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주·도축·소매업자 공모해 주저앉은 소 시중 유통
축협에 허위 폐사 신고하고 도축업자에게 병든 소 팔아
범행 1년 넘게 적발 안 돼, 40명이 정육점 4천 개 단속
농장주는 병들고 주저앉은 소를 불법 도축업자에게 팔아넘겼고, 가공한 소고기는 다시 음식점과 정육점에 진열됐다.
어떠한 병에 걸렸는지도 알 수 없는 소고기가 식탁에 오르는 동안 검역 당국과 지자체는 범행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도축 앞둔 소 [연합뉴스 자료사진] |
지난해부터 사람한테도 옮겨져 발열 등을 증상을 일으키는 소 브루셀라병이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창궐하던 터라 이번 병든 소 유통 사건으로 부실한 축산물 관리 시스템에 대한 총제적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북경찰청은 축산물위생관리법 위반 혐의로 도축업자 황모(55)씨 등 2명을 구속했다고 8일 밝혔다.
불법 도축한 소를 정육점과 음식점에 납품한 유통업자 김모(55)씨 등 13명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황씨 등은 지난해 1월부터 최근까지 병든 소 수십 마리를 불법으로 도축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송아지 출산 중 주저앉거나 폐렴 등 질병에 걸려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한 소를 사들여 도축했다.
현행법상 소를 도축하려면 허가받은 시설에서 브루셀라·구제역 등 질병과 거동상태, 호흡 등을 확인하는 생체검사를 거쳐야 한다.
검사 과정에서 소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 검사관이 불합격 처분을 내릴 수 있다.
주저앉은(기립불능) 소는 원칙적으로 도축 및 유통이 금지된다.
병들고 다친 소 불법 도축한 일당 덜미 |
그러나 농장주들은 관할 축협에 '갑자기 소가 죽었다'며 폐사 신고서를 제출하고 주저앉은 소를 도축업자에게 팔아넘겼다.
도축업자는 헐값에 산 소를 도축한 뒤, 다시 부위별로 해체해 범행에 가담한 유통업자에게 되팔았다.
식용으로 쓸 수 없는 병들고 주저앉은 소는 정육점과 음식점에서 한우와 섞여 비싼 값에 팔려나갔다.
이 과정에서 생산과 도축·가공·유통 등 단계별로 소비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축산물이력제는 힘을 쓰지 못했다.
축산물이력제는 송아지 출생부터 부여하는 개체식별번호를 통해 허위 원산지 표시나 불법도축 같은 범행을 추적하기 위해 마련된 장치지만, 단속 인력이 충분하지 않으면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범행이 이뤄진 전북은 공무원 40명이 정육점 등 소고기 취급업소 4천여 곳을 담당하고 있어 일 년이 넘도록 불법 도축·유통한 소고기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번 경우처럼 농장주와 도축업자, 유통업자, 그리고 정육점 주인 등이 모두 범행을 공모하면 뒤늦은 추적은 효과가 없다는 게 증명된 것이다.
전북도 관계자는 "송아지 출생 때 부여받은 개체식별번호와 고유 유전자 정보를 토대로 불법 축산물을 상시 단속하고 있다"면서도 "관련 부서 인력이 충분하지 않아 모든 불법 축산물을 적발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jay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