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 3. 22:35ㆍ건축 정보 자료실
[기획] 언제 닥칠지… 건설업계 중대재해 `멘붕`
시행 1주만에 삼표산업 1호 유력
"다음차례 우리…" 공포감 휩싸여
건설경기 실사지수 17.9P 급락
'잠재적 범죄자' 우려에 좌불안석
입력: 2022-02-03 16:26
3일 오후 경기 양주시 삼표산업 채석장 붕괴·매몰사고 현장에서 경찰 등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이 시행된 지 채 1주일여 만에 국내 1위 골재 업체 삼표산업이 사실상 '중대재해처벌법 처벌 1호' 기업이 될 게 유력해지자 건설업계가 소위 '멘탈붕괴'에 빠졌다. 여차하면 '다음 차례는 우리가 될 수 있다'는 공포감이 퍼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경기 양주 삼표산업 채석장에서 토사가 붕괴, 2명은 숨진 채 발견되고 한 명은 실종된 상태에서 건설업계는 삼표산업 처벌 수위에 촉각을 곧두세우는 분위기다. 중대재해법상 종사자가 사망하면 사업주에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 법인은 50억원 이하 벌금을 선고할 수 있게 돼 있다.
현재 고용노동부와 경찰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등으로 삼표산업 현장 관계자 등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고용노동부는 중앙산업재해수습본부를 구성해 근로감독관 8명을 보내,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건설사 관계자들은 "1호 대상업체가 되지 않으려고 조심하던 업체들이 삼표산업 사고 소식에 다들 불안해 한다"며 "아무리 애를 써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언제 터질지 모를 사고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업계의 최대 관심은 처벌 대상이 오너 일가로까지 확대되느냐의 여부에 모아진다. 이런 상황 속에 중견·중소 건설업체 관계자들은 "사고가 터질 때마다 매번 '오너 책임론'이 부각될 텐데, 차제에 사업을 계속 해야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언제든지 잠재적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에 떠는 기업들이 많아진 가운데 잠깐 호전되는 듯하던 건설경기도 내려앉았다. 지난해 말 두 달 연속 개선됐던 건설업 체감지수가 새해 들어 큰 폭으로 떨어진 것이다.
3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1월 건설기업 경기실사지수(CBSI)가 지난해 12월(92.5)보다 17.9포인트 하락한 74.6을 기록했다. 2020년 8월(73.5) 이후 최저치다. 지난해 11월과 12월 각각 4.5포인트, 4.1포인트 상승하다가 불과 한달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CBSI는 기준선인 100을 밑돌면 현재의 건설경기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는 기업이 낙관적으로 보는 기업보다 많다는 것을, 100을 넘으면 그 반대를 의미한다.
CBSI는 통상 1월에는 연말보다 공사 물량이 감소해 지수가 전월 대비 5∼10포인트 하락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올해는 10포인트가량 더 떨어졌다. 박철한 건산연 연구위원은 "연초 공사 물량이 감소하는 계절적 영향과 함께 중대재해법 시행에 따른 기업 심리 위축 때문에 지수 감소 폭이 예년보다 컸다"고 말했다.
중대재해법에 대한 부담감은 대형 건설업체보다는 중견·중소업체일수록 더 크게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한 중소 건설업체 대표는 "현장 작업을 하자니 잡혀갈 것 같고, 안 하자니 월급을 못 줄 판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다른 중견 건설업체 관계자는 "아무리 시스템으로 준비를 철저히 해도 어차피 사람의 문제라 운 나쁘면 처벌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들은 "50인 미만 5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2년 동안 법 적용이 한시적으로 유예되지만, 시간을 벌어도 대응 능력이 부족한 건 마찬가지"라고 호소했다.
중소·중견 업체들은 원청인 대형 건설사들이 최근 한층 까다로운 현장 안전 기준을 내놓으면서 압박감이 더욱 커졌다. 현장 상황에 따라 수시로 인력이 필요한 하청업체들은 안전교육·관리에 들어가는 비용 부담 가중으로 일용직 근로자를 고용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광범위하고 모호한 규정이 많은 상태에서 법 시행을 강행한 만큼 당분간 혼란이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대표이사에게 큰 과실이 없어도 형사처벌을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어느 정도 경영을 할 여지는 열어놓고 안전에 대해 강조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비용이 증가하는 만큼 발생하게 될 사회적 편익을 감내할 수준인지도 고려하지 않았다"며 "대표의 책임 부분에 대한 기준이 불명확한 상태에서 곧바로 시작됐기 때문에 혼란은 계속될 것 같다"고 예상했다. 박은희기자 eh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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