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을 잘 읽는 것이 생존능력

2008. 12. 10. 16:24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배영순 교수의 방하 한생각>
‘시절’을 잘 읽는 것이 생존능력

공황의 계절이다. 이 계절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입만 열면 ‘웰빙’을 말했다. 그러나 ‘웰빙’의 시절은 덧없이 끝나고 이제 생존이란 문제가 절박한 화두가 되어 있다. 생존이란 것은 세상에 삶의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 전제 하에 생존지수를 결정하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해서 생각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시절에 밝아야 한다. 옛 사람들은 천시(天時)에 밝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달리 말하면 객관적 정세에 밝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시절에 거스르는 인생경영은 성립할 수 없다.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듯 엄정한 법도가 있다. 세상사도 그렇게 법칙적으로 굴러간다. 시절을 모른다면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에 대비할지를 모른다. 장사를 해도 여름에 호떡 장사를 하고 겨울에 아이스크림 장사를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지금은 공황의 계절이다. 거품이 무성하던 시절과 달리 공황의 계절에는 살림살이가 크게 위축되고 생활필수적 반경으로 축소 조정되기 때문에 라이프스타일 자체가 크게 바뀐다. 그에 부합하는 일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세상에 필요한 일이 무언지를 찾아내는 것, 그 점이 까다롭다. 세상에 필요한 일을 찾자면 세상과 사람들의 필요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내 욕심으로 세상을 마주하고 내 욕심에 맞추어 세상을 보기 때문에 세상과 정확히 만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예컨대 우리는 내가 먹고 살기 위해서 무슨 일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일이 무언지를 생각하지 않는다. ‘일’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는 세상과 만날 접점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 이 점이 문제다.

시절을 알아야 하고 그래야 일이 보인다. 그러나 시절을 알기 위해서는 사심(私心)을 떨쳐야 한다는 것, 이것이 어렵다. 제 욕심에 눈이 어두워서는 시절이라는 객관적 흐름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내 욕심대로 세상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다음, 자기 생산성의 문제다. 내가 세상에서 먹고 살자면 나도 세상에 도움이 되고 세상에 돌려줄 수 있는 가치를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만한 재능이나 기술, 지식이 있어야 한다. 내가 세상에 돌려줄 가치 생산은 생각하지 않고 내가 먹고산다는 개념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능만으로는 안된다. 재능과 도덕성을 겸비한 도덕적 재능이라야 한다. 재능이 없는 도덕성이란 것은 더 말할 것 없이 무능하지만 그 반대로 도덕성이 없는 재능은 교활하거나 타락하기 마련이고 신뢰할 수가 없다. 공황의 계절에 신뢰와 신용을 잃으면 끝이다. 그러니까 도덕과 재능을 겸비해야 한다. 도덕적 재능, 이것이 생존능력의 필수 요건이다.

그 다음 사회성의 문제다. 아무리 재능이 있더라도 사회적 네트워킹에 실패한다면 재능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요컨대 사회성이란 것은 사회적 관계나 인연에서 정확해야 할 것을 말한다. 정확하다는 것은 사회적 공정성과 정의성을 기초로 한다. 그렇지 않다면 신뢰관계가 형성될 수 없고 신뢰관계가 형성될 수 없다면 공존의 네트워킹에서 배척당하기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삶의 뿌리 자체가 동요할 수밖에 없다.

영남대 국사과교수·baeysoon@yumail.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