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CEO 아침동향
2007. 9. 1. 19:07ㆍ이슈 뉴스스크랩
조찬 모임, 등산, 어학 공부…. 꼭두새벽에 기상하는 우리나라 CEO들의 아침이 분주하다. 이들은 근무시간 동안은 회사에 헌신하고 새벽과 아침시간을 최고경영자인 자신에게 쏟아붓는다. 우리나라 대표급 ‘아침형 CEO’, 그들의 새벽 풍경을 통해 성공의 비밀을 알아본다.
지난 5월 말, 삼성경제연구소가 주최하는 ‘SERI CEO 조찬 세미나’에 강사로 초대된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은 입이 딱 벌어졌다. 연단에 선 슈미트의 앞에는 오전 7시 반이라는 이른 시간임에도 800여 명의 인파가 강연장을 메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참석자들은 한국 재계에서 알아주는 기업의 최고경영자와 오너들이었다.
“놀랍다. 이것은 한국 경영인들만의 독특한 문화인 듯하다. 이들이 강의 후 나에게 던진 질문은 하나하나가 날카롭고 예리했다. 경영자가 이렇게 열정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바로 한국경제의 원동력인 듯하다.”
슈미트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지난 7월27일 ‘SERI CEO 조찬 세미나’가 열린 호텔의 연회장. 아침 7시 반이라는 꽤 이른 시간인데도 초로의 기업인들이 연회장에 빼곡히 들어서 있다. 그 사이 사이에 신문 경제면 기사에서나 볼 수 있는 얼굴들이 즐비하다. 삼성석유화학의 허태학 사장, 신세계 석강 대표, 동부화재 김순환 사장, GS홈쇼핑 허태수 회장 등 우리나라에서 가장 바쁜 하루를 보내는 이들이 지각 한 번 하는 법 없이 조찬시간을 칼같이 지키며, 더러는 오전 6시 반부터 와 앉아 있기도 한다.
7시 반부터 8시까지 간단하게 조찬을 먹고 8시부터 강의가 시작된다. 이번 강의의 주제는 ‘인터넷 세상의변화를 읽는 7대 키워드’다. 웹 2.0 시대에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아보는 시간이었다.
이른 아침인데다 나이가 지극한 이들에게 생소하게 느껴질 주제임에도 참석한 경영인 중 조는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고3 수험생의 교실처럼 조용한 가운데 가끔 노트에 강의 내용을 ‘사각사각’ 메모하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우리나라 경영자들을 지켜보면서 참 많이 놀랐습니다. 그렇다고 여기 참석하시는 분들께서 전날 일찍 주무시는 것도 아니에요. 밤에는 또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많은 기업인들끼리 모이는 ‘밤 모임’이 잡혀 있죠.”
‘SERI CEO 조찬 세미나’ 주최를 맡은 이용규 팀장의 말은 다시 이렇게 이어진다.
“밤에 있었던 모임이 거의 자정이 다 돼 끝나는데도 다음날 새벽이면 말끔한 모습으로 조찬모임에 또 나와 계시는 모습에서 ‘역시 최고경영자는 다르구나’ 하고 느꼈죠.”
습관처럼 일찍 일어나는 CEO들
오전 6시. 서울 워커힐 호텔 피트니스 센터에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50대 남자가 러닝머신 위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운동이 끝나면 사우나에서 몸을 풀고 개운하게 샤워한 뒤 회사로 출근한다. 시계는 아직 근무 시작 1시간 전을 가리키고 있다. 남자는 조간신문을 살펴보거나 못 다 읽은 책을 펼쳐 든다. 사무실에 제일 일찍 출근한 그는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다.
좋은 자동차일수록 아침 일찍 회사로 향한다. 한국에서 가장 바쁜 CEO들이 새벽 운동은 절대 거르지 않는다. 하루 24시간을 남보다 더 길게 쓰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는 기업인들, 그들의 아침은 누구보다 길고 활기차다.
사람들은 최고경영자의 부지런한 모습에 감탄할지 모르지만 한 기업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일찍 일어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일지 모른다. 부지런함과 성실함으로 무장했기에 오늘날의 자신이 있는 것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이제는 습관이 되어 누가 깨우지 않아도 저절로 일어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재계를 좌지우지하는 재벌 가문 출신의 오너 경영인이 매일 새벽 이슬을 맞으면 출근한다는 일화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대표적인 재계 ‘새벽형 인간’인 현대자동차의 정몽구 회장은 오전 5시에 일어나 6시 반까지는 서울 양재동 사옥으로 출근한다. 7시 반에 중역회의를 열기도 해 임직원들도 덩달아 아침형 인생이다. 정 회장은 평소 “아침에 집중력이 높아지고 두뇌 회전이 활발해진다”고 주장한다. 그가 중요한 사안에 대해 토론하거나 의사결정을 내리는 시간도 역시 아침시간이다.
정 회장의 생활습관은 ‘왕회장’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고 정주영 회장은 생전에 늘 오전 4시에 일어났고 오전 5시에 아들들을 모아 놓고 아침식사를 했다. 식사시간에 늦은 자식에게 호되게 야단을 쳤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처럼 ‘근면과 성실’을 평생 신조로 삼고 몸소 자식들 앞에서 실천해 보인 왕회장 덕분에 정 회장도 일찍 기상하는 습관이 몸에 뱄다. 고 정주영 회장의 손자인 기아자동차 정의선 회장도 오전 6시 반이면 출근하고, 이르면 오전 8시에 임원회의를 할 때도 있다.
GS그룹의 허창수 회장도 빼놓을 수 없는 ‘아침형 오너’다. 오전 5시에 일어나 매일 헬스장에서 1시간가량 조깅을 한다. 격한 운동보다 가벼운 조깅과 걷기를 좋아하고, 자주 산을 찾아 등산도 즐긴다. 허 회장은 운동사랑을 전파하는 차원에서 임직원들에게 만보기를 선물하기도 했다고. 그는 독서도 좋아해 아침 시간에 전날 읽은 책의 내용을 정리하는 습관도 가지고 있다.
김쌍수 LG그룹 부회장은 <아침형 인간>이라는 책이 돌풍을 일으킨 2003년, 임직원에게 이 책을 언급하며 적극 추천했다. 당시 김 부회장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이 책을 추천도서로 올려놓고 책을 직원들에게 나눠 주는 행사까지 벌였다. 김 부회장 자신부터 오전 5시 반에 일어나지 않으면 몸이 쑤시는 경우다. 그는 “아침시간이 하루를 좌우하고, 그런 하루가 모여 삶을 만든다”며 아침시간 활용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잠이 쏟아지면 이겨내지 못하는 ‘잠보형 인간’이 180도 변해 새벽형으로 변신한 경우도 있다. KT의 남중수 사장은 학창시절 자명종 몇 개를 맞춰 두고 자도 일어나지 못했다. 미국유학 시절 조교로 일할 때 아침 시험에 감독으로 가야 했는데 늦잠을 자느라 제 시간에 가지 못해 교수에게 혼이 난 경험도 있을 정도다.
경영인의 아침에 숨겨진 성공의 비밀
그랬던 그가 CEO가 된 후 완전히 변했다. 외부에서 강연할 때마다 남 사장은 “오다 노부나가는 매일 오전 4시쯤 가장 빠른 말을 타고 성문을 나가 왕복 40리를 달리며 전략을 짰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남 사장은 이르면 오전 4시 반에 출근길에 나선다. ‘창조적 마인드’로 유명한 그답게 매일 규칙적으로 생활하기보다 아침시간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는 밀린 결재를 아침에 해치우고 근무시간에는 더 생산적인 일을 한다. 운동 등 자신만의 취미에 빠져들기도 한다.
“방해 받지 않고 자신만의 계획을 짜거나 구상하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남 사장이 아침형으로 전향한 이유다.
매일 오전 5시, 신세계 구학서 부회장은 이슬 머금어 젖은 산길을 혼자 묵묵히 오른다. 귀에는 1980년대를 풍미한 전설의 록 밴드 ‘퀸’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MP3 플레이어 이어폰이 꽂혀 있다. 요절한 리드싱어 프레디 머큐리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따라 머릿속에는 오늘 해야 할 일의 계획이 점점 채워진다.
이렇게 등산 애호가인 구 부회장은 특별히 새벽 등산을 즐긴다. 스스로 산책과 등산에 중독됐다고 말하는 그는 “소나기가 와도 산책을 해야 하루의 시작이 개운하다”고 말한다. 등산이 끝나면 자택의 정원을 손질한다. 사무실 도착은 7시 반쯤. 이후 이메일을 점검하고 신문 내용을 살핀다.
격식을 차리지 않고 누구나 편안하게 대하는 것으로 유명한 구 부회장이지만 아침시간에 관해서는 엄격하다. “일찍 일어나야 맑은 정신으로 업무를 시작할 수 있다. 아침에 잠도 덜 깬 모습으로 출근하는 사람은 직장인으로서 기본이 안 돼 있다고 본다”는 것이 그의 말.
왜 CEO들은 아침시간을 귀하게 여길까? 사실 그 동안 아침형 인간 열풍에 대한 ‘역풍’으로 ‘올빼미형 인간이 아침형 되려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주장도 숱하게 나왔다. 자신의 체질과 상관없이 트렌드를 좇아 아침형이 되려다 보면 몸이 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CEO들을 만나 아침 기상시간을 물었을 때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는 체질이 영…” 하며 말끝을 흐리는 사람도 가끔 볼 수 있었다. 모든 경영자가 일찍 일어나는 것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대세를 보면 CEO라는 직업군은 역시 아침형과 가깝다. 밤 늦게까지 일하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사람은 대체로 예술가적 기질의 사람이다. 밤에는 사람이 이성보다 감성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밤을 지새워 쓴 연애편지를 아침에 읽어 보면 감상에 푹 빠진 졸렬한 글귀였다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아침은 이와 반대로 이성과 논리가 살아 움직이는 시간이다. 기업을 경영하며 잇속에 밝아야 하는 CEO들에게는 일의 능률을 올릴 수 있는 귀한 시간인 것이다. 경영자로서 황금과도 같은 아침시간의 가치를 안다면 아침 일찍 일어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최근 세계 상위 1% 부자들의 비밀을 알려 준다는라는 책이 서점가에서 대인기다. 굳이 책을 사 볼 필요 없이 이들 최고경영자의 아침생활을 들여다보면 그들이 지금껏 이룬 성공의 비밀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성공적 경영인으로 평가 받는 ‘회장님’과 ‘사장님’ 중에서는 ‘빠른 기상은 부지런함으로, 부지런함은 성공으로 직결된다’고 말하며 아침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가 많다.
신앙생활·등산·조찬모임… CEO의 새벽 풍경
삼성SDS의 김인 사장은 삼성그룹 내에서 가장 부지런하다고 소문난 CEO다. 보통 오전 6시 이전에 일어나는데 “아침 일찍 성당에 미사를 드리러 가던 것이 습관이 된 것 같다”고 이유를 밝혔다. 6시 반부터 1시간 동안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을 한다. 그것도 모자라 출근 때는 25층에 있는 집무실까지 걸어서 올라간다.
집무실에 들어선 후부터 9시 근무시간까지도 여전히 분주하다.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조간신문을 펼친다. 매일 8개의 신문을 빼놓지 않고 본다. 월요일에는 직원들에게 보내는 ‘CEO의 월요편지’를 작성한다. 이메일로 직원들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경영철학과 회사의 비전을 전한 지 벌써 4년째다.
최고경영자가 직원들에게 직접 편지를 써 보낸다는 점에서 ‘월요편지’는 화제가 됐었다.
“똑같은 24시간이지만 먼저 시작하면 그만큼 하루가 길어지고 의미 있게 쓸 수 있다.”
아침에 신앙생활과 운동을 하는 것이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그는 덧붙였다.
신앙생활로 하루를 시작하는 경영인으로 (주)신원의 박성철 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새벽형 인간’이라는 명칭은 그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다. 박 회장이 일어나는 시간은 무려 오전 3시 반. 이렇게 일찍 일어나는 것은 새벽 예배로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서라고. 교회의 새벽기도회와 예배가 보통 오전 5시쯤 시작하기 때문에 늦어도 오전 4시에는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박 회장이 이렇게 일찍 기상할 수 있는 것에는 평소의 건강한 생활습관이 도움이 됐다.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고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다. 꾸준한 운동도 일찍 일어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박 회장이 밝힌 ‘새벽 기상’ 비법이다.
아침마다 신앙활동을 하며 자신을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진 것이 벌써 30년째. 이제는 당연한 하루 일과여서 일찍 일어나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매일 중차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최고경영자들은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조용한 아침, 명상이나 신앙생활을 하며 마음의 평안을 찾는 것은 몸건강보다 훨씬 중요한 ‘마음건강’을 되찾아 줄 수 있다.
정보기술(IT)업계의 ‘걷기 마니아’로 꼽히는 석종훈 다음커뮤니케이션 대표는 기상 후 가벼운 산책을 하며 하루 업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다. 제주도에서 근무하는 석 대표는 “서울과 다른 맑은 공기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즐겁다”고 밝혔다.
석 대표는 기자생활을 하던 시절부터 습관적으로 오전 5시에 일어난다. 그의 아침에 숨겨진 비밀은 ‘인맥 쌓기’. 기자로 일하던 당시 아침 일찍 일어나 조찬모임 등에 부지런히 참석하며 인맥을 만든 것이 사회생활에 큰 도움이 됐다고 회상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아침 일찍 일어나 사람들을 만나라”고 강조한다.
사람 만나는 일은 저녁과 밤에 이뤄진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인데, 사실 아침에 만나는 것이 장점은 더 많다. 밤에 만나면 주변 사람들에 의해 억지로라도 폭음하게 되고 다음날 출근에 지장이 생기기도 한다. 아침에 갖는 만남은 시간이 한정돼 있으므로 절제력이 생긴다. 그만큼 시간을 알뜰하게 쓸 수 있다.
독서를 즐기는 석 대표는 집중력이 올라가는 아침시간에 비즈니스 관련 서적과 인문학 책을 읽는다. 창의적 발상도 이 시간에 주로 이뤄진다. ‘아고라’ ‘미디어다음’ 등 서비스 브랜드의 이름도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능률을 올리기 위해 회의 등의 업무도 아예 아침시간에 집중시킨다.
최근 CEO와 오너 경영인 중 등산에 푹 빠진 사람이 많다. 한 경영 전문지는 “100대 기업 대표 중 19명이 ‘등산을 즐긴다’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손복조 대우증권 대표, 김진수 CJ 사장, 박세흠 대한주택공사 사장이 재계의 대표적 등산가다. 넓고 멀리 보면서 정상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인고의 발걸음을 옮기는 과정이 경영자의 삶과 닮았기 때문이라고.
“1분 1초도 허술하게 쓸 수 없다”
한미파슨스의 김종훈 사장도 등산 애호가다. 지난 겨울에는 두 달간 설악산에서 칩거했을 정도다. 대학 때는 도봉산 암벽을 등반하다 허리를 심하게 다친 적도 있다. 김 사장은 아침시간의 힘을 절대적으로 신봉한다. “효율적인 아침시간 활용이 인생의 성공을 보장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아침을 지배하는 사람이 하루를 지배하고 결국 인생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
이런 신념을 지니고 사는 김 사장의 평소 기상시간은 오전 4시 반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물 한 컵을 마신 후 가벼운 스트레칭과 명상을 한다. 출근 후에는 혼자 사무실에서 책을 읽거나 업무 계획을 세운다. 9시까지는 보고나 전화도 받지 않는다. 집중력 높은 아침시간에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침시간을 충실하게 보내는 것은 단순한 시간관리가 아니라 삶에 대한 자세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김 사장의 지론.
대우조선해양의 남상태 사장에게도 아침시간에 대한 자기만의 철학이 있다. 남 사장은 오전 5시에 일어나 회사 근처 피트니스 센터에서 1시간 반씩 강도 높은 운동을 한다. 매일 5km 이상 달린다. 쉰일곱, 적지 않은 나이에도 매일 운동을 거르지 않는 것은 ‘내 몸은 나 혼자만의 몸이 아니다’라는 그의 평소 생각 때문이다.
“사장직은 2만7,000명에 달하는 회사 직원과 협력업체 직원을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자리다. 건강을 지키는 것은 그들을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CEO로서 어떤 순간에도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아침시간 운동을 꼭 챙긴다는 것이다. 사장직의 무게가 새삼 느껴지는 말이다.
남상태 사장은 아침형 CEO 중에서도 활동의 폭이 넓은 편이다. 경제협회나 경제연구소가 주최하는 조찬 모임에도 여러 곳에 회원으로 가입해 매주 1~2회씩 참석한다. 석학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의견을 교환하다 보면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각이 생겨 회사 경영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옥포 공장으로 출근하는 날이면 아침 일찍 직원들과 함께 조선소 내 작업장을 청소한다. 현장 직원과의 유대감을 높이기 위해서다.
아침시간을 즐기는 CEO들의 공통점은 이른 새벽의 조용함과 고요함 속에서 휴식을 취한다는 것이다. 하이원리조트 조기송 대표도 그렇다. “아침시간은 균형이 깨지기 전의 고요함과도 같다. 이 시간에는 정리된 생각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제는 습관이 돼 어렵지 않게 오전 5시에 일어난다는 그는 간단한 스트레칭을 한 후 아침식사를 먹는다. 자신이 직접 부엌에서 식사 준비를 하기도 한다고. 회사에 일찍 도착해 조 대표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이메일 점검이다. 근무시간 전까지 사무실에서 간단한 맨손체조를 하거나 회사 체력단련 시설을 이용하기도 하는 등 아침 내내 몸을 부지런히 움직인다.
일찍 일어났다고 해서 1분 1초도 허술하게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 조 대표의 생각이다. 5시부터 근무시간 전까지의 시간을 분 단위로 나눠 계획을 세우고, 늘 그 계획대로 규칙적인 시간을 보낸다. 조 대표는 자신의 빠른 기상이 ‘11시 이전 취침’과 ‘규칙적인 운동’ 덕분이라고 밝혔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윤은기 총장은 경영 컨설턴트로 일하며 수많은 CEO를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도 CEO들을 위한 조찬모임을 주최하기 때문에 그들이 아침생활에 얼마나 충실한지 누구보다 절감한다고 전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최고경영자가 이렇게 부지런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윤 총장은 “한국 CEO들이 아침을 사랑하는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경영자들은 근면과 성실, 꾸준한 노력의 가치를 매우 높게 평가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경영인들은 새마을운동이 강조하는 근면 정신을 철저히 교육받았고 ‘한강의 기적’을 두 눈으로 목격한 세대다. 처음 사회에 진출했던 신입사원 시절부터 새벽같이 출근하며 인생을 회사에 바치다시피 일했다.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가 이들의 아침 습관을 만들어 준 것이다.
무작정 ‘아침형’은 건강 해칠 수도
또 일찍 일어나면 하루를 길게 쓴다는 장점도 있지만 ‘선점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 더 의미가 크다고 윤 총장은 말한다.
“최근 CEO들은 ‘스피드 경영’을 추구한다. 미개발된 ‘블루오션’이 있다고 하면 먼저 가서 그 과실을 따먹어야 한다. 빠르게 변하는 시장에서 선점효과를 누리기 위해 상징적으로라도 CEO들이 일찍 일어나 남보
다 빨리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최근 경영인을 중심으로 한 조찬모임이 활발하게 조직되는 것은 경영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지식에 목말라 하기 때문이라고. 학력과잉사회답게 석·박사 학위를 획득한 경영인이 많지만 정작 적용할 만한 지식은 없다고 느낀 탓이다.
“CEO는 논리적으로 구성하는 학자와 달리 ‘Fast Runner’ 지식인이다. 이들이 새벽을 틈타 비슷한 위치의 경영자와 만나는 것은 정보 교류는 물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윤 총장은 아침생활을 위해 몸을 혹사하다가는 건강이 상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통 밤 늦게까지 공적·사적 모임에 참가하기 때문에 아침에 무리해 일어나다 보면 휴식을 취할 시간이 부족해진다는 것이다.
고려대 의대 수면장애클리닉의 이헌정 교수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사람마다 적절한 수면시간이 정해져 있다. 하루에 4시간만 자도 되는 사람이 있는 반면 9시간은 자야 하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의 잠을 자지 못해 만성적인 수면부족 상태다. 항상 바쁘게 지내는 CEO들은 더 심할 것이다.”
이 교수는 잠을 줄여 가며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면 ‘Sleep debt(슬립 데트)’, 즉 ‘잠 빚’을 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될 경우 스트레스가 쌓이고 신체 기능이 떨어지는 등 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이 교수는 덧붙였다.
주말 아침에 평소보다 1시간 이상 늦게 일어난다면 몸이 ‘잠 빚’을 지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즉, 아침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전체 생활의 리듬을 바꿔야 한다. 오랫동안 일찍 일어나는 생활을 계속한 CEO들은 이런 이치를 알고 수면시간만큼은 채우려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실제로 많은 CEO가 밤에는 일을 하지 못하거나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한이 있어도 일찍 잠자리에 든다고 대답했다. 시간을 효과적·경제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어온 자신만의 생활 패턴이 이들의 성공 비밀인 셈이다.
지난 5월 말, 삼성경제연구소가 주최하는 ‘SERI CEO 조찬 세미나’에 강사로 초대된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은 입이 딱 벌어졌다. 연단에 선 슈미트의 앞에는 오전 7시 반이라는 이른 시간임에도 800여 명의 인파가 강연장을 메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참석자들은 한국 재계에서 알아주는 기업의 최고경영자와 오너들이었다.
“놀랍다. 이것은 한국 경영인들만의 독특한 문화인 듯하다. 이들이 강의 후 나에게 던진 질문은 하나하나가 날카롭고 예리했다. 경영자가 이렇게 열정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바로 한국경제의 원동력인 듯하다.”
슈미트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지난 7월27일 ‘SERI CEO 조찬 세미나’가 열린 호텔의 연회장. 아침 7시 반이라는 꽤 이른 시간인데도 초로의 기업인들이 연회장에 빼곡히 들어서 있다. 그 사이 사이에 신문 경제면 기사에서나 볼 수 있는 얼굴들이 즐비하다. 삼성석유화학의 허태학 사장, 신세계 석강 대표, 동부화재 김순환 사장, GS홈쇼핑 허태수 회장 등 우리나라에서 가장 바쁜 하루를 보내는 이들이 지각 한 번 하는 법 없이 조찬시간을 칼같이 지키며, 더러는 오전 6시 반부터 와 앉아 있기도 한다.
7시 반부터 8시까지 간단하게 조찬을 먹고 8시부터 강의가 시작된다. 이번 강의의 주제는 ‘인터넷 세상의변화를 읽는 7대 키워드’다. 웹 2.0 시대에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아보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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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경영자들을 지켜보면서 참 많이 놀랐습니다. 그렇다고 여기 참석하시는 분들께서 전날 일찍 주무시는 것도 아니에요. 밤에는 또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많은 기업인들끼리 모이는 ‘밤 모임’이 잡혀 있죠.”
‘SERI CEO 조찬 세미나’ 주최를 맡은 이용규 팀장의 말은 다시 이렇게 이어진다.
“밤에 있었던 모임이 거의 자정이 다 돼 끝나는데도 다음날 새벽이면 말끔한 모습으로 조찬모임에 또 나와 계시는 모습에서 ‘역시 최고경영자는 다르구나’ 하고 느꼈죠.”
습관처럼 일찍 일어나는 CEO들
오전 6시. 서울 워커힐 호텔 피트니스 센터에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50대 남자가 러닝머신 위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운동이 끝나면 사우나에서 몸을 풀고 개운하게 샤워한 뒤 회사로 출근한다. 시계는 아직 근무 시작 1시간 전을 가리키고 있다. 남자는 조간신문을 살펴보거나 못 다 읽은 책을 펼쳐 든다. 사무실에 제일 일찍 출근한 그는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다.
좋은 자동차일수록 아침 일찍 회사로 향한다. 한국에서 가장 바쁜 CEO들이 새벽 운동은 절대 거르지 않는다. 하루 24시간을 남보다 더 길게 쓰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는 기업인들, 그들의 아침은 누구보다 길고 활기차다.
사람들은 최고경영자의 부지런한 모습에 감탄할지 모르지만 한 기업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일찍 일어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일지 모른다. 부지런함과 성실함으로 무장했기에 오늘날의 자신이 있는 것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이제는 습관이 되어 누가 깨우지 않아도 저절로 일어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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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회장의 생활습관은 ‘왕회장’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고 정주영 회장은 생전에 늘 오전 4시에 일어났고 오전 5시에 아들들을 모아 놓고 아침식사를 했다. 식사시간에 늦은 자식에게 호되게 야단을 쳤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처럼 ‘근면과 성실’을 평생 신조로 삼고 몸소 자식들 앞에서 실천해 보인 왕회장 덕분에 정 회장도 일찍 기상하는 습관이 몸에 뱄다. 고 정주영 회장의 손자인 기아자동차 정의선 회장도 오전 6시 반이면 출근하고, 이르면 오전 8시에 임원회의를 할 때도 있다.
GS그룹의 허창수 회장도 빼놓을 수 없는 ‘아침형 오너’다. 오전 5시에 일어나 매일 헬스장에서 1시간가량 조깅을 한다. 격한 운동보다 가벼운 조깅과 걷기를 좋아하고, 자주 산을 찾아 등산도 즐긴다. 허 회장은 운동사랑을 전파하는 차원에서 임직원들에게 만보기를 선물하기도 했다고. 그는 독서도 좋아해 아침 시간에 전날 읽은 책의 내용을 정리하는 습관도 가지고 있다.
김쌍수 LG그룹 부회장은 <아침형 인간>이라는 책이 돌풍을 일으킨 2003년, 임직원에게 이 책을 언급하며 적극 추천했다. 당시 김 부회장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이 책을 추천도서로 올려놓고 책을 직원들에게 나눠 주는 행사까지 벌였다. 김 부회장 자신부터 오전 5시 반에 일어나지 않으면 몸이 쑤시는 경우다. 그는 “아침시간이 하루를 좌우하고, 그런 하루가 모여 삶을 만든다”며 아침시간 활용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잠이 쏟아지면 이겨내지 못하는 ‘잠보형 인간’이 180도 변해 새벽형으로 변신한 경우도 있다. KT의 남중수 사장은 학창시절 자명종 몇 개를 맞춰 두고 자도 일어나지 못했다. 미국유학 시절 조교로 일할 때 아침 시험에 감독으로 가야 했는데 늦잠을 자느라 제 시간에 가지 못해 교수에게 혼이 난 경험도 있을 정도다.
경영인의 아침에 숨겨진 성공의 비밀
그랬던 그가 CEO가 된 후 완전히 변했다. 외부에서 강연할 때마다 남 사장은 “오다 노부나가는 매일 오전 4시쯤 가장 빠른 말을 타고 성문을 나가 왕복 40리를 달리며 전략을 짰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남 사장은 이르면 오전 4시 반에 출근길에 나선다. ‘창조적 마인드’로 유명한 그답게 매일 규칙적으로 생활하기보다 아침시간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는 밀린 결재를 아침에 해치우고 근무시간에는 더 생산적인 일을 한다. 운동 등 자신만의 취미에 빠져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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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사장이 아침형으로 전향한 이유다.
매일 오전 5시, 신세계 구학서 부회장은 이슬 머금어 젖은 산길을 혼자 묵묵히 오른다. 귀에는 1980년대를 풍미한 전설의 록 밴드 ‘퀸’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MP3 플레이어 이어폰이 꽂혀 있다. 요절한 리드싱어 프레디 머큐리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따라 머릿속에는 오늘 해야 할 일의 계획이 점점 채워진다.
이렇게 등산 애호가인 구 부회장은 특별히 새벽 등산을 즐긴다. 스스로 산책과 등산에 중독됐다고 말하는 그는 “소나기가 와도 산책을 해야 하루의 시작이 개운하다”고 말한다. 등산이 끝나면 자택의 정원을 손질한다. 사무실 도착은 7시 반쯤. 이후 이메일을 점검하고 신문 내용을 살핀다.
격식을 차리지 않고 누구나 편안하게 대하는 것으로 유명한 구 부회장이지만 아침시간에 관해서는 엄격하다. “일찍 일어나야 맑은 정신으로 업무를 시작할 수 있다. 아침에 잠도 덜 깬 모습으로 출근하는 사람은 직장인으로서 기본이 안 돼 있다고 본다”는 것이 그의 말.
왜 CEO들은 아침시간을 귀하게 여길까? 사실 그 동안 아침형 인간 열풍에 대한 ‘역풍’으로 ‘올빼미형 인간이 아침형 되려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주장도 숱하게 나왔다. 자신의 체질과 상관없이 트렌드를 좇아 아침형이 되려다 보면 몸이 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CEO들을 만나 아침 기상시간을 물었을 때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는 체질이 영…” 하며 말끝을 흐리는 사람도 가끔 볼 수 있었다. 모든 경영자가 일찍 일어나는 것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대세를 보면 CEO라는 직업군은 역시 아침형과 가깝다. 밤 늦게까지 일하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사람은 대체로 예술가적 기질의 사람이다. 밤에는 사람이 이성보다 감성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밤을 지새워 쓴 연애편지를 아침에 읽어 보면 감상에 푹 빠진 졸렬한 글귀였다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아침은 이와 반대로 이성과 논리가 살아 움직이는 시간이다. 기업을 경영하며 잇속에 밝아야 하는 CEO들에게는 일의 능률을 올릴 수 있는 귀한 시간인 것이다. 경영자로서 황금과도 같은 아침시간의 가치를 안다면 아침 일찍 일어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최근 세계 상위 1% 부자들의 비밀을 알려 준다는
실제로 성공적 경영인으로 평가 받는 ‘회장님’과 ‘사장님’ 중에서는 ‘빠른 기상은 부지런함으로, 부지런함은 성공으로 직결된다’고 말하며 아침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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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DS의 김인 사장은 삼성그룹 내에서 가장 부지런하다고 소문난 CEO다. 보통 오전 6시 이전에 일어나는데 “아침 일찍 성당에 미사를 드리러 가던 것이 습관이 된 것 같다”고 이유를 밝혔다. 6시 반부터 1시간 동안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을 한다. 그것도 모자라 출근 때는 25층에 있는 집무실까지 걸어서 올라간다.
집무실에 들어선 후부터 9시 근무시간까지도 여전히 분주하다.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조간신문을 펼친다. 매일 8개의 신문을 빼놓지 않고 본다. 월요일에는 직원들에게 보내는 ‘CEO의 월요편지’를 작성한다. 이메일로 직원들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경영철학과 회사의 비전을 전한 지 벌써 4년째다.
최고경영자가 직원들에게 직접 편지를 써 보낸다는 점에서 ‘월요편지’는 화제가 됐었다.
“똑같은 24시간이지만 먼저 시작하면 그만큼 하루가 길어지고 의미 있게 쓸 수 있다.”
아침에 신앙생활과 운동을 하는 것이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그는 덧붙였다.
신앙생활로 하루를 시작하는 경영인으로 (주)신원의 박성철 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새벽형 인간’이라는 명칭은 그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다. 박 회장이 일어나는 시간은 무려 오전 3시 반. 이렇게 일찍 일어나는 것은 새벽 예배로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서라고. 교회의 새벽기도회와 예배가 보통 오전 5시쯤 시작하기 때문에 늦어도 오전 4시에는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박 회장이 이렇게 일찍 기상할 수 있는 것에는 평소의 건강한 생활습관이 도움이 됐다.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고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다. 꾸준한 운동도 일찍 일어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박 회장이 밝힌 ‘새벽 기상’ 비법이다.
아침마다 신앙활동을 하며 자신을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진 것이 벌써 30년째. 이제는 당연한 하루 일과여서 일찍 일어나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매일 중차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최고경영자들은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조용한 아침, 명상이나 신앙생활을 하며 마음의 평안을 찾는 것은 몸건강보다 훨씬 중요한 ‘마음건강’을 되찾아 줄 수 있다.
정보기술(IT)업계의 ‘걷기 마니아’로 꼽히는 석종훈 다음커뮤니케이션 대표는 기상 후 가벼운 산책을 하며 하루 업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다. 제주도에서 근무하는 석 대표는 “서울과 다른 맑은 공기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즐겁다”고 밝혔다.
석 대표는 기자생활을 하던 시절부터 습관적으로 오전 5시에 일어난다. 그의 아침에 숨겨진 비밀은 ‘인맥 쌓기’. 기자로 일하던 당시 아침 일찍 일어나 조찬모임 등에 부지런히 참석하며 인맥을 만든 것이 사회생활에 큰 도움이 됐다고 회상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아침 일찍 일어나 사람들을 만나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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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만나는 일은 저녁과 밤에 이뤄진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인데, 사실 아침에 만나는 것이 장점은 더 많다. 밤에 만나면 주변 사람들에 의해 억지로라도 폭음하게 되고 다음날 출근에 지장이 생기기도 한다. 아침에 갖는 만남은 시간이 한정돼 있으므로 절제력이 생긴다. 그만큼 시간을 알뜰하게 쓸 수 있다.
독서를 즐기는 석 대표는 집중력이 올라가는 아침시간에 비즈니스 관련 서적과 인문학 책을 읽는다. 창의적 발상도 이 시간에 주로 이뤄진다. ‘아고라’ ‘미디어다음’ 등 서비스 브랜드의 이름도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능률을 올리기 위해 회의 등의 업무도 아예 아침시간에 집중시킨다.
최근 CEO와 오너 경영인 중 등산에 푹 빠진 사람이 많다. 한 경영 전문지는 “100대 기업 대표 중 19명이 ‘등산을 즐긴다’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손복조 대우증권 대표, 김진수 CJ 사장, 박세흠 대한주택공사 사장이 재계의 대표적 등산가다. 넓고 멀리 보면서 정상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인고의 발걸음을 옮기는 과정이 경영자의 삶과 닮았기 때문이라고.
“1분 1초도 허술하게 쓸 수 없다”
한미파슨스의 김종훈 사장도 등산 애호가다. 지난 겨울에는 두 달간 설악산에서 칩거했을 정도다. 대학 때는 도봉산 암벽을 등반하다 허리를 심하게 다친 적도 있다. 김 사장은 아침시간의 힘을 절대적으로 신봉한다. “효율적인 아침시간 활용이 인생의 성공을 보장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아침을 지배하는 사람이 하루를 지배하고 결국 인생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
이런 신념을 지니고 사는 김 사장의 평소 기상시간은 오전 4시 반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물 한 컵을 마신 후 가벼운 스트레칭과 명상을 한다. 출근 후에는 혼자 사무실에서 책을 읽거나 업무 계획을 세운다. 9시까지는 보고나 전화도 받지 않는다. 집중력 높은 아침시간에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침시간을 충실하게 보내는 것은 단순한 시간관리가 아니라 삶에 대한 자세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김 사장의 지론.
대우조선해양의 남상태 사장에게도 아침시간에 대한 자기만의 철학이 있다. 남 사장은 오전 5시에 일어나 회사 근처 피트니스 센터에서 1시간 반씩 강도 높은 운동을 한다. 매일 5km 이상 달린다. 쉰일곱, 적지 않은 나이에도 매일 운동을 거르지 않는 것은 ‘내 몸은 나 혼자만의 몸이 아니다’라는 그의 평소 생각 때문이다.
“사장직은 2만7,000명에 달하는 회사 직원과 협력업체 직원을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자리다. 건강을 지키는 것은 그들을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CEO로서 어떤 순간에도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아침시간 운동을 꼭 챙긴다는 것이다. 사장직의 무게가 새삼 느껴지는 말이다.
남상태 사장은 아침형 CEO 중에서도 활동의 폭이 넓은 편이다. 경제협회나 경제연구소가 주최하는 조찬 모임에도 여러 곳에 회원으로 가입해 매주 1~2회씩 참석한다. 석학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의견을 교환하다 보면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각이 생겨 회사 경영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옥포 공장으로 출근하는 날이면 아침 일찍 직원들과 함께 조선소 내 작업장을 청소한다. 현장 직원과의 유대감을 높이기 위해서다.
아침시간을 즐기는 CEO들의 공통점은 이른 새벽의 조용함과 고요함 속에서 휴식을 취한다는 것이다. 하이원리조트 조기송 대표도 그렇다. “아침시간은 균형이 깨지기 전의 고요함과도 같다. 이 시간에는 정리된 생각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제는 습관이 돼 어렵지 않게 오전 5시에 일어난다는 그는 간단한 스트레칭을 한 후 아침식사를 먹는다. 자신이 직접 부엌에서 식사 준비를 하기도 한다고. 회사에 일찍 도착해 조 대표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이메일 점검이다. 근무시간 전까지 사무실에서 간단한 맨손체조를 하거나 회사 체력단련 시설을 이용하기도 하는 등 아침 내내 몸을 부지런히 움직인다.
일찍 일어났다고 해서 1분 1초도 허술하게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 조 대표의 생각이다. 5시부터 근무시간 전까지의 시간을 분 단위로 나눠 계획을 세우고, 늘 그 계획대로 규칙적인 시간을 보낸다. 조 대표는 자신의 빠른 기상이 ‘11시 이전 취침’과 ‘규칙적인 운동’ 덕분이라고 밝혔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윤은기 총장은 경영 컨설턴트로 일하며 수많은 CEO를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도 CEO들을 위한 조찬모임을 주최하기 때문에 그들이 아침생활에 얼마나 충실한지 누구보다 절감한다고 전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최고경영자가 이렇게 부지런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윤 총장은 “한국 CEO들이 아침을 사랑하는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경영자들은 근면과 성실, 꾸준한 노력의 가치를 매우 높게 평가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경영인들은 새마을운동이 강조하는 근면 정신을 철저히 교육받았고 ‘한강의 기적’을 두 눈으로 목격한 세대다. 처음 사회에 진출했던 신입사원 시절부터 새벽같이 출근하며 인생을 회사에 바치다시피 일했다.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가 이들의 아침 습관을 만들어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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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일찍 일어나면 하루를 길게 쓴다는 장점도 있지만 ‘선점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 더 의미가 크다고 윤 총장은 말한다.
“최근 CEO들은 ‘스피드 경영’을 추구한다. 미개발된 ‘블루오션’이 있다고 하면 먼저 가서 그 과실을 따먹어야 한다. 빠르게 변하는 시장에서 선점효과를 누리기 위해 상징적으로라도 CEO들이 일찍 일어나 남보
다 빨리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최근 경영인을 중심으로 한 조찬모임이 활발하게 조직되는 것은 경영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지식에 목말라 하기 때문이라고. 학력과잉사회답게 석·박사 학위를 획득한 경영인이 많지만 정작 적용할 만한 지식은 없다고 느낀 탓이다.
“CEO는 논리적으로 구성하는 학자와 달리 ‘Fast Runner’ 지식인이다. 이들이 새벽을 틈타 비슷한 위치의 경영자와 만나는 것은 정보 교류는 물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윤 총장은 아침생활을 위해 몸을 혹사하다가는 건강이 상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통 밤 늦게까지 공적·사적 모임에 참가하기 때문에 아침에 무리해 일어나다 보면 휴식을 취할 시간이 부족해진다는 것이다.
고려대 의대 수면장애클리닉의 이헌정 교수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사람마다 적절한 수면시간이 정해져 있다. 하루에 4시간만 자도 되는 사람이 있는 반면 9시간은 자야 하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의 잠을 자지 못해 만성적인 수면부족 상태다. 항상 바쁘게 지내는 CEO들은 더 심할 것이다.”
이 교수는 잠을 줄여 가며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면 ‘Sleep debt(슬립 데트)’, 즉 ‘잠 빚’을 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될 경우 스트레스가 쌓이고 신체 기능이 떨어지는 등 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이 교수는 덧붙였다.
주말 아침에 평소보다 1시간 이상 늦게 일어난다면 몸이 ‘잠 빚’을 지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즉, 아침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전체 생활의 리듬을 바꿔야 한다. 오랫동안 일찍 일어나는 생활을 계속한 CEO들은 이런 이치를 알고 수면시간만큼은 채우려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실제로 많은 CEO가 밤에는 일을 하지 못하거나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한이 있어도 일찍 잠자리에 든다고 대답했다. 시간을 효과적·경제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어온 자신만의 생활 패턴이 이들의 성공 비밀인 셈이다.
‘사람과 이미지’의 배국남 대표가 CEO에게 제안하는 아침 습관 |
“아침 1시간 투자에 CEO가 바뀐다” 오전에 회의나 강연이 있다면… + 아침에는 누구나 목이 잠겨 있게 마련이다. 아침에 회의나 강연 등 말을 많이 하는 행사가 기다리고 있다면 목을 틔우는 연습이 필요하다. 잡지나 신문을 들고 큰소리로 읽어라. 발음 연습에도 도움이 되고 입 주변 근육을 이완시켜 준다. 내성적이거나 차가운 인상을 가진 CEO의 경우 + 원래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부하 직원과 친해지는 것을 어려워하는 CEO가 생각보다 많다. 그런가 하면 너무 차가워 보이는 인상 때문에 직원들이 쉽게 다가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회사로 향하기 전에 집에서 거울을 보고 딱 10분만 웃는 연습을 하라. 미소 짓는 얼굴에도 연습이 필요한 법. 노력하면 인상도 바꿀 수 있다. 자신 있게 활짝 웃어보자. 아침마다 몸이 찌뿌드드하다 +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침대에서 스트레칭을 하라. 특히 배가 나오기 쉬운 40~60대 CEO들은 복부 스트레칭을 해주면 좋다. 점심을 먹고 나서 오후 내내 배가 더부룩한 느낌을 갖는 사람이 많다. 복부 스트레칭은 내장기관을 자극해 소화 기능을 높여준다. 우울한 기분에 시달린다면… + 과도한 업무에 치이며 많은 책임을 지고 살아가는 CEO들은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부정적 생각만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아침마다 명상을 시작해보자. 잠깐이라도 눈을 감고 조용한 상태에서 자신을 쉬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짧은 명상이 의외로 많은 도움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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