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명인 1호 김순자 사장
2009. 3. 14. 17:23ㆍ분야별 성공 스토리
1988년 함께 김치를 담그던 일용직 아주머니 10여명이 짐을 쌌다.
한성식품 김순자 사장 (55)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올림픽이 열리기 직전이었다.
1986년 6월 회사 설립 직후 아시안게임 김치 공급업체로 선정돼 매일 밤샘 작업을 통해 김치를 공급했고, 잇따라 올림픽 김치 공급업체로도 선정된 터였다. 하지만 아주머니들은 "그 고생, 또 하고 싶지 않다"며 떠나버렸다.
그렇다고 선수촌에 김치를 안 보낼 수는 없는 일. 김 사장은 팔을 걷어 붙였다. 매일 밤 혼자서 재료를 다듬고 배추를 절이고 김치소를 만들었다. 많을 땐 하루 4300포기까지 혼자서 김치를 담갔다. 공장에 놀러오는 친구 친척 지인들을 그냥 눌러 앉혀 비닐장갑을 끼게 하고 "나랑 같이 김치 좀 담가 달라"고 애원했다. 미친 듯 김치를 담그는 동안 제대로 자 본 기억조차 없다. 목욕탕에 가서 옷 갈아입으며 잠깐씩 눈 붙인 시간을 다 더하면 1주일에 3시간쯤 될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일용직 아주머니들이 나간다고 할 때 너무 어이가 없어 바닥에 주저앉았어요. 그리고 한참을 생각했죠. '다른 사람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하고. 그런데 그 때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가 이런 생각할 겨를이 있을까.'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었지요."
88올림픽과 장애인 올림픽, 2002 부산 아시안게임,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등 국제적인 행사를 무사히 치러낸 김 사장은 차츰 내공을 쌓아갔다.
지금까지 그는 무려 70여건의 김치발명특허를 출원해 미역김치, 생쑥김치, 깻잎양배추말이김치, 롤샌드위치 김치 등 국내 18건, 국외 1건 등 모두 19건의 특허를 등록했다. 현재 롯데, 힐튼, 조선, 신라 호텔 등 40여 호텔 체인에 제품을 납품하고 있으며 청와대, 국회, 국가정보원, 군부대 등의 식당에도 그가 만든 '정드린 김치'가 식탁에 오른다.
2007년에 그는 농림부로부터 국내 김치 명인 1호로 지정됐다.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그가 선두에 설 수 있었던 데에는, 사람이 없으면 혼자서라도 밤을 새며 4000여 포기의 김치를 담그는 '저돌성'이 한 몫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아닷컴 정주희 기자
● 위기일수록 정공법으로 돌파한다
2005년 11월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일부 국산 김치에서 기생충 알이 나왔다"고 발표하자 중소 김치 제조업체들은 속속 문을 닫았다. 일부 대기업 계열 김치 업체들은 이 사건 이후 1, 2년 뒤에 매각되기도 했다.
당시 한성식품은 창사 이후 최고 수준의 매출을 내던 때였다. 2004년 연간 매출액이 453억원이었고 2005년에도 최고치 갱신을 눈앞에 두고 있다가 날벼락을 맞은 것.
김치 주문량이 평소의 6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고 은행과 거래처 사람들이 빌려준 돈 원금을 당장 내놓으라며 회사로 들이닥쳤다.
때 마침 신한은행에서 리본에 '힘내십시오, 큰 발전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적힌 난(蘭)을 보내왔다. 신한은행장 명의로 돼 있었다. 김 사장은 난 화분을 들고 가 회사에 자리 펴고 앉아 있던 채권자들에게 되레 호통을 쳤다. "신한은행장이 우리를 믿는데 왜 당신들은 못 믿느냐. 우리 김치에서 기생충이 나오기라도 했다는 말이냐"고.
그렇게 채권자들을 돌려보낸 김 사장은 가뜩이나 어려운 형편에 30억원을 추가로 투자했다. 품질에 대한 불신에서 시작된 위기는 품질관리 수준을 높여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에둘러 돌아가지 않고 정면 돌파하는 정공법을 선택한 것이다.
품질관리 투자 결과 그는 경기 부천 본사 공장의 생산 시설에 대해 식약청의 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인증을 받았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안전성 인증도 받았다.
위기 때 한 투자는 몇 곱이 되어 돌아왔다. 김 사장은 2007년 말레이시아 디자인발명협회장 특별상을 받았으며 같은 해 국내 김치명인 1호로 지정됐다.
회사도 안정을 되찾아 현재 김치 납품 시장 1위, 소매 시장에서도 2위권을 달리고 있다. 하지만 '기생충 김치 파동'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지난해 매출액은 396억원. 김치파동 전에 비해 여전히 60억 원 정도가 적은 수치다. 1, 2위 기업의 매출액이 이 정도라는 것은 그 만큼 국내 김치 시장 자체도 위축됐다는 얘기다.
▲동아닷컴 정주희 기자
● 김치로 알약까지- 할 수 없는 일이란 없다
그가 김치 분야에 뛰어들게 된 것은 "김치가 귀중하다면서도 사람들이 김치를 천대하는 게 화가 나서"였다.
"흔히들 '가난해서 물에 밥 말아 김치하고 먹는다' 그러잖아요. 한국인에게 꼭 필요한 반찬, 외국에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가 천대받는 게 화가 나서 '김치의 자리를 찾아주자' 스스로 다짐했어요."
남달리 특허출원이 잦고 각종 특허를 보유하게 된 것도 '김치 자리 찾기'를 위한 노력의 결과였다.
"사람들이 왜 김치를 천대하나 조사해봤더니 첫째는 냄새, 둘째는 빨간색이 주는 혐오감, 셋째는 특히 어린이 중심으로 매울 것이라는 거부감이 크더군요. 그렇다면 전통이 유지되면서도 형태 색깔에 대한 생각의 틀을 바꾸는 새로운 레시피를 만들어보자 생각했죠."
김치에 유산균이 가장 많을 때 급속 냉동 건조를 시켜 과자나 술안주처럼 먹을 수 있는 동결 건조 김치로 특허를 내놓았고 김치 초콜릿도 만들었다. 떡을 먹을 때 김치를 먹으면 체하지 않는다는 속설을 확인하기 위해 떡 속에 동결 건조 김치 분말을 넣어보기도 했다. 이 떡을 먹으면 떡에서 김치 향이 나거나 씹히는 것은 없는데 삼키고 나면 김치 맛이 난다고 한다.
또 과자 사탕 빵 케이크에도 김치를 넣어 맛을 내보고 김치 술도 담가봤다. 김치로 캡슐 형태의 알약을 만드는 기술도 확보했고 김치를 재료로 한 조미료도 개발해 놨다.
"숱한 시도 중에 어떤 것이 미래 소비자의 취향에 맞을지는 아직 모르지요. 하지만 미래의 김치는 식탁 밖으로 나와 술안주, 과자, 영양제 등 생활 곳곳으로 파고들 것으로 확신합니다."
그는 "나는 사장이자 일꾼"이라고 강조하면서 "김치가 외국인들이 밀수를 해서라도 갖고 싶은 한국산 명품이 되도록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나성엽 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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