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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전거 도둑'은 만성 실직 시대 밥벌이의 처절함과 함께 아버지와 아들이 진한 부정(父情)을 통해 행복의 방정식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
이 주의 명작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 영화 ‘자전거 도둑’
고골리 ‘외투’
지난해 여름에 아내가 밍크코트를 샀다. 겨울에 사면 너무 비싸다며 여름날 세일 매장을 찾아 구입했다. 작은 학원을 운영하는 아내는 “원장이라면 밍크코트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며 입버릇처럼 말했다. 밍크코트는 세일을 해도 비쌌다. 지난 겨우내 아내는 이 코트를 애지중지하며 입고 다녔다. 요즘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자 “아이, 날씨가 추워 다행이야. 호호!”라면서 다시 코트를 꺼냈다. 그 얼굴에는 행복한 표정이 가득했다.
① 톡·톡·톡= “소유에 행복이 없다. 행복은 존재에 있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To Have or To Be)’에서 인간이 진정 행복해지려면 ‘소유’가 아닌 자신의 ‘존재’에 집착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어느 단계까지는 소유가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 존재에 집착하는 삶은 예컨대,
자신이 하는 일 자체에 열정을 쏟으면서 충실할 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고 절로 돈을 벌게 해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존재 양식으로 사는 사람들은 그리 흔하지 않다.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에 있다고 주장하다가는 아내에게 혼나기 십상이다. 당장 내일 아침 빵이 떨어질 판인데 돈보다 일 자체를 즐기려고 한다면 가정불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 당신 잘났어. 어디 한번 폼 나게 살아봐!”라며 냉대에 찬 소리를 들을 게 뻔하다.
밥이 절박할 때, 가장은 무엇보다 밥을 해결하는 게 우선이다. 그 밥벌이는 즐거운 일이라기보다 절박한 일에 속한다. 그러자면 악착같이 소유에 집착해야 한다.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이탈리아 영화 ‘자전거 도둑(원제 Ladri Di Biciclette, 1948)’은 먹고살기조차 힘든 시절 밥벌이에 나섰다가 곤경을 겪게 되는 한 가장의 이야기다. 흑백영화만큼의 애잔함으로 가슴을 울리게 하는 이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이 휩쓸고 간 이탈리아 로마가 배경이다.
② 톡·톡·톡= “The Show Must Go on”
이는 영국의 록 그룹 퀸(Queen)의 노래 제목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영어권에서 속담같이 자주 쓰는 이 문장은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세상은 돌아가야만 하고, 자신이 맡은 역할을 수행해야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또한 ‘지금-여기’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영화는 한 남자가 거리에서 일거리를 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주인공 안토니오(마조라니 분)는 직업소개소에서 다행히도 포스터 붙이는 일자리를 구한다. 단, 전제 조건이 있는데 자전거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안토니오는 오랜 실직으로 인한 생활고로 이미 자전거를 전당포에 저당 잡힌 상태였다(당시 자전거가 전당포의 주력 품목이었다). 자전거가 없으면 그 일자리마저 허사가 된다.
안토니오의 아내 마리아는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듣자 침실로 곧장 가서 혼수로 해 온 침대보를 거두며 단호하게 말한다.
③ 톡·톡·톡= “우리는 침대보가 없어도 살 수 있어요.”
침대보를 전당포에 맡기고 받은 돈으로 안토니오는 자전거를 찾아온다. 안토니오는 아내에게 자신이 근무할 회사를 보여주면서 “가족수당에 시간외수당까지 받는다”고 말한다. 이들에게는 ‘불행 끝, 행복 시작’인 것이다. 첫 출근하는 날 아침 아들 브루노(스타졸라 분)는 저전거를 닦고 또 닦는다. 출근길에 아들을 학교에까지 태워주는 안토니오의 얼굴에는 희망으로 빛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자전거를 벽에 세워놓고 벽보를 붙이고 있는데 한 젊은이가 자전거 주위를 어슬렁거린다. 미쳐 대응할 틈도 없이 도둑은 자전거를 훔쳐 달아난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도둑을 뒤쫓아 가지만 역부족이다. 이 남자가 감당해야 할 허탈감이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이된다. 영화를 보다 그만 막막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안토니오는 매일 도둑을 찾아 거리로 나선다. 그는 경찰서로 가 자전거를 찾아달라고 한다. 경찰의 말이 가관이다. “신고가 접수됐으니 처리된 거라고. 이제 당신이 알아서 찾아봐.” 어딜 가나 민중의 지팡이는 이 모양인가.
도둑을 찾아 나선 안토니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존재가 있는데 다름 아닌 어린 아들 브루노다. 세찬 비를 흠뻑 맞으면서도 도둑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는 아이의 모습은 영화가 끝난 후에 더 진한 여운으로 남는다. 그런 아들의 모습은 때로 안쓰러움을 자아내면서도 ‘저게 바로 아들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하루 종일 걸어 다니느라 녹초가 된 아버지는 뜻밖에도 점집을 찾아간다. 사람들은 어려움에 처하면 성당이나 교회, 절 등을 찾아 기도하는데 안토니오가 찾아간 곳은 뜻밖에도 점집이었다. 자전거 도둑을 찾기 위해 점집을 찾아가는 아이러니. 그만큼 안토니오에게는 자전거가 절박한 생존의 무기였던 것이다. 자전거를 찾는다는 말에 점술사는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절망한 안토니오는 자전거를 훔치기로 결심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전차를 타고 먼저 가라고 한다. 지혜로운 아들은 전차를 타지 않는다. 아버지가 자전거를 훔치고 달아나고 그 뒤를 따라 사람들이 뒤쫓는데, 아들이 이 장면을 보게 된다. 결국 아버지는 사람들에게 잡혀 구타당한다. 와중에 아버지는 중절모를 떨어뜨리고 아들은 울먹이면서 모자를 줍는다.
경찰서로 끌고 가야 한다는 군중과 아버지 옆에 서서 울먹이는 아들의 안쓰러운 모습(이런 상황에서 어떤 아들은 아버지가 수치스러워 도망갈 것이다. 하지만 가족은 위기에 처할 때 특히 ‘한 편’이어야 한다!). 결국 울먹이는 아이를 본 자전거 주인은 “문제 삼고 싶지 않다”며 아버지를 풀어주라고 한다.
④ 톡·톡·톡= “자식 교육 잘 시킨 줄 알아요. 이 정도로 끝나다니 운 좋은 줄 알아요.”
대부분의 가정에서 아버지가 위기에 빠진 아들을 구하는데, 영화에서는 아들이 아버지를 구한 것이다. 풀려난 아버지는 서러워 운다. 훌쩍이던 아들이 우는 아버지에게 손을 먼저 내밀고(대부분 아빠가 아들의 손을 잡는다!) 거리를 걸어가는데,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에서 특히 감동적인 것은
자전거를 도둑맞고 실의에 빠진 아버지의 ‘수호천사’처럼 졸졸 따라다니는 아들의 모습이다. 아버지라면 ‘저런 아들을 두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아버지와 아들의 동행만큼 행복한 동행이 또 있을까. 이런 영화평이 눈에 들어온다.
⑤ 톡·톡·톡= ‘자전거 도둑’을 따라가다 보면 입에 풀칠하는 게 어떤 건지, 가장이 무엇인지, 가족의 무게가 얼마인지, 그리고 ‘아비’를 바라보는 아들놈의 그렁그렁한 두 눈이 끝도 없이 깊어지는 게 보인다!
이 영화는 러시아 작가 고골리의 ‘외투’가 중첩돼 떠오른다. 이 소설은 귀가하다 외투를 빼앗겨 결국 시름시름 앓다 죽은 하급 관리의 이야기다. 안토니오에게 자전거가 전부였다면 소설의 주인공인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에게는 ‘외투’가 전부다. 러시아의 엄혹한 추위를 이겨내자면 외투야말로 생명을 지켜낼 수 있는 필수품이기 때문이다. 외투를 빼앗긴 주인공은 안토니오처럼 경관을 찾아가지만 그 역시 빈정거림만 당하고 만다. 외투를 찾지 못한 그는 결국 죽게 되는데, 원통한 영혼은 유령이 되어 세상을 향해 ‘복수’에 나선다.
안토니오의 ‘자전거’나 아카키예비치의 ‘외투’처럼 누구에게나 절실한 것이 있다. 그런 절실한 것을 빼앗은 자, 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는 지금 무엇이 가장 절실한지, 그리고 위기에 빠졌을 때 당신을 졸졸 따라다닐 ‘브루노’, 혹은 ‘동행자’는 있는지.
최효찬 소장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향신문 기자를 거쳐 현재는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강의를 하는 한편 자녀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 ‘5백년 명문가, 지속경영의 비밀’ ‘아빠가 들려주는 경제 이야기 49가지’ ‘메모의 기술 2’ ‘한국의 1인 주식회사’ 등의 저서가 있다.
최효찬·자녀경영연구소장 / 문학박사 roma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