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요코하마 부근에 정박한 크루즈 여객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서 10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환자 65명이 더 확인됐다. 이 배에 탄 사람 중 확진자는 135명으로 늘었다. 탑승자 3600여명이 남아 있어, 환자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이 배는 3일부터 검역을 시작했는데 19일까지 격리가 계속된다. 후생노동성은 의약품 500인분을 탑승자들에게 추가로 공급한다고 NHK가 보도했다. 선박 운영사 카니발재팬은 이 배의 향후 5개 노선 운항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각국 ‘크루즈 입항 금지’
다이아몬드 프린세스는 지난달 말 대만 북부 지룽(基隆)항에 입항한 적 있다. 이 때문에 대만에도 ‘크루즈 감염 비상’이 걸렸다. 2주 안에 중국에 들어간 적 있는 크루즈선들은 지난 4일 입항을 금했고, 6일부터는 모든 국제노선 크루즈 입항 금지령을 내렸다. 10일부터는 중국과 대만을 오가는 직항 선박노선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지룽항 앞바다에는 크루즈선 ‘슈퍼스타 아쿠아리우스’가 붙들려 있었다. 이 배는 일본 오키나와로 가려다 신종 코로나 우려로 입항을 거부당해 회항했다. 승객 대부분이 대만인이어서 당국이 입항 금지령에 예외를 두고 일단 정박시켰는데, 다행히 이 배의 승객과 승무원 2500여명은 9일 음성 판정을 받았다.
홍콩에서도 같은 날 카이탁 터미널에 정박한 크루즈선 ‘월드드림’ 승무원들이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아 3600여명이 배에서 내렸다. 중국 광저우를 출발해 베트남을 거쳐 5일 홍콩에 입항했는데, 승무원들이 거쳐온 광저우의 여행코스를 다녀간 8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러자 홍콩 당국이 크루즈 승무원들을 전부 검사했다. 승객들은 광저우 확진자들 노선과 행로가 겹치지 않아 검사를 받지 않았다. 다행히 승무원들 모두 음성으로 확인됐지만 이 배가 지난달 말부터 남중국해와 필리핀 등지를 다녔기 때문에 당국이 주시하고 있다.
지중해 크루즈선 ‘코스타 스메랄다’에서는 이탈리아 도착 뒤 지난달 말 승객 1명이 발열 증세를 보여 긴장이 감돌았으나 6일 음성 판정을 받았다. 미국서는 7일 크루즈에 탄 중국인 4명이 뉴저지주 병원으로 옮겨져 신종 코로나에 감염됐는지 검사받고 있다.
악몽이 된 여행의 꿈
호화 여객선을 타고 바다를 오가는 크루즈 관광은 많은 이들의 ‘로망’이다. 특히 노후의 안락한 여행을 즐기려는 은퇴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 때문에 크루즈의 꿈은 악몽으로 변했다. 미국 CNN방송은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객실에 격리된 채 답답해하는 탑승자들 모습을 전했다. 이 배에 타고 있는 미국 작가 겸 영화제작자 게이 쿠터는 올해 75세로, 77세 남편과 함께 아시아 크루즈 여행을 시작했다. 쿠터는 “우리 부부는 나이도 많아서 이런 종류의 질병에선 고위험군에 속한다”며 “객실에 갇혀 있어도 안심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심지어 신종 코로나와 아무 관련 없는 배가 크루즈선이라는 이유로 발이 묶이는 상황도 벌어졌다. 미국·네덜란드계 선박회사 홀란드아메리카가 운영하는 크루즈선 ‘웨스터담’은 지난달 16일 싱가포르를 떠났고 2월 1일 홍콩에 들렀다. 한 달에 걸쳐 아시아 일대를 도는 경로였으나 크루즈가 거쳐가기로 돼 있던 필리핀, 일본, 한국이 모두 입항을 거부했다. 대만 카오슝으로 향했으나 당국이 타이베이로의 이동을 금지했고, 지금 대만 주변을 떠돌고 있다. 미국과 네덜란드 정부까지 나서서 배의 항로를 조정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무려 1인당 2만 달러를 내고 배에 올랐던 승객들은 CNN에 “아무도 우리를 원치 않는다”며 당혹해했다.
연간 탑승객 3000만명
세계에서 크루즈 관광 붐이 일기 시작된 것은 1980년대부터다. 2000년대 들어 급성장하면서 관광업계의 핫한 상품으로 떠올랐다. 카리브와 북·중미 노선, 스페인과 이탈리아·그리스 일대를 도는 지중해 노선, 스칸디나비아 피요르들을 도는 북유럽 노선, 홍콩과 일본 사이 태평양 항구들을 오가는 아시아 노선 등 다양한 루트들이 개발됐다.
지난달만 해도 크루즈 업계의 올해 경기전망은 좋았다. 국제크루즈라인협회(CLIA) 자료에 따르면 2009년 1780만명이던 연간 세계 크루즈 탑승객은 지난해 3000만명으로 늘었다. 올해는 3200만명으로 늘 것으로 예상됐다. 협회는 시장 규모가 2010년 157억달러에서 올해에는 315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봤다. 협회 집계로는 세계 55개 크루즈사가 278개 대양노선을 운영하고 있고, 고용 인원이 117만명에 이른다.
일반적인 크루즈선은 ‘메인스트림’이라 불리지만 승객 5000명 이상이 탈 수 있는 초대형 여객선은 ‘메가 크루즈’로 부르기도 한다. 대양을 오가는 ‘오션 크루즈’는 연안 여객선보다 위험한 항해조건에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됐다. 좁은 물길을 드나드는 ‘어드벤처 크루즈’, 쇄빙선이 딸린 북극 주변의 ‘익스피디션 크루즈’, 내륙 수로에 최적화된 소형 ‘리버 크루즈’ 등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탑승객이 늘어남에 따라 선박이 대형화되면서 2020~2025년 사이에 전체 크루즈선 탑승객 수용규모는 3분의1 늘어날 것으로 CLIA는 전망했다. 올해에만 새 크루즈선 19척이 데뷔하기로 돼 있다.
보건문제 부각시킨 신종 코로나
탑승객 숫자로 보면 여전히 카리브 해역 비중이 높다. 이어 지중해와 유럽 노선 승객이 많다. 이용자들은 미국인 숫자가 압도적이지만 근래 중국인이 늘면서 독일을 제치고 2016년부터 2위로 떠올랐다. 덩달아 아시아 노선을 운행하는 크루즈도 늘어나는 추세였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 사태로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다른 여행상품에 비해 노년층 비중이 높은데다, 격리된 공간에서 집단생활을 하는 것이라 감염증에 매우 취약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미국 마이애미와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카니발코퍼레이션은 직원 12만명에 선박 102척을 두고 10개 브랜드의 라인을 운영하는 세계 최대 크루즈 운영사다.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운영사 카니발재팬의 모기업인 이 회사도 손실을 피하기 힘들게 됐다.
입항 거부 같은 사태들을 어떻게 해결할지, 검역은 누가 책임질지 국제법 정비도 필요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일본 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내 감염자들을 ‘일본 내 감염’ 통계에 넣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현재 검역은 일본이 맡고 있다. 미국 탑승자들 일부는 보험사에 연락해 긴급대응팀을 파견받아 배를 떠나는 방안을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승객들도 14명이 타고 있다. 미국과 한국 정부는 일단 격리 해제를 요구하지 않은 채, 일본 당국의 검역절차에 협력한다는 방침을 밝힌 상태다. 한국 정부는 10일 크루즈선 입항을 한시적으로 전면 금지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