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1명도 없는 정당이.. 60년 양당체제 무너뜨렸다

2017. 4. 26. 06:43C.E.O 경영 자료

의원 1명도 없는 정당이.. 60년 양당체제 무너뜨렸다

파리/장일현 특파원 입력 2017.04.25. 03:11 수정 2017.04.25. 10:37 댓글 8

[프랑스 대선]
프랑스 대선, 중도 신생당 '앙마르슈'의 마크롱 당선 유력
- 결선조사 마크롱 62%:르펜 38%
올랑드·탈락후보들 마크롱 지지.. 극우 불안감에 좌우 없이 뭉쳐
EU 등 국제사회도 전폭적 지지
- 앙시앵 레짐의 몰락
高실업률·低성장 굴레 계속되자 사회당·공화당 무능에 분노 폭발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구체제)의 몰락."

23일(현지 시각) 실시된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공화당과 사회당 후보가 동반 탈락하고, 아웃사이더인 에마뉘엘 마크롱과 마린 르펜이 결선 투표에 진출하면서 프랑스에서는 "역사에 기록될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일간 르피가로는 "프랑스 정치사를 뒤흔든 '지진'"이라고 했다.

마크롱은 이날 "우리가 프랑스 정치 역사의 새 페이지를 열었다"며 "프랑스와 유럽의 희망의 목소리가 되겠다"고 했다. 르펜은 "(난민·EU 등 문제로) 프랑스의 생존이 위기에 처했다"며 "이제 국민을 해방시킬 시간이 왔다"고 했다.

24세 연상 아내와 함께 선 마크롱 - 23일(현지시각)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해 다음 달 7일 치러지는 결선 투표에 진출한 중도 신생 정당 ‘앙마르슈(전진)’의 에마뉘엘 마크롱(왼쪽) 후보가 파리에 있는 자신의 선거본부에서 24세 연상의 아내 브리지트와 함께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프랑스 정치권은 이번 선거를 통해 전례 없는 '핵분열'을 거듭했다.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 후보가 당선된 지난 2012년 선거 때까지만 해도 프랑스 정치는 중도우파 공화당과 중도 좌파 사회당이 양분해왔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극우·극좌가 돌풍을 일으키고, '좌도 우도 아닌' 중도가 출현했다. 프랑스 정계는 공화당·사회당의 양강 체제에서 극좌(장뤼크 멜랑숑)·중도 좌(사회당)·중도(마크롱)·중도 우(공화당)·극우(르펜) 등 다극(多極) 체제로 분열했다.

지난해 8월 중도 성향 정당인 '앙마르슈(전진)'를 만든 마크롱은 불과 8개월 만에 대선 결선 투표에 진출했다. 이 정당은 의원이 1명도 없다. 반면 집권 여당으로 원내 제1당인 사회당은 브누아 아몽 후보 지지율이 6.4%에 그쳐 참패했고, 제2당인 공화당도 프랑수아 피용(19.9%)이 3위로 탈락해 당 역사상 처음 결선에 후보를 내지 못했다. 1958년 제5공화국 출범 이후 대선 결선에 진출한 두 후보 모두 양대 정당 출신이 아닌 것은 처음이다.

기성 정치권의 몰락은 프랑스가 겪고 있는 심각한 현안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권의 무능함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고(高)실업률과 저성장, 대외 영향력 약화 등 고질적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는 것이다. 유권자들 사이에 "공화당이나 사회당이나 무능하긴 마찬가지이다. 이번엔 바꿔보자"는 분위기가 급속히 확산됐다. 여기에 2015년 이후 일상화된 테러로 이민자와 이슬람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극우 세력도 세를 키웠다.

24세 연상 아내와 함께 선 마크롱 - 23일(현지시각)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해 다음 달 7일 치러지는 결선 투표에 진출한 중도 신생 정당 ‘앙마르슈(전진)’의 에마뉘엘 마크롱(왼쪽) 후보가 파리에 있는 자신의 선거본부에서 24세 연상의 아내 브리지트와 함께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프랑스 정치 지형을 바꾸는 데 '데가지즘(Dégagisme)'이 이념적 바탕이 됐다"고 진단했다. 데가지즘은 구(舊)체제·인물에 대한 청산을 뜻하는 신조어로, 지난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튀니지에서 독재자 벤 알리의 축출(dégager)을 요구하면서 등장했다.

다음 달 7실 실시되는 결선 투표의 대진표가 '마크롱 대(對) 르펜'으로 확정되면서 프랑스 정치권은 극우 세력의 집권을 막기 위해 마크롱을 중심으로 빠르게 뭉치고 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마크롱에게 축하 전화를 건 데 이어 베르나르 카즈뇌브 총리도 마크롱 지지를 선언했다. 1차 투표에서 낙마한 공화당 피용과 사회당 아몽 후보 등도 "결선에서 마크롱을 찍어달라"고 호소했다.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에 따르면 마크롱은 결선투표에서 62%를 얻어 르펜(38%)을 큰 차이로 승리할 것으로 조사됐다.

좌우 진영이 대부분 마크롱 지지를 선언하면서 이번 대선이 지난 2002년 때와 비슷하게 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당시 르펜 대표의 아버지 장마리 르펜은 좌우 진영이 모두 상대방인 자크 시라크 후보를 미는 바람에 결선에서 17.8% 득표율로 참패했다.

유럽연합(EU)도 마크롱을 지지하고 나섰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마크롱에게 "결선에서도 행운을 빈다"고 했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대변인은 "마크롱이 강한 EU와 시장경제 옹호라는 공약으로 성공한 것은 매우 좋은 일"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