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 11. 00:37ㆍ이슈 뉴스스크랩
** 겨울 들판을 걸으며 **- 허형만 -가까이 다가서기 전에는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 보이는아무것도 피울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겨울 들판을 거닐며매운 바람 끝자락도 맞을 만치 맞으면오히려 더욱 따사로움을 알았다듬성듬성 아직은 덜 녹은 눈발이땅의 품안으로 녹아들기를 꿈꾸며 뒤척이고논두렁 밭두렁 사이사이초록빛 싱싱한 키 작은 들풀 또한 고만고만 모여 앉아저만치 밀려오는 햇살을 기다리고 있었다신발 아래 질척거리며 달라붙는흙의 무게가 삶의 무게만큼 힘겨웠지만여기서만은 우리가 알고 있는아픔이란 아픔은 모두 편히 쉬고 있음도 알았다겨울 들판을 거닐며겨울 들판이나 사람이나가까이 다가서지도 않으면서아무것도 가진 것 없을 거라고아무것도 키울 수 없을 거라고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 겨울 나무 **- 이 정하 -그대가 어느 모습어느 이름으로 내 곁을 스쳐 지나갔어도그대의 여운은 아직도 내 가슴에여울되어 어지럽다따라나서지 않은 것이꼭 내 얼어붙은 발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붙잡기로 하면 붙잡지 못할 것도 아니었으나안으로 그리움 삭일 때도 있어야 하는 것을그대 향한 마음이 식어서도 아니다잎잎이 그리움 떨구고 속살 보이는 게무슨 부끄러움이 되랴무슨 죄가 되겠느냐지금 내 안에는그대보다 더 큰 사랑그대보다 더 소중한 또 하나의 그대가푸르디푸르게 새움을 틔우고 있는데.
** 어느 겨울날 ** - 김윤배 -어느 겨울날 나는 얼음처럼 투명한 시간 속을 걸었네 앞서간 사람들의 발소리가 따뜻하게 남아 있었네 바람은 모든 떨림을 담아내고 햇살은 추억이었네 내가 만난 것은 버려진 것들의 슬픔이었네 버려진 것들은 한동안 빛이었으나 회색의 단단한 몸으로 굳어져 깨지지 않는 말이 되어 있었네 나는 말의 완강한 슬픔을 보았네 시간 속에서 들꽃이 피고 물소리가 들리고 잎들은 색깔을 바꿔입었네 바람은 모든 떨림을 담아내어 슬픔에게 주었네 물소리가 떨고 색깔들이 떨었네 그것들은 떨면서 버려질 것이네 버려져 슬픔으로 빛나고 내가 시간 속을 걷는 동안 단단한 몸으로 굳어져 슬픔이 될 것이네 슬픔은 오랜 후에 터지는 힘이 될 것이네 .
** 겨울 숲에서 **- 안도현 -참나무 자작나무 마른 잎사귀를 밟으며첫눈이 내립니다첫눈이 내리는 날은왠지 그대가 올 것 같아나는 겨울 숲에 한 그루 나무로 서서그대를 기다립니다 그대를 알고부터나는 기다리는 일이 즐거워졌습니다이 계절에서 저 계절을 기다리는헐벗은 나무들도 모두그래서 사랑에 빠진 것이겠지요눈이 쌓일수록가지고 있던 많은 것을송두리째 버리는 숲을 보며그대를 사랑하는 동안내 마음 속 헛된 욕심이며보잘것없는 지식들을내 삶의 골짜기에 퍼붓기 시작하는저 숫눈발 속에다하나 남김없이 묻어야 함을 압니다 비록 가난하지만따뜻한 아궁이가 있는 사람들의 마을로내가 돌아가야 할길도 지워지고기다림으로 부르르 몸 떠는빈 겨울 나무들의 숲으로그대 올 때는천지 사방 가슴 벅찬폭설로 오십시오그때까지 내 할 일은머리 끝까지 눈을 뒤집어쓰고눈사람되어 서 있는 일입니다.
** 겨울 길을 간다 **- 이해인 -봄 여름 데리고호화롭던 숲가을과 함께서서히 옷을 벗으면텅 빈 해질녘에겨울이 오는 소리문득 창을 열면흰 눈 덮인 오솔길어둠은 더욱 깊고아는 이 하나 없다별 없는 겨울 숲을아는 이 하나 없다먼 길에 목마른가난의 행복고운 별 하나가슴에 묻고겨울 숲길을 간다
** 겨울 사랑 ** - 문정희 -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 겨울 연가 **- 신달자 -한번 더 용서하리라겨울 이별은땅끝까지 떨려설악산엔 이미안개처럼 눈 덮히고서울엔 영하로 떨어져내 창의 울음 커지는 때한번만 더 용서하리라5시에 몰려오는 새벽 어둠은 차고12월의 노을은 너무 적막해몸속의 뼈는회초리로 모두 일어서서심장을 내려치는영웅적 고독을나는 혼자서는 견딜수가 없어그대여좀 더 따뜻한 날에이별할지라도지금은 혼자서는 결딜 수가 없어.
** 겨울의 노래 ** -서 정 윤- 겨울입니다내 의식의 차가운 겨울 언제라도 따스한 바람은 비켜 지나가고 얼음은 자꾸만 두터운 옷을 껴입고한번 지나간 별빛은 다시 시작할 수 없습니다 눈물이 떨어지는 곳은 너무 깊은 계곡입니다바람이 긴 머리를 날리며 손을 흔듭니다다시는 시작할 수 없는 남루한 의식의 겨울입니다이제 웅크린 기침만 나의 주위에 남았습니다그 끝이 보이지 않는 겨울이 아직도 계속입니다.
** 겨울이 오기 전에 ** - 백창우 - 겨울이 오기 전에 얘야,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 몇 장의 편지를 쓰자 찬물에 머리를 감고 겨울을 나는 법을 이야기 하자 가난한 시인의 새벽노래 하나쯤 떠올리고 눅눅한 가슴에 꽃씨를 심자 이제 숨을 좀 돌리고 다시 생각해 보자 큰 것만을 그리느라 소중한 작은 것들을 잃어온 건 아닌지 길은 길과 이어져 서로 만나고 작은 것들의 바로 곁에 큰 것이 서 있는데 우린 바보같이 먼 데만 바라봤어 사람 하나를 만나는 일이 바로 온 세상을 만나는 일인데 조그만 나무 한 그루가 온 우주를 떠받치고 있는데 우린 참 멍청했어 얘야, 오늘은 우리 그리운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자 겨울이 오기 전에...
** 겨울 바람 ** - 김용택 - 당신과 헤어져 걷는 길에 겨울 찬바람 붑니다내 등뒤에 당신이 꼭 계실 것만 같아 뒤 돌아다보면 야속한 바람만 불어댔지요뜨거운 눈물 삼키며 휘청이는 내 발등 위로 억새꽃잎 같은 눈발이 서성거렸습니다 그래도, 그래도, 행여 당신 모습 잡힐랑가 뒤돌아다보면 섬진강 갈대들이 몸 비비며 사노라고 그러노라고 무수히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 갈대밭에 내 까칠한 머리 풀어놓고 걷자걷자 당신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 겨울 찬바람만 휘몰아 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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