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650마리 키우는 28세 처녀

2010. 4. 7. 09:31분야별 성공 스토리

[달리는 여성 프로페셔널] 소 650마리 키우는 28세 처녀
[조선일보] 2010년 04월 06일(화) 오전 03:16   가| 이메일| 프린트
"힘드냐고요? 체질이에요! 다들 그러시대요. '너같이 어린 애가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요. 그런데 얘네들(소) 눈만 보면 피로가 싹 풀려요. 다들 강아지 같아요. 이렇게 긁어주면 또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이 애들 다 제 손으로 탯줄 끊어 일일이 받았어요."

지난 2일 경남 김해시 생림면 무척산(無隻山) 자락에 위치한 서현목장.

긴 생머리에 쌍꺼풀진 커다란 눈,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은 앳된 모습의 문서현씨가 자기 몸집의 몇 배나 되는 소를 쓰다듬으며 여물을 먹이고 있었다. 손톱마다 곱게 바른 연녹색 매니큐어가 눈에 띄었다. 28살. 대학생티를 갓 벗은 듯 보이지만 여느 아가씨와 달랐다. 그녀는 한우(韓牛) 650마리의 '어머니'였다. 개인 목장이 보통 200~300두인 걸 감안하면 상당한 규모다.





문서현 대표는 올 2월엔 종축개량협회로부터 '한우 개량 대상'을 받았다. 그는 최고급 소의 정액을 받아 수정시키는 과정을 반복해 10년 동안 우량 한우를 키워왔다. 그 결과 서현목장 한우는 송아지 폐사율 0%, 2등급 한우 0%, 1+등급 이상 한우 등급 출현율은 87% 등 최상급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엔 1300㎏짜리 수퍼 한우 2마리를 키워냈다. 또 무항생제 축산물 인증, 생산단계 HACCP 인증, 우수 브랜드 인증 등을 받았다. 한 달에 마리당 700~800㎏짜리 거세우 10~15마리 정도를 출하해서 7000만~8000만원 정도를 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소들과 함께 자랐다. "고등학교 때 좀 방황했어요. 송아지를 척척 받아내는 엄마보고 사람들이 '여장부'라 치켜세우는데, 전 그런 말이 괜히 싫어 반항했어요."

그랬던 그가 소에 인생을 바치게 된 건 2002년 어머니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돌아가신 이후였다. 김해 축협에 다니는 아버지에게 "엄마가 하시던 일을 제가 물려받겠다"고 말했다.

"소 눈을 보고 있으니 엄마랑 대화하는 것 같았어요. 한땐 '여장부' 소리가 그리도 싫었는데, 지금은 '엄마랑 똑같다'라는 말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르겠어요."

한때는 관광가이드가 되고 싶어 대학에서 중국 어를 전공했지만 지금은 '소 엄마'가 된 게 천직(天職)이라고 말한다. 그는 '소를 행복하게 키워야 한다'는 엄마의 뜻을 기려 '동물 복지'에도 힘쓰고 있다. 이를 위해 농식품부 권장 축사보다 50% 이상 면적이 크고, 스프링클러로 미생물 배양액을 뿌려 소의 배설물 냄새를 최소화한 '복지형 축사'를 쓰고 있다.

서현목장에선 1000두를 사육할 수 있는 4만3000㎡(1만3000평)의 공간에서 현재 650두만 키우고 있다. 스트레스가 적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찾아와도 우는 소들이 없었고 악취도 거의 나지 않았다. 2008년부터는 이마트 와 손잡고 경상대 수의학과에서 신장·뼈·심장 등 11개 항목에 대해 건강 검진을 받은 한우를 팔고 있다.

그는 요즘 이마트에서 대출받은 10억원 등으로 대형 축사와 '송아지 놀이터'를 짓고 있다.

"젊고 연구하는 영농인들이 많아져야 우리 농가도 살 수 있고, 국민도 질 좋은 제품을 안심하고 먹을 수 있게 되잖아요. 저 같은 뜻을 지닌 친구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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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최보윤 기자 spica@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