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적폐 수사' 件件이 지시한 대통령이 "통제할 수 없다"니

2019. 5. 3. 08:51C.E.O 경영 자료

[사설] '적폐 수사' 件件이 지시한 대통령이 "통제할 수 없다"니

조선일보


입력 2019.05.03 03:20

문재인 대통령은 2일 청와대에서 열린 사회원로 간담회에서 "어떤 분들은 이제 적폐 수사는 그만하고 통합으로 나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씀도 한다"면서도 "살아 움직이는 수사에 대해서는 정부가 통제할 수도 없고 또 통제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개인적으로는 국정 농단이나 사법 농단이 사실이라면 아주 심각한 반헌법적인 것이고 헌법 파괴적인 것이기 때문에 타협하기 쉽지 않은 것"이라고도 했다.

대통령의 말은 마치 적폐 청산 수사가 자신의 뜻과는 관계없이 수사기관들의 자율적인 판단에 따라 시작됐고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는 적폐 청산을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국민 통합만 얘기하더니 취임 직후 내건 100대 국정과제 제1호가 적폐 청산이었다. 국민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적폐 청산이라고 공표하면서 검찰과 경찰에 철저한 수사를 지시한 것이다. 심지어 기소된 사건의 공소 유지를 철저히 하라는 구체적 재판 전략까지 국정과제 속에 포함시켰다. 청와대 지시로 20곳 가까운 정부기관에 만들어진 '적폐 청산 TF'가 수사 대상을 뽑았다.

적폐 청산이라고 뭉뚱그려서는 말귀를 못 알아들을까 싶었던지 대통령은 구체적인 사건을 적시해가면서 수사를 지시하기도 했다. 20177월엔 "방산 비리 척결"을 지시했고, 8월엔 박찬주 육군대장 부부의 공관병 '갑질 의혹'에 대해 "뿌리를 뽑으라"고 했으며 20182월엔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 외압 의혹을 엄정 규명하라"고 했다. 20187월 인도 출장 중엔 촛불집회 계엄령 문건을 독립수사단을 구성해 밝히라고 지시했고, 지난 3월 동남아 순방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김학의 전 법무차관, 고 장자연씨 사건, 클럽 버닝썬 사건 수사를 지시하며 "공소시효가 지난 일도 사실 여부를 가리라"는 지침을 주기도 했다. 대통령 민정수석이 취임 기자회견에서 "민정수석은 수사를 지휘하면 안 된다"고 했던 말은 대통령이 직접 수사를 지휘할 테니 자신은 빠지겠다는 뜻이었던 모양이다. 박찬주 대장 수사는 갑질 의혹은 물론 별건 뇌물 수수까지 무죄 판결이 났고 계엄령 문건 수사도 대통령이 밝히라고 했던 쿠데타 모의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

이런 무리한 수사들은 대통령 지시가 없었다면 검찰이 애초에 착수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하라"는 지시는 셀 수 없이 했던 대통령이 이제 와서 "하지 말라"는 지시는 수사기관의 독립성을 해치는 것이라고 설명하니 국민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02/201905020353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