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기업 창업

2008. 11. 23. 12:28분야별 성공 스토리

 

미국발(發) 금융위기의 여파로 국내 고용 시장의 불안이 우려되고 있다. 벌써 기업에선 인력감축, 구조조정 얘기가 나온다. 외환위기 이후 많은 실직자가 음식점 창업 등에 나섰듯이 내년엔 ‘1인 기업’ 창업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1인 기업은 사장이 생산·관리·마케팅 등 모든 걸 책임지는 형태다. 1인 기업 창업은 비용이 적게 들어 망했을 때의 리스크(위험)를 줄일 수 있다. 외환위기 때보다 인터넷이 더 대중화됐고 장소 대여 업체 등 지원시설도 많이 보완이 됐다. 정부도 최저자본금 제도를 없애는 상법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하는 등 1인 기업 창업을 쉽게 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도전하자” 종잣돈 2000만원으로 시작
 대형 출판사보다 수익률 높아… 3만~4만부 나가면 1억 벌어


지난 11월 10일 찾은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인근 도서출판 ‘사이’ 사무실은 권선희(38) 사장 홀로 지키고 있었다. 사무 집기라곤 책상, 테이블, 책장, 팩스 등이 전부였다. 손님이 찾아오면 권 사장이 직접 탄 커피를 내온다.


권 사장은 30대 중반이던 2005년 종잣돈 2000만원으로 1인 출판사를 시작했다. 그 전엔 대형 출판사의 소위 ‘잘나가는’ 편집자였다. 한때 수백만 부가 나가는 베스트셀러를 기획한 적도 있었다. 권 사장은 “‘박수 칠 때 떠나라’란 말이 있듯이 더 나이 들기 전에 자신 있을 때 창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권 사장은 대형 출판사에 매여 있다가 매너리즘에 빠질 것도 걱정했다. 그녀는 “허허벌판에 홀로 서면 조직 속에 안일하게 있을 때보다 아이디어가 많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4년 동안 ‘사이’에서 나온 책은 12권이다. 수십만 권 이상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는 없지만 수만 권씩 팔리는 책은 있다. 그러나 수익률은 대형 출판사보단 1인 출판이 좋았다. 권 사장은 “대형 출판사는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한 마케팅 비용이 많이 나가기 때문에 정작 정산해보면 적자가 되는 경우도 많다”며 “하지만 ‘사이’에서 내는 책은 3만~4만부만 팔려도 대형 출판사에서 20만~30만부 팔린 것보다 수익률이 좋다”고 말했다.


권 사장은 출판할 책을 고를 때 ‘매출’보다는 ‘수익성’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외국서적을 번역하는 경우에도 선인세가 많지 않은 책을 고른다. ‘대박’을 노리지 않는 만큼 책 한 권을 내더라도 신중하게 선택해서 기획, 편집 등에 투자를 많이 한다. 권 사장은 “마케팅은 포기하더라도 좋은 내용을 가진 책을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며 “때문에 책에 관한 한 장인정신을 발휘할 기회가 많다”고 말했다.


권 사장은 “1인 출판사는 불황의 여파를 덜 받는다”고 말했다. 시류에 따라서 책을 기획할 수 없다는 단점이 불황기엔 장점이 되는 것이다. 권 사장은 “최근 대형 출판사들의 매출이 절반 줄었다느니 감원을 한다느니 하지만 오히려 1인 출판사의 입장에선 성장할 기회가 될 것 같다”며 “경기에 민감한 책을 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평소 1년에 4권 정도 출판을 했지만, 남들이 어렵다고 하는 내년엔 5~6권을 낼 계획이다.
1인 출판사는 2000년대 초반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권 사장은 “출판은 기획력만 있다면 아웃소싱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1인 기업을 시작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홍익대 주변에 아웃소싱 회사들이 몰려 있어 자연스럽게 1인 출판사들도 모이고 있다. 권 사장 회사 근처엔 디자인 회사, 필름 출력회사, 외국서적 중개 회사 등이 있다.


또 인터넷이 발달해 복잡한 업무는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어 직원을 둘 필요성도 줄었다. 권 사장은 주로 인터넷상으로 주문을 받고 수금도 온라인으로 하고 있다. 책은 물류창고 회사에 맡기고 주문이 들어오면 배송하도록 한다.


권 사장의 하루 일과는 오전 9시 사무실에 출근하면서 시작된다. 인터넷 서점은 고객이 한 주문을 취합해서 오전 8시30분쯤 출판사에 주문을 낸다. 도매서점의 주문서는 밤에 팩스로 들어와 있다. 11시 이전 시간은 주문을 처리하는 데 쓴다.
그 이후 시간은 외국서적 검토, 원고 편집, 저자나 책 디자이너와 회의 등으로 시간을 보낸다. 영업을 위해 혼자 서점을 돌기도 한다. 퇴근은 오후 10~11시나 돼서 한다. 권 사장은 “혼자 일을 해서 자유롭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오후 6시 ‘칼퇴근’은 불안해서 못한다”며 “저녁 약속이 있으면 밥 먹고 다시 들어와서 일을 손에 잡게 된다”고 말했다.


권 사장이 ‘눈 밝은 독자층’이라고 부르는 고객들이 1인 기업을 유지하게 해주는 바탕이다. 권 사장은 “눈 밝은 독자층은 마케팅 거품이 없는 시장”이라며 “좋은 내용의 책을 내면 어떻게든 찾아서 읽는 독자가 3만~4만명 정도 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널리 광고를 하지 않아도 입소문을 듣고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책을 사가기도 한다.
권 사장은 수입에 대해 “출판사에서 월급쟁이 편집자를 할 때보다는 많이 번다”고 말했다. 3만~4만부만 나가도 권 사장에게 떨어지는 수익은 1억원이 넘는다.


1인 출판엔 어려움도 있다. 처음 창업했을 때는 회계나 마케팅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서점과의 관계는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 몰라 헤매기도 했다. 또 모든 책이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낸 책의 20%는 실패했다. 권 사장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책이 안 팔릴 때가 가장 힘들다”며 “마케팅만 잘하면 30만부 나갈 책이 5만부밖에 안 나갈 때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름 없는 1인 출판사라서 저자를 섭외하는 것도 힘들다. 때문에 외국서적 번역에 주력하고 있다.


권 사장은 “기획력만 탄탄하고 감각을 잃지 않는다면 계속 1인 출판을 해도 매출을 확장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회사 다니며 12년 준비… 학위·수익 모델 갖추고 시작
집을 사무실 삼아 책 쓰기·기고·강연… “75세까지 할 것”


최효찬(45) 자녀경영연구소장은 경향신문 기자 생활을 하면서 ‘메모의기술II’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등 10만권 이상이 팔렸던 베스트셀러를 내던 저술가였다. 최 소장은 2006년 4월 회사에 사표를 내고 1인 기업가로 나섰다. 최 소장은 “기자 생활을 하면서 12년 동안 1인 기업을 준비했다”며 “준비가 돼 있었기 때문에 결단의 순간에 과감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1인 기업을 만들기 위해 신문사를 다니면서 ‘학위’와 ‘수익모델’을 갖추기로 결심했다. 최 소장은 “회사에 다닐 때는 조직이 기댈 벽이 되지만 혼자 일을 하게 되면 학위와 같은 기댈 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5년차가 되던 1995년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석사 과정에 입학했다. 그러나 박사 학위 도전은 쉽지 않았다. 학교에선 회사를 그만두고 진학하는 걸 원했기 때문이다. 최 소장은 “인터뷰 대상자였던 교수 한 분이 나의 석사 논문에 흥미를 가지고 박사 과정에 지원해 보라고 권유하면서 일이 잘 풀렸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테러리즘과 커뮤니케이션’이란 다소 색다른 주제를 들고 2000년 3월 연세대 비교문학협동과정 박사 과정에 입학하게 된다. 하지만 박사 논문은 입학 6년 만에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서야 쓸 수 있었다.


최 소장은 학위를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글쓰기로 방향을 잡아 수익모델을 발굴했다. 그는 1996년 ‘테러리즘과 미디어’라는 번역서를 시작으로 현재 13권의 책을 썼다. 그중에 10만권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가 3권이나 된다. 최 소장은 “10권의 베스트셀러가 있으면 월소득이 1000만원 정도 된다”고 밝혔다.


최 소장은 1인 기업으로 나선 후에 지식 콘텐츠 기업으로서 세 가지의 수익 모델을 갖고 있다. 첫째가 책 쓰기, 둘째가 저널리스트로 잡지 등에 글을 쓰는 것이고, 셋째가 강연이다. 최 소장은 “학부모 대상 강연만 해도 한 달에 400만~500만원을 받을 수 있고 책도 꾸준히 팔려 인세 수입도 괜찮다”며 “회사 생활할 때보다 벌이는 3~4배 이상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간은 여유롭지 못하다. 최 소장은 “1인 기업을 운영한 지난 2년6개월 동안 휴가를 한 번도 못 갔다”며 “시간이 여유롭지는 않으나 정신적인 충족감이 있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75세까지는 1인 기업을 할 것”이라며 “다산 정약용이 평생 500권을 썼다고 하는 데 이에는 못 미치지만 50권의 내 책을 쓴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최 소장의 일터는 주로 집 거실이다. 작년엔 종로에 월 130만원씩 나가는 오피스텔을 빌려 쓰기도 했지만 비용 절감 차원에서 최근 정리했다. 최 소장은 “아내가 남편을 존경할 정도가 돼야 1인 기업을 시작할 수 있다”며 “아내를 감동시키지 못하면 독자나 고객을 감동시킬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00만원 들고 독학으로 연구·개발한 골프장갑 사업
제품 개발·영업·배달까지 1인 3역… 식사 시간도 부족


연규철(43) 연테크 사장은 병원 경영기획실 등에서 10여년을 근무하다 작년 4월 홀로 창업에 나섰다. 종잣돈은 2000만원에 불과했다. 사업 아이템은 골프 장갑이다.
연 사장은 “아이들이 어린데 회사를 다니면 55~58세가 정년이니 큰 아이가 대학 가기 전에 실직할 게 분명했다”며 “65세까지 돈을 벌기 위해 1인 기업 창업에 나섰다”고 말했다.


사업 아이템을 고를 때는 초기 비용이 적게 드는 것과 불황에도 견딜 수 있는 것이라는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연 사장은 “다기능 청소기를 개발해 특허까지 냈으나 계산해 보니 초기 비용이 5억~10억원이 들 것 같아 포기했다”며 “골프장갑은 연간 600억원의 시장으로 아직 골프 시장은 상승세에 있어 불황에도 충분히 견딜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창업 당시 골프 초보자였던 연 사장은 독학으로 공부를 해서 신개념의 골프장갑을 개발했다. 골프장갑에 골프채를 잡는 위치를 표시하고 실리콘 엠보싱 처리를 해서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한 것이다. 연 사장은 “골프장갑 개발을 위해 신제품을 먼저 사용하다 보니 100타가 넘던 실력이 1년 만에 84타를 치게 됐다”며 “제품이 우수한지, 골프 연습을 많이 해서인지 모르겠다”고 웃었다. ‘힘 빼주는 골프장갑’이라는 광고 카피와 ‘G-4-you’라는 브랜드도 연 사장이 직접 만들었다. 연 사장은 경쟁에 취약한 1인 기업으로서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작년 9월 실용신안 특허를 냈다.


판로도 일반 유통망이 아니라 기업 판촉용 시장을 기본으로 잡았다. 연 사장은 “혼자 마케팅을 해야 하므로 일반 유통망을 상대하기가 버겁고, 대량 주문을 받으면 생산 비용을 감당하다가 자금난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연 사장은 인터넷을 통한 직접 판매도 하고 있다.
생산은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갖고 있는 업체에 외주를 맡기고 있다. 연 사장은 “처음엔 외주 업체에서 ‘팔리겠냐’는 반응이었으나 한 달 만에 초기 물량 1000개가 다 팔리자 놀라더라”고 했다.


사무실은 1인 기업을 위해 공간을 빌려주는 업체에 입주해 있다. 한 명이 들어갈 고시원 크기의 사무실은 책상 한 개가 들어갈 공간을 빼고는 골프 장갑과 포장 박스로 꽉 차 있다.


연 사장의 하루는 오전 8시30분 출근해 인터넷 주문을 확인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연 사장은 “한두 개도 택배로 배달을 해준다”며 “고객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 시간이 되면 직접 갖다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오전에는 ‘오늘은 제약회사를 방문한다’ ‘보험회사를 찾는다’는 식으로 영업전략을 세우고 전화로 약속을 잡는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영업을 위해 뛴다.
연 사장은 “1인 기업이다 보니 외상 거래가 안 돼 외주 공장에 주문을 하고 현금을 주고 나면 자금이 묶이게 된다”며 “영업하랴, 배송하랴, 신제품 개발하랴 뛰어다니다 보면 끼니를 거르기도 일쑤”라고 말했다. 또 ‘짝퉁’ 상품이 발견돼도 혼자 움직이니 발 빠르게 대응하기 힘들다. 연 사장은 “마음은 빨리 움직일 수 있지만 몸은 하나인 게 가장 큰 애로다”라고 말했다.


연 사장은 “앞으론 미국 등지에 수출할 길을 모색하고 있다”며 “세계 골프장갑 시장의 10%를 점유하는 게 1차 목표”라고 말했다. 퍼터 등 다른 골프용품도 개발할 계획이다.

“안주하기 싫다” 대기업 나와 중개업체 통해 일감 확보
“수입 많고 자유로워”… 사람들과 부딪치는 건 힘들어


‘1인 지식기업 디자이너 강혜진’.


지난 11월 12일 서울 명동에서 만난 웹디자이너 강혜진(29)씨가 내민 명함에 적혀 있는 글귀다. 강씨는 5년 전 다니던 대기업을 나와 현재 프리랜서 웹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강씨는 “대기업 사내 디자이너는 홈페이지 개편에 의견을 제시할 뿐이고 실무는 하청업체에 외주를 줄 때가 많았다”며 “그런 식이면 정규직 디자이너로서 높은 수준의 실무 실력을 유지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독립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내 웹디자이너로서는 홈페이지 유지, 이벤트 관리, 뉴스 업데이트 등을 할 뿐이어서 실제 디자이너로서의 솜씨를 발휘할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또 강씨는 “큰 조직에 안주하다 보면 새로운 디자인 트렌드나 새로 개발된 프로그램의 사용법도 모르게 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강씨가 1인 기업이 되겠다고 선언했을 때만 하더라도 프리랜서 프로그램 개발자들은 많아도 프리랜서 웹디자이너는 없었다. 소위 ‘블루오션(경쟁자가 없는 시장)’을 개척한 것이다. 게다가 고객들이 대기업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는 디자이너를 선호하면서 강씨는 최근까지 일감이 떨어져 본 적이 없다. 강씨는 “내가 일을 구하려고 전화를 걸어 본 적은 손에 꼽을 정도”라며 “일을 해달라며 먼저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강씨는 일감 중개 전문 업체의 소개를 받아 대기업 홈페이지 개선 프로젝트 팀에 참여하거나 집에서 근무를 하면서 중소기업 홈페이지를 제작하기도 했다.


벌이는 대기업에서 일할 때보다 좋다. 일감이 많을 때는 한 달에 700만~800만원을 번다. 강씨는 “첫 직장인 게임 회사에서 일할 때 연봉이 1200만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월평균 400만원 정도 번다”고 말했다.


홍익대 미대 출신인 강씨는 학생 때부터 좋아하던 게임을 만들고 싶어 대학 졸업 후인 2003년 게임 제작사에 들어갔다. 강씨는 “회사의 막내여서 회사 홈페이지 제작을 맡게 됐는데, 당시 독학으로 사이트를 만들면서 웹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강씨는 게임회사에서 일하면서 새벽 2~3시 퇴근은 일상사이고, 60시간을 잠도 안자면서 일하기도 했다고 한다. 고된 업무 탓에 강씨는 첫 직장에서 익힌 웹디자인을 활용할 수 있으면서도 안정적인 직장을 찾게 됐다. 그래서 대기업 정규직 웹디자이너로 회사를 옮겼고, 다시 1인 기업으로 새출발했다.


강씨가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는 일반 회사에 다닐 때와 마찬가지로 사무실에 나가 일을 한다. 이 경우엔 오후 6시에 퇴근하고 집에서 별도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재택 근무를 할 때는 한결 여유롭게 일한다. 강씨는 “집에서 일할 때는 정해진 시간에만 일을 마치면 되니까 낮에 2시간 정도 골프 연습을 하고, 저녁 약속에도 나갔다 올 수 있다”며 “주로 밤에 작업을 해서 새벽 3~4시까지 일을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을 적당히만 해서는 안 된다. 강씨는 “혹시 적당히 일을 하면 다음에 일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책임감이 더 크다”라고 말했다.


강씨는 1인 기업은 시간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게 매력이라고 했다. 최근 대기업 웹사이트 구축 프로젝트를 마치고 난 후 2주일 정도 말레이시아의 코타키나발루로 남편과 골프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강씨는 “회사에 묶여 있었다면 이런 생활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회사에서 일할 때는 상사의 눈치도 봐야 하고 가고 싶지 않은 회식 자리에도 껴야 하지만 1인 기업으로 활동하다 보니 조직 생활로 인한 불필요한 마찰을 피할 수 있다고도 했다. 강씨는 “1인 기업을 한 다음부터는 야근을 해도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즐겁게 하게 됐다”며 “회사에서 일하는 스트레스가 없는 현재의 생활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자기 계발을 위한 공부도 할 수 있다. 1주일에 2번은 동영상을 구현하는 플래시 프로그램을 배우기 위해 학원을 다닌다. 웹디자인을 위해 동영상을 만드는 기술자들을 부려야 할 경우가 있는데, 강씨 자신이 내용을 알아야 일을 지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씨는 “1인 기업이다 보니 낮에 학원 수강을 할 수 있어 붐비지도 않고 할인까지 받으니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잘나가는 듯한 강씨의 1인 기업에도 약점은 있다. 강씨는 “불황이 닥치면 혹시 프로젝트가 연기되거나 단가가 낮아질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항상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일을 해야 한다는 게 어렵다고 한다. 강씨는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일을 만나야 하니 사교성이 없으면 견디기 힘들다”며 “비위도 좋아야 하니 마음의 안정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1인 기업을 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조언했다.


미래도 불안하다. 강씨는 “나이가 들고 고급 디자이너가 되면 단가가 올라가기 때문에 회사에서 꺼리게 될 것 같다”며 “진정한 전문가가 돼 있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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