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여름부도 괴담

2008. 7. 3. 10:30이슈 뉴스스크랩

일부 중견건설사, 심각한 유동성 위기- 8월 이전 1~2개 유명기업 부도 가능성
- 정부 지원책 '글쎄'…업계 자성론 확산

건설업계가 뒤숭숭하다. 수요 기근으로 갈수록 미분양이 쌓이고 있는데다, 원자재가격마저 급등하면서 자금 압박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

이미 시장에서 위기설이 끊이지 않고 있는 일부 중견건설사 가운데 1~2개 업체가 올 8월을 넘기지 못할 것이란 '여름 괴담'마저 나도는 등 업계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흉흉하다.

2일 건설업계와 금융계에 따르면 주택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중견건설기업 A사는 지난해 하반기와 올 초 두 차례에 걸쳐 부도 위기를 겪은 이후 사채시장에서 어음 할인이 쉽지 않을 정도로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다.

이 회사 어음은 별도의 수수료를 주고 월 4%가 넘는 할인율을 제시해도 사채시장에선 취급하기를 꺼려한다.

대구업체인 B사도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아예 신규 분양사업도 올스톱됐다. 이 때문에 내년 말 이후에는 아예 주택공사 물량이 없게 될 것이라고 이 회사 한 중역은 귀띔했다. 이 회사 어음 역시 할인받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중견건설사 위기 때마다 단골 손님으로 등장해 온 C건설도 최근 매각 소문이 나도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정액 이상의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올리고 있지만, 해마다 실적이 들쭉날쭉한데다 지난해부터는 부채가 대폭 늘고 있다.

공공분야 토목사업 비중이 높은 D건설도 벌써 1년 이상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면서 자구책 마련에 한창이다. 중동에서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E건설도 잇단 분쟁에 시달리고 있다. 이 회사의 경우 이미 자금난에 봉착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이처럼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중견건설사들의 공통점은 최근들어 부채가 크게 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A사의 경우 2005년 2200여억원이던 부채가 지난해 말 3900여억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B건설 역시 같은 기간 부채가 2080여억원에서 3300여억원으로 대폭 늘었다. C건설도 2년새 부채가 25% 이상 많아졌다.

문제는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들 기업의 경우 1군 업체들이란 점에서 그동안 부도가 난 2,3군 업체들보다 후폭풍이 훨씬 클 것으로 우려된다.

이와 관련해 정부 차원에서의 지원도 기대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무엇보다 OECD국가 중 드물게 투자 규모가 300조원을 넘을 정도로 경제 규모에 비해 투자가 많은 우리 현실을 감안할 때 추가적인 투자 촉진 카드를 꺼내들기 쉽지 않다는 견해가 많다. 즉 투자 진작보다 소비 진작이 우선한다는 게 현 정부의 판단이다.

정부 한 고위 관계자는 "인위적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규제완화를 통해 투자를 유도하는 것도 무리"라며 "결국 업체들의 고통은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업계 내부에서조차 자성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주택업체들의 경우 시장이 좋았을 때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이냐"며 "어려울 때를 대비해 미리 포트폴리오를 짜는 기본적 성의도 없었던 것이 이같은 상황을 초래하게 됐다"고 꼬집었다.

멀쩡한 사업부지도 값 20~30% 낮춰 땡처리
입주 앞둔 아파트마저 자금 상환부담 가중
"정부 특단대책 없인 '부도 도미노' 시간문제"

"엄살 아니냐고요? 엄살이라면 왜 멀쩡한 사업부지를 팔고 가격을 20~30%나 낮춰 땡처리업체들에 넘기겠습니까. 이 상태라면 한달이나 더 버틸 수 있을지조차 모르겠습니다."

한 중견 주택건설업체 자금담당 임원의 항변이다.
지금 주택건설업계는 벼랑 끝에 선 형국이다. 올들어 계속 나도는 부도 공포가 더 이상 우려가 아닌 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A사의 한 관계자는 "주택사업이 주력인 중견업체는 웬만하면 다 금융권의 요주의 대상이라고 보면 된다"며 "조금만 이상한 소문이 돌면 해당 업체 자금담당 직원은 하루종일 입주예정자와 채권 금융기관의 전화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부도 도미노'는 시간 문제일 뿐=업계의 한 관계자는 "어느 업체가 위험한지는 이미 지나간 얘기"라며 "지금은 이들 업체 중 누가 먼저 못 버티고 쓰러지느냐가 관심사"라고 말했다.

실제로 현재 전국 미분양 주택은 정부 공식통계로만 13만채를 넘어섰다. 주택산업연구원은 미분양에 묶인 자금만도 22조2,000억원에 이르고 건설업체들이 부담하고 있는 금융비용도 연간 2,600억원을 웃돌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업계의 자금난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히 미분양만이 아니다. 오히려 분양이 완료돼 입주를 했거나 입주를 앞둔 아파트에서 미분양 못지않은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웬만한 지방 아파트는 분양 당시 중도금 무이자나 이자후불제를 적용했기 때문에 업체로서는 입주시점의 자금상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입주가 이뤄지지 않다 보니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김영수 대한주택건설협회 회장은 "수도권에서조차 2만여채가 미분양을 빚고 있을 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며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연쇄 도산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집값' 노이로제 걸린 정부, 대책 외면=여전히 정부는 '책임론'만 내세우고 있다. 업체들이 무리하게 사업을 벌려놓았으니 알아서 해결하라는 것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돈이 된다니까 너도 나도 무리하게 사업을 벌인 업계를 살리기 위해 규제를 푸는 것은 모럴 해저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현재의 시장상황에 대한 국토해양부의 인식은 업계와 확연히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정종환 국토부 장관은 최근 "지금은 부동산시장이 안정되는 시점"이라며 "(미분양 등) 부작용은 업계가 현장에서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정부가 나서기는 어렵다"며 규제완화 가능성을 일축하기도 했다.

정부가 업계의 계속된 요구에도 불구하고 선뜻 규제완화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겨우 진정된 집값이 다시 오를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와 함께 자칫 규제를 풀 경우 '또다시 가진 자들의 배만 불리려고 한다'는 여론의 비판을 받을 수 있어 규제완화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에 대해 업계는 정부가 지나치게 집값 노이로제에 걸려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조준현 대한건설협회 실장은 "지금과 같은 경제상황에서 건설업체들이 연쇄 부도를 낸다면 국가 경제 전체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며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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