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실업 대란을 막기 위해 추진하려는‘잡셰어링(임금을 깎아 일자리 공유)’에 국내 대표 기업들이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일부 공기업과 민간 업체가 도입해 잡셰어링‘애드벌룬’은 띄워진 상태다.
그러나 대기업 10곳 중 7곳 이상은 시행을 주저하고 있다. 이유는 난마처럼 얽히고 설켜 있다. 일자리 창출이라는 정부의‘명분’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생존 자체도 불확실한 글로벌 동시 불황속에 또 다른 부담을 떠안기엔 이미 사면초가다.
남용 LG전자 부회장이 지난 9일“잡셰어링이라는 신기루를 쫓아 생산성을 일부러 올리지 않고 열 명이 할 일을 열 두명이 나눠하는 것은 기업엔 독약”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업 경쟁력을 고려하지 않은 채 밀어붙이기 식으론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잡셰어링이 난국 타개를 위한‘적절한’대안인 만큼 이를 본격 논의할 노사민정 비상대책회의에선 세제 혜택 등 일률적인 가이드라인에만 의존하지 말고 업종ㆍ기업별 상황에 맞는‘기업 친화적’조치를 신중히 택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10일 헤럴드경제가 재계 서열 20위까지의 기업(공기업 포함)과 은행ㆍ증권사 10곳 등 30개 대표 기업의 경영지원실장ㆍ재무팀장ㆍ인사팀장 등에게 잡셰어링에 대한 설문 조사를 벌인 결과,‘도입 계획 없다’는 답변은 8곳(26.7%ㆍ공기업 1곳, 금융사 2곳 포함),‘고민중이다’는 15곳(50%)으로 집계됐다.
잡셰어링을 주저하는 업체가 76.7%나 되는 셈이다.‘계획 있다’는 답은 고작 13.3%인 4곳(금융사 3곳, 제조사 1곳)에 불과했고,‘무응답’은 3곳(10%)이었다.
수출보험공사, 인천공항공사 등이 대졸 초임을 삭감해 신규채용 인원을 늘리는 잡셰어링에 최근 합의했으나 더 확산되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다. 더욱이 취업준비생의 눈높이가 설문 대상 기업에 사실상 고정돼 있는 상황이어서 잡셰어링은 소규모 사업장에만 그치는‘반쪽’이 될 우려도 있다.
정부가 잡셰어링 확산의 보루로 삼고 있는 공기업의 답변은 이런 걱정을 더욱 깊게 한다.‘대졸 초임 20~30% 삭감 통한 신규 채용 확대’방안에 대해 6개 공기업 중 절반이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주된 이유는‘동일노동ㆍ동일임금 원칙에 위배돼 인건비 2중구조라는 법적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아예 올해 채용계획이 없다는 공기업도 2곳이나 있었다.
민간 기업은 언감생심이다.‘인력 채용구조가 복잡해진다(22.2%)’‘추가 채용 여력없다(11.1%)’‘노조 반발(11.1%)’ 등으로 인해 잡셰어링 도입이 힘들다고 했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경기 침체로 임금을 더 깎으면 현실적으로 버티기 어려운 직종도 있다”며 “임금 삭감을 통한 일자리 창출은 기존 근로자와 신규 인력을 차별하게 돼 머지않아 세대갈등을 야기할 수도 있기 때문에 다양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성원ㆍ하남현ㆍ김민현 기자(hongi@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