었다.

그러다 이달 들어 기습 한파가 계속되면서 매출이 회복세로 돌아서고 있다. 지난 1~7일 아웃도어 브랜드 매출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3.4% 증가했다. 이에 아웃도어 브랜드들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전체 매출의 70% 이상이 겨울에 나오는데, 이 중 90% 이상이 패딩 판매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통상 최저기온이 영하 4~5도로 떨어져야 겨울옷 판매가 증가한다. 신세계백화점 장혜진 부장은 “올겨울은 전반적으론 따뜻하지만 간헐적으로 한파가 몰아칠 것이라는 기상 예보가 많다”며 “기온이 급격하게 변하다보니 소비자들이 더 추위를 느껴 패딩점퍼 구매도 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변덕스러운 날씨가 계속되자 의류업계는 ‘묘안’을 찾고 있다. 날씨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도록 디자인을 개선해 패딩·셔츠 등을 입을 수 있는 기간을 늘리고 있다.

다운점퍼에 내피나 모자를 탈부착하고, 셔츠는 소매를 걷는 롤업 스타일로 활용도를 높이는 식이다. 지난해부터 여름철마다 자외선 차단 기능이 있는 긴팔 의류를 내놓는 것은 봄·가을과 마른 장마를 겨냥한 것이다.

반기성 센터장은 “지난해 다국적 농업기업인 몬산토가 기상 정보를 예측·분석하는 벤처회사를 인수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날씨가 제품을 만들고 마케팅을 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이성희·이혜리 기자 mong2@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