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이후 최대 위기는?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2017. 8. 18. 19:57C.E.O 경영 자료



[백 투 더 동아/8월 18일]6·25전쟁 이후 최대 위기는?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황규인 기자 입력 2017-08-18 15:07수정 2017-08-18 15:47

 


6·25전쟁 이후 북한과 미국이 실제로 전면전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때는 언제일까. 많은 역사학자들이 1976년 8월 18일이라고 의견을 모은다. 이날은 그 유명한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 벌어진 날이다.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을 알린 1976년 8월 19일자 동아일보 1면.


이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는 한미 경비병과 노무자 5명이 남측 관측소 시야를 가리는 미루나무 가지를 자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북한군이 가지를 잘 치는 법을 알려주는 등 작업이 순조로웠다. 그때 북한군 박철 중위가 부하들을 데리고 와 ‘가지치기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아서 보니파스 미군 대위는 이를 묵살하고 작업을 계속하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박철이 북한군 30여 명을 추가로 불렀다. 이들은 손에 쇠몽둥이와 도끼를 들고 있었다. 북한군이 남쪽 사람들을 포위한 상태로 박 중위가 재차 작업중단을 요구했다. 이번에도 보니파스 대위가 요구에 따르지 않자 박 중위는 손목시계를 풀어 손수건으로 감싼 뒤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죽여!”

보니파스 대위는 도끼에 머리가 찍혀 현장에서 즉사했다. 마크 바렛 중위 역시 북한군으로부터 습격당한 사병을 도우려다 사망했다. 미군 기동타격대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북한군이 군사 분계선을 넘어간 다음이었다.

왼쪽부터 보니파스 대위, 바렛 중위.

당시 유엔군 사령관 리처드 스틸웰 미 육군대장은 일본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그는 이 소식을 듣고 전투기 뒷자리에 탑승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미국은 이튿날(8월 19일) 군사정전위원회 개최를 요구했지만 북한은 불참했다. 그러면서 “미군이 나무를 자르는 것을 보고 경비병들이 제지하러 나섰다. 그 순간 갑자기 미군이 도끼를 던져 날아오는 도끼를 손으로 잡아 되던졌는데 보니파스 대위가 맞아 죽었다”고 주장하며 오히려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협상이 결렬되자 주한유엔군과 한국군은 6·25전쟁 이후 처음으로 준전시체제에 돌입했다. 북한군도 이에 맞서 북풍 1호를 발동해 전군 완전무장을 지시했다.


이렇게 양쪽이 맞서는 가운데 미군은 ‘폴 버니언 작전’을 세웠다. 표면적으론 ‘미루나무를 자른다’는 것이지만 북한이 도발해 온다면 휴전선을 넘어 개성을 탈환하고 연백평야 깊숙한 곳까지 진격한다는 내용이었다.  

8월 21일 오전 7시. 한미 호송차량 23대가 북한 측에 사전 통보 없이 공동경비구역으로 진입했다. 미군 공병대원 16명은 전기톱과 도끼로 미루나무를 베어 내기 시작했다. 하늘에는 미군 보병이 탄 다목적 헬기 20대와 공격용 헬기 7대가 떠 있었다. 그 위로는 B-52 폭격기 가 전투기 엄호를 받으며 선회 중이었다. 대구에는 핵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는 F-111 편대가 미국 아이다호 주에서 날아와 기다리고 있었다. 바다에는 미드웨이급 항공모함과 순양함 5척이 대기 중이었다.

폴 버니언 작전 수행 사진.

북한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미루나무를 모두 자르는 순간 폴 버니언 작전은 끝이었다. 그러나 일꾼으로 위장해 현장을 엄호하고 있던 특전사 제1공수특전여단 대원 64명은 그대로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M16 소총으로 무장한 이들은 손에 도끼와 몽둥이를 들고 북한군 초소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차례로 북한군 초소 4곳을 파괴했다. 미군 트럭 운전병이 이들을 막아서려 하자 권총으로 위협하는 일도 있었다. 

이들이 미군과 맞서면서까지 북한 초소로 쳐들어 간 건 박정희 대통령의 분노 때문이었다. 이 사건을 처음 접한 뒤 박 대통령은 “우리도 참는 데 한계가 있다. 내 군화와 철모를 가져오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이 특공대를 만든 것부터 박 대통령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만약 북한에서 반격한다면 박 대통령은 전쟁도 불사할 것처럼 보였다.

“미친개한테는 몽둥이가 필요하다”고 강도 높게 북한을 비판한 박정희 대통령의 발언을 소개한 1976년 8월 20일자 동아일보 1면.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국 특전사 대원들이 침입해 난장판을 만들자 북한군은 초소를 비우고 도망가고 말았다. 이날 북한군 부대 통신을 감청한 미군은 “그들은 겁을 먹고 있었다”고 했다. 상황이 모두 끝난 뒤 북한 측 군사정전위 수석대표 한주경 소장이 미국 측 수석대표에게 비밀 면담을 요청했다. 한 소장은 그 자리에서 유감을 표명한 김일성의 친서를 전달했다. 미국은 논란 끝에 이 친서를 사과의 뜻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김일성은 친서에서 “판문점에서 사건이 벌어진 건 유감(regretful)”이라며 “우리는 앞으로 절대 선제도발을 하지 않을 것이고 도발이 있을 때 자위적 조치만 취할 것”이라고 썼다.

이 사건 이후 북한이 직접 미국을 상대로 무력도발을 벌인 적은 없다. 방송에서는 미국을 맹비난해도 실제로 건드린 적은 없는 것. 미국 본토가 공격당한 9·11 테러 때는 오히려 테러리즘을 맹비난하면서 ‘우리가 한 일이 아니다’고 강조하기까지 했다. 북한은 이번에도 “괌을 공격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김정은 노동위원장이 “미국 놈들의 행태를 좀 더 지켜볼 것”이라고 말하면서 발을 빼는 분위기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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