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힌 일상… 불안이 분노를 키웠다

2020. 3. 5. 05:57C.E.O 경영 자료

갇힌 일상… 불안이 분노를 키웠다

국민 60% "일상이 정지된 느낌"

분노 감정 6.8% → 21.6% 늘어

일부 확진자 방역 거부 등 영향

정부의 신뢰도까지 8.1%p 하락

이준기 기자

입력: 2020-03-04 18:35

마스크 생산 일손 보태4일 오후 서울 강동구청에서 자원봉사자로 나선 강동구새마을부녀회 및 주민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위한 면 마스크를 만들고 있다. 강동구는 이날부터 한 달 동안 필터를 넣어 사용할 수 있는 면 마스크 2000개를 제작해 관내 어린이집, 복지시설 등에 전달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 30대 중반의 직장인 A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무력감에 빠져 직장이나 가정에서 도통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퇴근 후에 즐겼던 피아노 레슨, 풋살 경기 등이 코로나19 확산으로 잠정 중단된 지 2주가 지났고, 주말에도 가족들과 여행 및 캠핑 등 나들이를 하지 못한 채 집에만 있다 보니 삶에 활력소를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다.

특히 코로나19 지역사회 감염이 확산됨에 따라 가족이나 직장 동료 등 내 주변 사람들이 혹시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았을까 조바심이 부쩍 늘었다. 근무 중이나 출퇴근 거리에서 기침을 하는 사람을 보면 나도 모르게 인상이 잔뜩 찌푸리고, 그 전에 하지 않았던 욕도 혼잣말을 하는 자신을 보면서 놀라곤 한다.

국민 5명 중 3명꼴로 코로나19 사태 이전과 이후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호소하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일상이 정지된 듯한 삶 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확산세를 보도하는 뉴스를 접하면서 불안보다는 분노의 감정이 커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한국헬스커뮤니케이션 학회장) 연구팀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25일부터 28일까지 나흘간 전국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 응답자의 59.8%가 '코로나19 영향으로 일상이 정지된 것으로 느낀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코로나19 사태 초기인 1월 31일부터 2월 4일까지 진행한 설문(1차 조사)에서의 응답 비율(48.0%)보다 10%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이에 반해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1차 10.2%에서 4.2% 줄어 코로나19가 일상 생활에 큰 영향을 주고 있음을 보여줬다.

국민들의 감정도 매우 부정적으로 변했다. '코로나19 뉴스를 접할 때 떠오르는 감정'을 묻는 질문에 '불안'이라고 답한 비중이 48.8%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이 분노(21.6%), 충격(12.6%), 공포(11.6%), 슬픔(3.7%), 혐오(1.7%) 등의 순이었다.

1차 조사 결과와 비교하면 불안은 60.2%에서 48.8%로 11.4%포인트 줄었지만, 분노는 6.8%에서 21.6%로 14.8%포인트 늘었다. 이는 코로나19 지역사회 감염의 온상이 된 신천지 교회와 이들이 정부의 방역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상승한 것으로 파악된다.

국민들이 인지하는 코로나19 위험성 역시 높아졌다. '코로나에 감염될 가능성이 높다'는 응답은 12.7%에서 19.8%로 늘었고, 이에 반해 '낮다'는 응답은 1차 조사 때 42.7%에서 29.2%로 줄었다.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사망자 속출, 마스크 대란 등이 속출하면서 국민들이 느끼는 위험도가 서서히 커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코로나19의 주요 확산 지역인 대구·경북 지역의 스트레스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당히 큰 것으로 조사됐다. 대구·경북지역 응답자들은 한 달 간 '스스로를 무기력하고, 아무 힘도 없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한다(65%, 전체 58.1%)', '내가 보기에 아주 정의에 어긋나고 불공정하다(76.3%, 전체 67.4%)', '내 감정에 상처를 주고 상당한 정도의 울분을 느끼게 한다(71.2%, 전체 60.5%)' 등의 경험이 전체 평균보다 '그렇다'고 답한 비율이 높았다.

또한 방역 당국의 대응에 대해선 긍정적인 평가가 높아졌지만, 국가 리더십과 언론에 대한 신뢰는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반해 청와대에 대한 신뢰 의견은 49.5%로, 1차 조사 때의 57.6%에서 8.1%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명순 교수는 "코로나19에 대한 국민 감정의 양상이 1차 조사 때와 비교해 달라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국민이 코로나19에 느끼는 불안은 불신과 결합된 것으로, 책무성이 강화된 위기소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준기기자 bongchu@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