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이후 전세계 부채 41% 증가
부채증가율, 신흥국 146%·선진국 19%
GDP 대비 부채비율 신흥국 176%
기업·가계·정부부채 ‘끊임없는 증가’
중국, ‘그림자금융’ 부채리스크 직면
유로존, 그리스·이탈리아 정부부채 악화
미국도 ‘대출채권담보증권 리스크’ 부각
글로벌 경기 수축국면 진입하면서
세계 각 지역 ‘부채 리스크’ 점증
지금 돌아보면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 회복은 마치 ‘부채로 지은 집’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 부채는 약 41% 증가했다. 신흥국 증가율이 146%, 선진경제는 19%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은 신흥국이 2009년 131%에서 2018년 176%로 증가했고, 선진국은 같은 기간에 259%에서 271%로 늘었다.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저금리와 양적완화를 배경으로 글로벌 부채가 급증한 것이다. 금융부문 부채는 디레버리징(대출회수·축소)의 영향으로 비교적 안정세를 보였지만, 기업·가계·정부 등 비금융부문 부채는 끊임없이 증가해왔다.
그러나 2015년 말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에 진입하고 2017년 말부터 대차대조표(B/S)상의 자산을 축소하는 양적긴축에 나서는 등 여러 국가들이 통화정책 정상화의 길에 들어서면서 ‘부채발 신용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점증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각국의 부채는 선진국은 정부가, 신흥국은 민간(기업·가계)이 주도했다. KTB투자증권은 “선진국 국가부채는 경기 대응력을 위축시키고, 기업부채 증대는 경영활동 위축과 신용경색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또 가계부채 증대는 소비 역량을 떨어뜨리는 등 글로벌 부채의 광범위한 증가가 세계 경기 전반에 구조적 둔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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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 부채는 기업부채를 중심으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신흥국의 지디피 대비 ‘기업부채’ 비율은 2009년 68%에서 2018년 92%로 증가했다. 반면에 선진국은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의 대규모 양적완화로 지디피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2009년 91%에서 2018년 104%로 증가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전세계 비금융부문(비금융기업, 가계, 정부)의 부채는 2014년부터 급증했다. 전세계 부채규모는 2014년 120조달러(전세계 총생산 대비 222%)에서 2018년말 180조달러(260%)로 증가했다.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에는 약 100조달러(210%)였다.
빚에 짓눌리면서 부채 위험에 가장 크게 직면한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의 지디피 대비 부채비율은 2009년 174%에서 2018년 253%로 급증했다. 기업부채와 가계부채 모두 급증했다. 전체 부채 중 기업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61%다. 지디피 대비 기업부채 비율은 2018년에 150%로, 2009년에 견줘 39%포인트 늘었다. 가계부채 비율도 지디피 대비 53%(2018년)로, 2009년에 견줘 27%포인트 증가했다. 총 1167개에 이르는 중국 지방정부투자기관의 부채도 신용리스크 경고음의 진원지 중 하나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는 중국 정부 대차대조표에 잡히지 않는 중국 지방정부투자기관 부채 규모를 30조~40조위안(2017년)으로 추산했다.
이른바 ‘그림자금융’ 부채는 중국 경제에 잠복한 뇌관이다. 그림자금융은 은행 대출이나 채권과 달리 투자 손익이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금융상품(자산관리상품, 신탁·위탁대출, 피투피(P2P) 등)이다. 중국의 공식통계는 그림자금융 잔액(60조위안)이 지디피의 78%(2017년)라고 밝히지만, 통계에 드러나지 않는 부분까지 감안하면 지디피에 맞먹을 것으로 추정된다. 맥킨지보고서는 중국 전체 부채의 약 4분의 1이 그림자금융이라고 추정한다. 신영증권은 “중국 정부가 ‘부채 축소’를 핵심정책으로 내세워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지만 그림자금융의 전모를 알기 어렵고, 여기에 중국 주택가격까지 급랭하게 되면 금융 위험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물경제에서 중국의 회사채 디폴트도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신용 리스크를 둘러싼 우려감을 키우고 있다. 중국 정부가 과잉생산 기업을 중심으로 디레버리징을 강화하면서 자금여력이 취약해진 기업마다 회사채 디폴트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2018년엔 중국 내 120여개 기업이 디폴트를 선언했고, 디폴트 총액은 1200억위안에 이른다.
‘중국 신용위기’ 우려는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금의 금융시스템 리스크는 중국 정책당국이 충분히 ‘관리 가능’하며, 이에 따라 서서히 부채를 줄여가는 연착륙 궤도를 밟게 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중국의 부채 증가율이 전세계에서 가장 높긴 하지만 외환보유고가 3조달러에 이르고 대외순자산도 견조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위험이 실제로 폭발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한편, 유로존도 부채 리스크가 점증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 유럽통계청(Eurostat)에 따르면, 유럽 주요국의 지디피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그리스(180%·2017년말), 이탈리아(132%), 포르투갈(130%)이 매우 높고 유럽연합(28개국) 평균은 86.7%다. 신영증권은 “유럽중앙은행(ECB)의 자산매입 프로그램이 2018년에 종료되면서 유럽 각국마다 재정 악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2008년에 주택담보 서브프라임모기지증권(MBS) 사태를 겪으며 금융위기가 확산됐던 미국경제도,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에 대한 대출채권을 담보 기초자산으로 발행하는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 리스크가 최근 부각되고 있다. 미국에서 자산담보유동화증권(ABS)의 일종인 CLO 시장은 2007년 2570억달러에서 2018년에 5970억달러로 커졌다. 작년 CLO 발행액만 1250억달러로 역대 최대다. 신영증권은 “대출제약 조건이나 채무상환능력 검증절차를 간소화함으로써 투자자보호 장치가 미흡한 약식대출 CLO 비중이 2008년에 2%에 불과했으나 2018년에는 78%까지 증가했다”며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에 대한 대출을 담보로 발행됐기 때문에 경기가 악화하고 크레딧 시장이 위축되면 연체율이 급등하면서 기업의 디폴트(채무 불이행) 리스크도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심각한 경기 하강은 대체로 부채에서 비롯되는 시스템 리스크와 연관돼 있다. 금융기관의 손실이 커지고, 이에 따른 금융 신용경색이 실물경제에 다시 부정적 피드백을 주게 된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에서부터 폭발한 글로벌 금융위기도 시스템 리스크의 전형적 사례다.
일반적으로 부채는 금리와 경기 사이클이라는 두 변수로 이뤄지는 함수다. 우선, 금리가 낮고 유동성이 풍부하면 부채를 늘리게 되고, 금리가 긴축으로 바뀌면 채무 상환 불이행으로 신용위기가 발생한다. 그런데 올해 글로벌 경기가 완만한 둔화기에 접어들면서 글로벌 금리가 더 상승할 가능성은 낮아졌다. 금리 요인이 부채 뇌관을 폭발시킬 우려는 덜한 셈이다. 문제는 경기 요인이다. 글로벌 경기가 수축국면에 진입하면서 전세계적으로 부채 리스크가 점점 커지고 있는 형국이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