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직선제 아파트 회장.

2009. 6. 17. 17:37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도 직선제 시대

 

16일 오후 7시쯤 대구 북구 동변동 유니버시아드 선수촌 아파트 2단지 중앙광장에 아파트 주민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30여분쯤 지나자 광장은 수백명으로 불어났다. 일부 주민은 갖고 온 돗자리를 깔았고 일부 주민들은 나무 벤치와 화단에 자리를 잡았다. 무대는 봉고트럭 위에 마련됐다. 수백명의 주민들이 모인 이유는 뭘까? 유명 가수의 공연이라도 벌어지는 것일까?

 

8시쯤 되자 궁금증은 해결됐다.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에 입후보한 3명의 후보자가 무대 위로 올라섰다. 이들 후보는 저마다 공약을 내세우며 "뽑아만 주신다면 주민들을 위해 한몸 바쳐 열심히 뛰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 직선제로 아파트 회장을 선출하는 유세현장이었다. 그동안 입주자대표회장은 동대표들 사이에 간접투표로 선출되는 경우가 보통이지만 이 아파트는 지난 5월 아파트 관리규약 개정을 통해 '직선제'를 도입했다. 대구경북에선 처음이다.

 

아파트 곳곳에 입후보자들의 선전 벽보가 붙었고,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국회의원 선거 못지 않은 열기였다. 주민 50% 이상의 동의를 얻어 선출된 동대표 18명에게 회장 입후보자격이 주어졌으며 이 중 5명이 출마했지만 2명이 사퇴하고 최종 3명의 후보가 경합을 벌이게 됐다.

 

합동연설이 시작되고 후보자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초여름 밤 아파트 단지를 가르자 운동하러 집을 나섰던 주민들까지 발걸음을 멈추고 후보자들의 공약에 귀를 기울였다. 유일한 여성인 장명숙(54) 후보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하는 것이 아니라 암탉이 울면 알을 낳습니다. 한번 맡겨주십시오"라고 말하자 주민들은 웃음과 함께 큰 박수를 보냈다.

 

강태호(51) 후보는 하자보수와 안전진단 실시, 복지시설 확충 등 6개의 공약을 조목조목 설명하며 열변을 토했다. 황현길(47) 후보는 "오랜 시간 인내하면서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뤄온 주민들을 위해 몸을 바쳐 일하겠다"며 꽃담 조성과 주변 환경 개선 등의 공약을 내걸었다.

 

후보자 연설이 끝날 때마다 주민들은 손뼉을 쳤고, '옳소'라며 화답을 하는 등 뜨거운 호응을 보냈다. 주민 김모(56)씨는 "지금껏 동대표나 주민대표 회장이 누군지도 모른 채 살아왔지만 앞으로는 투명한 입주민대표 모임이 꾸려질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선거는 21일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열리며 이날 밤 당선자가 가려진다. 투표권은 1천160가구에서 가구당 1명씩 행사할 수 있다.

 

대구아파트사랑시민연대 신기락 사무처장은 "공동주택 표준관리규약에는 회장을 입주자 투표를 통해 선출할 수 있는 조항이 있지만 대부분 사문화되고 있다"며 "주민 직선제가 다른 아파트 단지로 전파돼 투명하고 건강한 아파트 주거문화를 이루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