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위기는 없다.
2008. 11. 20. 20:25ㆍ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끝나지 않는 위기는 없다 … 인내심 필요 | |||||
금융 위기의 역사 | |||||
최근 미국발 금융 위기의 전개 과정을 보면 주변부 국가의 서러움을 절로 느끼게 된다. 우리나라는 별로 잘못한 것(?)도 없는데 세계 자본주의 중심지인 미국에서 발생한 사고로 인해 금융시장이 요동을 치고 환율에 비상등이 켜졌다. 경제학 원론에서 얘기하는 즉, ‘환율은 한 나라 경제력의 총체적 반영’이라는 정의도 애꿎게만 들린다. 해당 국가가 경제 위기에 처하면 그 나라의 통화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가 그랬던 것처럼 곤두박질쳐야 한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사고는 미국이 쳐 놓고 된통 고생하는 것은 우리나라와 같은 중심부로부터 떨어진 국가들이다. 주변부에서 위기가 오면 주변부의 문제를 해결하면 되지만 최근처럼 중심부에서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취약한 국가들이 먼저 타격을 입게 된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에 지원을 요청한 파키스탄 아이슬란드 헝가리 등은 모두 글로벌 경제에서 취약한 고리에 위치해 있는 국가들이다. 세계 경제사에서 가장 참혹한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는 대공황 시기에도 이런 일들이 벌어졌었다. 미국발 금융 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미국도 엄청난 고통을 느꼈지만 주변부 국가들도 그에 못지않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 역사는 모양만 달리할 뿐 그 속내는 반복되는 법이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시기에 효과적인 투자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금융 위기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00년대 들어 금융 위기 형태로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시기는 1907~08년이다. 주가가 폭락하고 예금 인출 사태가 발생하자 사람들은 공포감에 떨었다. 이때만 해도 미국은 오늘날 중앙은행의 역할을 하는 미국연방제도준비이사회(FRB)가 존재하지 않았다. 참고로 FRB는 1907년의 공황에 대한 반성으로 1913년에 세상에 태어났다. 당시 미국은 중앙은행이나 감독 기관도 없는 가운데 무려 1600개의 금융회사가 이합집산하고 있었다. 주가 폭락을 신호로 금융시장이 위기에 휩싸이자 이때 구원투수로 등장한 인물이 ‘월가의 황제’라고 불렸던 J P 모건이었다. J P 모건은 금융회사 최고경영자들을 회의실에 가둬 놓고 유동성을 공급할 것을 독촉했을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모건의 방식은 결국 올바른 것으로 판명이 났고 금융 위기에 최종 대부자인 중앙은행의 역할이 왜 절실한 것인지 몸소 보여 주었다. 그 이후 세계 경제는 1920년대까지 평온한 시기를 보냈다. 1920년대는 다시 자본주의 위대한 승리를 보여주는 시대였다. 라디오가 등장했고 사람들의 생활수준도 높아졌다. 그러다 자본주의가 거대한 암초를 만난 것은 1929년도 대공황이었다. 대공황은 세계 경제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기간도 가장 길었다. 1929~32년의 4년 동안 고된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금융 위기는 반복의 역사 공황의 폭과 깊이가 그렇게 컸던 이유는 여러 가지 있지만 그중 중요한 것은 최종 대부자인 FRB의 잘못된 대응 때문이었다. 또한 각 국가들의 위기에 대한 공조 체제도 없었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당시 정부는 오히려 긴축을 했고 각 국가들도 관세를 올려 보호무역 정책을 펼쳤다. 가뜩이나 어려운 금융시장을 더 힘겹게 만들었던 것이다. 대공황 여파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전쟁 특수로 사라지고 1950년대와 1960년대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황금기였다. 경기는 회복됐고 중산층이 증가했으며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은 기세 좋게 올라갔다. 일본이라는 이머징 마켓도 세계 경제에 편입되기 시작했다. 1960년대는 흑인 해방 운동 등 정치적 혼란이 있었지만 경제는 이런 갈등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시 위기가 찾아온 것은 1973~74년 1차 오일 쇼크가 발발하면서였다. 오일 쇼크는 엄밀히 말해 금융 위기라고 얘기하기는 어렵다. 어찌 보면 실물의 위기가 금융시장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1970년대는 인플레이션의 시대였다. 경기는 침체했지만 물가는 올랐다. 이런 현상은 자본주의 역사에서 처음 직면하는 일이었다. 이전의 인플레이션은 전쟁 등 특수한 상황에서 발발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전쟁에 필요한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통화량을 늘리는 가운데서 인플레이션이 일어났었다.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경기가 침체되면 수요가 줄어 물가가 낮아져야 하는데 현실은 당시의 통념과 다르게 움직였다. 대공황 이후 세계 경제의 주류 패러다임이었던 존 메이나드 케인즈 식 처방에 대한 회의가 커졌고, 반대로 밀턴 프리드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같은 자유주의 경제학의 방법론이 점차 힘을 얻기 시작했다. 결국 영국의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이 등장하면서 이들의 경제학은 케인즈를 물리치고 주류로 자리 잡게 된다. 1970년대 말 FRB 의장에 취임한 폴 보커는 ‘인플레이션 파이터’라는 명성에 걸맞게 금리를 확 올려 물가를 때려잡았다. 그 이후 미국 증권시장은 저금리 기조와 풍부한 유동성의 공급으로 1982년부터 2000년도까지 최장 호황 사이클을 기록하게 된다. 1980년대 위기는 블랙 먼데이로 알려진 1987년에 발생했다. 이틀 동안 무려 27%가 하락하면서 금융시장을 공포에 떨게 했지만 대략 2년 후에는 다시 안정세를 되찾고 미국 증권시장은 상승세를 계속 이어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다 1990년대에 주목할 만한 금융 위기는 1997년 아시아 통화 위기와 1998년 헤지 펀드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 사태였다. 태국의 바트화 폭락으로 촉발된 아시아 통화 위기는 한국 홍콩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지역 국가들을 큰 곤경에 빠뜨렸다. 하지만 1999년도 이후 이들 국가는 다시 회복세를 보이면서 주가는 큰 폭으로 올랐다. 러시아 정부의 모라토리엄(지불유예 선언)으로 미국의 일류 헤지 펀드인 롱텀 캐피털 위기도 FRB의 주도 하에 미국의 금융회사들이 유동성 지원에 나서면서 금융시장은 곧바로 안정세를 되찾았다. 지금까지 100여 년간의 금융 위기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이런 위기의 역사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1929년의 대공황과 달리 이번 금융 위기는 최종 대부자인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적극적인 수습에 나섰다는 점이다. 현재 세계 중앙은행들은 돈을 풀고 유동성을 공급하고 예금 인출 사태를 막기 위해 규모에 상관없이 예금을 정부가 지급 보증하겠다고 나섰다. 세계적 증권시장 이론가인 제레미 시겔 교수는 대공황과 달리 현대의 금융 위기가 빨리 수습되는 것은 중앙은행 시스템이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둘째, 위기의 기간이 가장 길었던 시기는 1929년 대공황 때로 4년 정도였다는 점이다. 그 이후의 위기는 대략 2~3년 정도 시점에 마무리됐다. 흔히 얘기하기를 시장은 진화적 질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금융시장도 마찬가지다. 위기가 왔다고 세상이 망하는 것이 아니라 혼란기를 거쳐 다시 진화해 나가는 법이다. 금융 위기의 기간이 보여주는 사실은 지금과 같은 시기에는 투자의 시간 축을 늘려 잡는 것이 매우 현명한 태도라는 것이다. 셋째, 위기의 순간마다 일류 투자가들은 투자 비중을 확대했다는 사실이다. 1973~74년도 워런 버핏은 워싱턴 포스트의 주식을 대거 매입했고, 1987년 블랙 먼데이 때에는 코카콜라 주식을 사들였다. 아시아 최대 재벌 리카싱은 아시아 통화 위기 때 기업 인수를 통해 사세를 대대적으로 늘린 바 있다. 시장이 언제 좋아질지, 그리고 회복한다면 어느 정도 회복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실은 끝나지 않은 위기는 없었다는 사실이다. 금융 위기의 역사를 보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지식이 아니라 인내심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이상건 이사는…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한국경제TV, 이코노미스트 등 경제 전문 매체의 재테크 담당 기자를 거쳐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이사로 재직 중이다. 각종 칼럼 집필, 강의, 라디오·TV 출연 등을 통해 자타가 공인하는 금융 콘텐츠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부자들의 개인 도서관’, ‘이채원의 가치투자(공저)’ 등을 펴냈으며 최근 십수 년 동안 연구한 부자들의 생각과 삶을 담은 ‘부자들의 생각을 읽는다’를 출간했다. 이상건·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이사 lsggg@miraeasset.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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