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누더기 청약제…문재인 정부서만 10번째 '칼질'
40년간 140번 바뀐 청약제도…"국토부 공무원도 헷갈려요"

지난 6월 한 달간 미국 출장을 다녀온 윤석민 씨(43)는 거주지 경기 과천에서 이번주 분양하는 과천푸르지오써밋 아파트에 청약할 수 있을까? 정답은 노(No)다. 30일 이상 해외에 체류하면 당해지역 거주 요건(1년)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보는 까닭이다.

그러나 똑같이 한 달 이상 해외에 머물렀지만 미국과 캐나다를 각각 20일과 10일 여행한 이석우 씨(39)는 청약할 수 있다. 같은 곳에서 30일 이상 체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40년간 140번 바뀐 청약제도…"국토부 공무원도 헷갈려요"

이 같은 제도는 다음달 또 바뀔 전망이다. 국토교통부는 출국 후 90일 이상 계속 국외에 체류한 사람만 청약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업무상 출장, 여행, 해외 봉사활동 등을 위해 3개월 미만 한국을 떠난 이들까지 청약 자격을 박탈하는 건 지나치다는 지적이 많아서다.
아파트 청약제도가 국토부 담당자와 건설회사 분양소장조차 제대로 알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해지면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당첨됐지만 부적격자로 분류돼 수억원의 웃돈을 날리는 것은 물론 1년간 청약 자격을 정지당하는 이들이 전체 당첨자의 12%에 육박한다. 국토부 담당자조차 정확히 유권해석을 해주지 못하는 사례도 많아 분양소장들이 청약업무 처리에 혼란을 겪고 있다.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은 정부가 청약제도를 계속 복잡하게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만 열 번째 바뀐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청약제도가 140번째 개정을 앞두고 있다”며 “무주택자와 사회적 약자에게 우선권을 준다는 취지는 좋지만, 규정이 지나치게 복잡해졌다”고 지적했다.
40년간 140번 바뀐 청약제도…"국토부 공무원도 헷갈려요"

툭하면 '손질'…누더기된 청약제

국토교통부는 이번달 153쪽에 달하는 ‘청약제도 해설집’을 내놨다. 이 해설집 표지에는 “일부 오류가 있을 수 있다” “법적 효력이 없다”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청약제도를 만드는 국토부조차 이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방증이다. 너무 많은 특별공급제도와 가점제를 도입한 탓이다.

청약제도가 시간이 지날수록 복잡해지는 것은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생색내기를 위해 지나치게 많은 특별공급 유형을 만들고, 유주택자는 청약시장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하려고 하다 보니 청약제도가 난수표가 됐다는 것이다. 곽창석 도시와공간 대표는 “공급 물량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다양한 특별공급으로 쪼개다 보니 청약이 말 그대로 ‘희망고문’이 됐다”며 “청약가점이 낮은 이들은 빨리 기존 주택 매매시장으로 돌아서는 게 현명하다”고 말했다.

매년 서너 번 바뀐 청약제도

청약제도의 기본법인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은 1978년 법 제정 이후 총 139차례에 걸쳐 일부 또는 전면 개정이 이뤄졌다. 140번째 개정을 위한 입법예고가 진행 중이다. 매년 서너 번은 바뀐 셈이다.

청약제도가 이렇게 자주 개정되는 이유는 정부가 부동산 경기에 맞춰 임기응변식으로 청약제도를 뜯어고치기 때문이다. 단기적 시각으로 제도를 바꾼 탓에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생겨나는 사례가 빈번하다.

무순위 청약제도는 최근 몇 개월 새 세 차례 변경됐다. 이는 당첨자와 예비당첨자가 계약을 포기하거나 부적격 취소돼 남은 물량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지난 5월 정부는 투기과열지구에서 예비 당첨자 숫자를 전체 공급 물량의 70%에서 500%까지 늘렸다. 지난달에는 무순위 청약 자격을 해당 지역 거주 무주택 세대주로 제한하는 내용의 제도를 새로 내놨다. 이월무 미드미D&C 대표는 “무주택자와 사회적 약자를 위해 청약제도를 너무 촘촘하게 짜려다 보니 내용 변경이 빈번하고 조건도 까다로워졌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선 모델하우스에선 상담사가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쏟아진다. “50대에 재혼한 사람도 신혼부부 특별공급을 신청할 수 있을까” “이혼 후 재결합했다면 무주택 기간을 어떻게 산정할까” “재혼 배우자의 미혼 자녀를 부양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등이 그런 사례다. 분양소장조차 이런 질문에 명쾌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예비청약자가 마땅히 물어볼 데도 없다. 국토부 담당자는 너무 바빠 전화 통화가 아예 불가능하다. 국토부 게시판에 해설집이 있지만 일일이 찾아보는 게 쉽지 않다. 최근 해설집을 열어본 A씨는 “목차가 없어 파일을 몇 시간 동안 뒤졌지만 궁금한 점을 찾지 못했다”며 “전문 지식이 없는 일반 서민은 몰라서 청약도 못 하겠다”고 푸념했다.

부적격 당첨자 양산

2007년 도입한 청약가점제도는 가점 기준이 복잡하고 모호해 부적격 당첨자가 속출하고 있다.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청약 부적격 건수는 1만8969건에 달했다. 지난해 1순위 청약 당첨자(16만5128명)의 11.5%에 달하는 수치다. 최근 분양한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는 당첨자의 20% 이상이 부적격 처리되는 일도 발생했다. 2017년 1월 강원 원주에서 공급된 ‘남원주 동양엔파트 에듀시티’(881가구)에선 전체 당첨자의 64.5%인 568명이 부적격 처리됐다.

부적격 당첨자가 왜 이렇게 많은지는 청약을 한 번이라도 신청해봤다면 알 수 있다. 금융결제원 청약 사이트인 ‘아파트투유’에서 아파트 청약을 신청할 때 청약자는 거주지, 주택 소유 여부, 과거 2년 내 가점제 당첨 여부 등을 직접 확인해 기입해야 한다. 가점도 청약자가 알아서 계산하도록 돼 있다. 무주택 기간과 부양가족 수를 스스로 계산해 넣어야 한다. 청약자격과 가점 항목을 잘못 입력해 당첨이 취소되는 일이 적지 않지만 구제 방법이 없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문가도 부양가족 기준 등 까다로운 각종 규정을 찾아가며 가점을 계산하기 어렵다”며 “청약제도를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민 의원에 따르면 부적격 사유는 단순 실수가 68%로 가장 많다. 이어 재당첨 제한 14%, 과거 5년간 당첨 사실(1순위 제한) 4%, 기타 14% 등이다.

국토부는 이르면 10월부터 청약 전 부적격 여부를 미리 확인할 수 있는 ‘청약자격 사전검증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다. 현행 청약 시스템과 주민등록정보망을 연결해 부양가족 등을 확인하고, 주택 소유 확인 시스템을 연결해 주택 소유 여부와 무주택 기간 등을 확인할 수 있도록 개편한다. 그러나 청약 시 가장 어려운 가점 계산은 여전히 청약 신청자의 몫이다. 청약 시스템에서 열람할 수 있는 정보는 참고용일 뿐 가점 산출을 위한 항목별 가점은 청약 신청자가 직접 기입해야 한다.

안혜원/배정철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