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사이에서 곤혹스러운 한국…AIIB가 도대체 뭐길래?

2015. 3. 18. 21:03C.E.O 경영 자료

미-중 사이에서 곤혹스러운 한국…AIIB가 도대체 뭐길래?

 

[한겨레] [더(The) 친절한 기자들]

지구에서 가장 힘 센 미·중의 패권 다툼의 상징이자

중국 주도 국제금융기구 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한국 망설임 배경엔 미-중 사이에 낀 처지의 어려움이


최근 발음하기도 어려운 이름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이 이름은 신문과 방송 매체들의 ‘머리띠’(헤드라인)를 꿰찼습니다.

이름을 풀어봅시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입니다. 영어로는 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입니다. 말 그대로 아시아의 인프라, 즉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하는 은행입니다. 이름엔 목적이 들어있습니다. 다른 지역에 견줘 발전 여력은 충분하지만 낙후한 아시아 지역의 도로, 항만, 철도, 발전소 등 사회간접시설에 투자를 하겠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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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이렇게 시끄러울까요?

바로 이 은행이 미국과 중국이라는 현재 지구에서 가장 힘센 두 국가가 벌이는 거대한 패권 다툼의 상징이 됐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 은행은 정확히 말해 아직 출범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약 1년 반 전인 2013년 10월 중국과 인도, 파키스탄, 몽골, 베트남, 스리랑카, 네팔, 오만, 쿠웨이트, 카타르, 싱가포르, 베트남, 라오스, 필리핀 등 21개 나라가 모여 이 은행을 출범시키자는 약속인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것이 현재까지의 경과입니다. 이 은행은 3월 말까지 창립 회원으로 참가할 국가를 확정짓고 올해 말께 정식 출범할 예정입니다.

아시아 각 지역에 도로도 뚫고 철로도 놓고 발전소도 지으려면 종잣돈이 필요합니다. 중국은 이 은행의 초기 자본금으로 500억달러를 내놓고 ‘물주’가 됩니다. 우리돈 56조3100억원 가량입니다.

여기서 갈등의 싹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은행이 목표로 한 총 자본금은 1000억달러입니다. 이 금액의 절반을 중국이 부담한 것입니다. 사실 그런데 부담이란 말은 썩 적절한 말은 아닙니다. 부담을 많이 진 만큼 이 은행의 의사 결정에 더 큰 목소리와 의사 결정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제금융기구 안에선 ‘1달러 1표’란 말이 있다고 합니다. 돈 많이 내면 더 많은 입김을 넣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결국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은 중국 주도의 국제금융기구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총 자본금 1000억달러를 채워도 중국의 지분이 50%가 됩니다. 나머지 국가들이 많게는 몇십 %, 적게는 몇 %의 지분을 지녀도 중국에 필적하긴 힘듭니다.

중국이 자국 주도의 국제금융기구를 만든 것은 미국 중심의 국제금융기구에서 좀체 영향력과 지분을 키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아시아개발은행(ADB)과 국제통화기금(IMF)에 계속 지분 확대를 요구했지만 현재 지분은 각각 5.5%와 4%에 그치고 있습니다.

결국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을 둘러싸고는 중국 마음대로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게 됩니다. 물론 중국은 부인합니다. 관영 언론들은 “이 은행은 중국뿐 아니라 세계와 아시아 각국 모두에게 이로운 것이다. 의사 결정은 투명하게 될 것이다”라고 강조합니다.

우려를 가장 강하게 표명한 국가는 바로 미국입니다. 미국은 이 은행이 자국이 주도하고 있는 세계은행 등에 도전하는 것이 내키지 않은 듯 합니다. 가뜩이나 중국의 부상으로 ‘주요 2개국’(G2)으로 불리는 것이 마뜩잖은데 자신들이 꽉 잡고 있다고 생각하는 국제금융 질서에도 중국이 도전장을 내미는 형국이니 말입니다. 미국은 “의사결정이 투명하지 않을 것이다, 기존 세계은행이 투자에서 그 나라의 통치 정당성이나 환경 파괴 여부 등을 세심하게 따졌지만 이 은행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기준에 미달해도 개발 이익에 치중한 투자 결정을 할 것이다”라며 의구심을 품습니다. 그리고 한국, 일본 등 친한 나라들에게 이 은행에 들어가지 말라고 합니다.

미국의 우려 안엔 이 은행이 아시아 지역 경제주도권을 쌓으려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의 발판으로 활용될 것이란 판단도 있습니다. 일대일로 사업이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주요 국정과제로 추진하는 전략으로 해상 실크로드와 육상 실크로드를 연결시켜 중국의 경제력이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까지 이어지게 만들겠다는 구상입니다. 이미 지난해 말 기준으로 3조8400억달러에 이르는 외환보유고를 이 사업에 쏟아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키우고 중국 기업들의 국외 진출을 활성화하려는 전략입니다. 중국은 이미 400억달러에 이르는 실크로드 기금도 만들었습니다.

과거 중국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당나라 시기의 영광을 재현하자는 의미도 이 이름 속엔 들어있습니다. 이 일대일로 국책 사업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은 실과 바늘처럼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보입니다. 미국은 일대일로 사업이 지역 맹주가 되려는 중국의 의도가 담겨 있다고 여기는 듯합니다. 미국이 북한 핵문제와 동남중국해 영유권 문제 등의 틈새를 이용해 끊임없이 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중국의 부흥을 봉쇄하려는 이른바 ‘아시아 회귀전략’(또는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추진한다고 여기는 중국은 그건 오해라고 손사래칩니다. 관영 매체들은 “일대일로는 결코 미국의 아시아 회귀전략에 대한 대응 전략이 아니다”고 합니다.

여튼 미국의 설득은 여러 나라에 약발이 잘 통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맹방인 영국이 서방 주요 국가로는 처음으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에 창립 회원국으로 참여하겠다는 선언을 한 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등이 줄을 이어 가입 신청 의사를 밝히고 나섰습니다. 중국의 투자는 무시할 수 없는 매력이었던 것 같습니다. 거기다 아시아 건설 시장은 그 수요가 2020년까지 연간 8000억달러에 이른다고 추정될 만큼 무궁무진 합니다. 설계와 플랜트 건설 분야 등에서 강점을 지닌 유럽 기업들로서는 군침이 당길 수밖에 없습니다.

동맹이란 의리보다 경제적 실리를 챙기는 것은 어찌 보면 합리적인 선택일지 모릅니다. 지금 어느정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가입 문제는 대세가 중국 쪽으로 기운 듯한 분위기입니다.

중국은 기뻐 보입니다. 18일자 관영 <환구시보>는 사설에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을 둘러싼 게임에서 조화(和)를 강조한 중국이 투쟁(斗)을 중시한 미국에 승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나아가 “그러나 이 은행을 둘러싼 문제는 중국과 미국 사이의 대결 게임이 아니다. 중국은 모두의 공동 번영을 위해 이 은행을 설립했고 많은 나라가 이에 동의했다”면서 “언젠가는 미국도 이 은행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고 했습니다. 여유와 자신이 보이는 언급입니다. 아울러 중국 관영 매체들은 위에서 언급한 ‘결국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이 중국의 국책사업인 일대일로 사업에 활용되는 것 아니냐’는 여러 나라들의 우려를 누그러뜨리려 합니다. 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평론에서 “일대일로 정책은 2차대전 당시 미국의 영향력을 유럽에 이식시키는 계기가 됐던 ‘마샬 플랜’과 같은 정책이 아니다. 이 정책은 모든 국가가 평등하고 공존하며 공동번영하자는 목적에 따라 추진되는 정책이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려를 불식시켜 분위기를 타고 더 많은 국가를 가입시키자는 의도가 보이는 대목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한국의 선택입니다. 이미 중국 쪽은 시진핑 주석을 비롯한 주요 관리들이 한국 쪽에 “참여해 달라”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중국 매체들은 “정치적인 망설임 탓에 경제 발전의 호기를 놓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망설이는 나라들을 재촉합니다.

경제 분야 위정자들의 분위기를 보면 분명 한국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이 가져다 줄 경제적 이익과 가능성에 구미가 당기는 듯 보입니다. 동맹국인 미국과의 의리도 못지않게 중요하지만 말이지요. 마침 부담스럽게도 미-중이 날카롭게 맞서고 있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이래저래 곤혹스런 상황 속에서 무게 추는 가입 쪽으로 기우는 듯 합니다. 한국의 늦은 결정엔 중-미 사이에 끼인 처지의 어려움이 담겨 있습니다.

베이징/성연철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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