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주회장이 종업한 이유

2008. 12. 14. 11:14분야별 성공 스토리

▲ 정석주 회장이 11월 21일 한국무역협회 조찬회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 한국무역협회 제공

"사농공상이 있는데, 자식에게 권하긴 싫어"

정 회장은 "나이가 들면 비즈니스 감각이 떨어진다는 점은 어쩔 수 없었기 때문에 일단 일선에서는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1남 2녀의 아이들이 모두 이어받고 싶어하지 않았다. 특히 아들은 미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국내에 들어와 국내 회사에 다니다, 술로 대변되는 한국의 직장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미국으로 돌아가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솔직히 말하면 설득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금은 한국에 사농공상(士農工商) 서열이 없다고 말은 하죠.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속으로 그걸 생각합니다. 뭐, 겉으로 그런 얘기를 안 하는 것을 보면 많이 나아지기는 했죠. 아이들이 그 길을 안 가는 것을 가라고 할 이유는 없었어요."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말이다. 정 회장의 성과를 보면 더 그렇다. 양지실업은 '6무(無)'의 회사다. 정 회장은 인형을 만들어 수출만 하면서 30년 동안 계속 흑자를 내 적자가 없었고 빚이 단 한 푼도 없으며 현금 거래만 하니 당좌 예금 계좌가 없었다. 월급 날짜를 어긴 적도 없고 클레임 걸린 적도 없고 노사 분쟁도 없었다. 많이 팔 때는 1년에 3000만 달러씩 수출을 했다. 신화적인 중소기업이다.


"보통예금 통장 들고 경영하다 보니 매각 가격이 비싸져"

또 현재 상속세 제도에 융통성이 거의 없어서 자식에게 넘겨 주고 나면 세금을 상당 부분 내야 하고 그러다 보면 부도 맞을 게 뻔했다고 한다.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기 위해 사람을 많이 찾아 다녔다고도 했다. 크게 두 가지 조건이 맞아야 했다. 수출만 하기 때문에 영어를 잘해야 했고 봉제인형 업계를 잘 알아야 했다. 그런데 영어를 잘하면 봉제에 대해 전혀 몰랐고, 봉제 업계를 알면 국제감각이 없었다.

찾다 못 찾고, 다른 회사에 파는 방법도 생각했으나 살 기업이 없었다.

"30년 내내 어음 한 장 없이 보통예금 통장만 들고 경영을 하다 보니, 회사를 살 사람도 현금을 엄청 갖고 있어야 하는 꼴이 돼요. 살 사람이 없는 거죠."

그래서 그는 회사 문을 닫기로 했다. 정 회장은 "무리를 해서 넘기거나 다른 사람에게 맡기거나 하면 양지실업은 살아남지 못하고 부도를 맞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기업을 하는 사람은 무슨 상을 받고 어떤 칭송을 받더라도 부도 한번 내면 범죄자 취급을 받으므로 자기 손으로 화려하게 매듭짓고 끝내자는 것이다. 그는 특히 중소기업에 대한 홀대가 심하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운영 경험을 알리겠다"

정 회장은 종업을 결심한 뒤 1년이 넘는 기간을 투자해 '30년 흑자 경영'이라는 책을 직접 썼다. 아는 학자들이 "우리 경영학과에서는 미국 대기업 사례만 놓고 연구를 하고 있는데 정 회장의 사례는 중소기업 운영의 모범이 되므로 꼭 써봐라"라는 권유를 받아들인 것이다. 올 한 해는 이 책을 바탕으로 여러 경제 단체와 대학에 특강을 다니느라 바빴다.

"내년부터 3년만 강의를 해달라"는 제안도 받았으나, 정 회장은 "1주일에 두 번 강의할 체력은 절대로 안 된다"며 거절하고 특강만 하기로 했다. 그는 "비록 회사는 접었지만 내 경험은 충분히 우리 젊은이들이 알고 이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