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 세상의 중심]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

2010. 7. 31. 09:24분야별 성공 스토리

[女 세상의 중심]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

1974년 성신여고 3학년의 졸업시험 시간. 입시에 억눌렸던 학생들이 장난삼아 `단체 커닝`을 했다. 학교가 발칵 뒤집어졌고 범인 색출이 시작됐다. 심화진도 교무실로 불려갔지만 같은 반 친구들을 위해 입을 다물었다. 그 벌로 일주일 내내 교무실 시계 옆에서 매일 30분 동안 서 있었다. 지나가는 교사들의 면박은 견딜만 했지만 "아버지께 이른다"는 말에는 온 몸이 굳어졌다. 그의 아버지가 바로 학교법인 성신학원의 심용현 이사장(1918~1986)이었기 때문. 성신유치원, 성신초등학교, 성신여중, 성신여고, 성신여대를 창립한 고 리숙종 학원장(1904~1985)의 조카였다.

성신여대 기숙사에서 태어난 심화진에게 성신초등학교와 성신여고, 성신여대 입학 코스는 일종의 숙명이었다. 한마디로 선택의 자유가 없었다. 그게 너무 답답해 아버지 몰래 건국대 의상학과에 입학했다. 어릴 때 그림을 잘 그리고 인형옷을 직접 만들었던 그의 적성을 살리고 싶었다. 당연히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다. 심화진은 "아버지가 좋은 그늘이지만 지금은 버겁다"며 "대학원 갈 때 성신여대로 돌아올테니 대학만큼 편하게 다니게 해 달라"고 졸라 간신히 허락을 얻어냈다.

◆ 교육자의 길은 숙명

= `성탄 선물`처럼 12월 24일에 태어나 얌전하게 자란 막내딸(2남4녀)의 첫 `반란`은 대학 졸업과 함께 끝났다. 디자이너를 꿈꿨지만 교육자가 되라는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지 못했다.

성신여중 교사가 된 심화진은 아침 7시에 출근해 아이들을 공부시켰다. 단체로 영어단어를 달달 외우게 하고 수학문제를 풀게 했다. 얼마 후 시험에서 다른 반보다 평균 점수가 15점이 높았다.

교육자 자질을 발견한 그는 1996년부터 2003년까지 성신여대 의류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2005년부터 2007년 8월까지는 성신학원 이사장을 역임했다. 이사장 재임시절인 2006년 국립의료원 간호대를 인수하고 제2캠퍼스(운정그린캠퍼스)를 착공해 학교 경쟁력을 끌어올렸다.

2007년 8월 성신여대 총장에 취임한 후에는 학자의 `권위`를 내려놓고 경영자의 `실리`를 추구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컨설팅을 의뢰해 `성신 2015 발전계획`을 수립한 후 유사학과를 통폐합하는 구조조정을 감행했다. 한 달 동안 매일 아침 교직원들을 만나 학교의 변화를 설득했다.

그러나 개혁은 쉽지 않았다. 폐지되는 학과의 학생들이 총장실을 점거했다. 그는 "너희들을 위해 학교를 바꾸려고 한다"며 "너희들 등록금으로 만든 학교 기물을 파손하면 너희들 책임"이라고 엄하게 꾸짖었다. 교육자와 학생 사이에 `타협`은 있을 수 없었다. 그는 1시간30분 동안 학교 미래와 비전을 말하며 학생들을 설득시켰다. 나중에는 학생들과 얼싸안고 엉엉 울었다.

◆ 노바디 춤에 밴드 보컬하는 총장

= 학생들과 소통을 강조하는 그는 요즘 `신세대 총장`으로 불린다. 지난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반짝이 치마를 입은 채 걸그룹 `원더걸스`의 노바디 춤을 췄고 올해는 록밴드 `자우림`의 노래 `매직카펫라이드`를 불러 화제가 됐다. 그렇게 튀는 이벤트를 하는 이유에 대해 심 총장은 "아이들에게 다가가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제가 지나가도 총장인 줄 모르는 학생이 많았어요. 전 아이들이 찾는 총장이 됐으면 해요. 학생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그들의 관심이 뭔지 눈높이를 맞춰야죠. 그래서 요새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 `빅뱅` 멤버들 이름을 다 외우고 오리엔테이션에서도 불렀어요."

학생에게 춤을 배우면서 구내식당 밥이 괜찮은지 물어보고 수업은 어떤지 얘기했다. 무대의상도 학생들 옷을 빌려 입었다. 그는 옷을 돌려주면서 밥도 사주고 대화도 나눴다며 서로 마음을 여는 게 소통이라고 말했다.

◆ 21세기 교육은 학과 융합

= 심 총장은 최근 국립발레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몸이 가냘프기는 하지만 발레를 배운 적은 없다. 그저 순수한 발레 애호가다.

그는 여성의 우아한 자태를 위해 발레수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가을 교양수업 `발레와 체형교정`을 개설하자 학생들 호응이 대단했다. 태권도학과 학생도 발레슈즈를 신었다.

내년에 신설되는 융합예술대학 안에 무용예술학과를 만들어 발레와 한국무용, 재즈, 스포츠댄스를 전공할 수 있게 된다. 심 총장은 "여성 대학으로서 문화와 건강복지 분야에 특화된 교육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작은 체구에서 학교 발전 구상과 관련해 쉴 새 없이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나왔다. 특히 글로벌 여성 리더 양성에 관심이 많았다. 16개국 68개 대학과 교류협정을 맺고 가을에 학생 100명을 파견할 예정이다.

◆ 아들을 레바논으로 보낸 군인의 아내

= 학교 일에 빠져 있던 그는 결혼할 마음이 없었다. 부모도 강요하지 않았다. 32세에 학교를 설립한 이모 할머니 리숙종 학원장도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아버지는 "그 옛날에도 결혼을 안 하셨는데 너는 애 낳고 지지리 궁상으로 살지 마라"며 연애를 못하게 했다.

딸이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을 하기 원했던 부친은 국내 첫 여성 외교관을 지낸 홍숙자 여성단체협의회장(79)을 소개해줬다. 심 총장은 홍 회장과 무척 가까워져 한 동네에 집을 얻었다.

홍 회장에게는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똑똑한 군인 아들이 있었다. 심 총장은 홍 회장과 함께 위문품을 들고 군대에 간 날 그를 처음 봤다. 반짝거리는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그 후 감사패 오탈자를 고치려고 만났다가 영화도 함께 봤다. 심 총장의 평생 동반자가 된 그 군인이 바로 전인범 27보병 사단장(52)이다.

두 사람의 결혼은 쉽지 않았다. 시어머니 홍 회장의 반대가 심했다. 아들보다 두 살 많고 몸이 약해 며느리로서는 탐탁지 않아 했다.

심 총장은 "남편의 나에 대한 믿음이 강해 시어머니도 어쩔 수 없었다"며 "결혼 초에 시집살이를 좀 했지만 3년이 지나니까 며느리로 받아들였고 지금은 내가 나온 신문 기사를 스크랩해 보내줄 정도로 잘해준다"고 말했다.

고부 갈등이 있어도 절대 남편에게 내색하지 않았다. 목숨을 걸고 총을 다루는 군인의 마음을 어지럽혀서는 안 된다는 원칙 때문이다. 심 총장은 "전화를 통해 들리는 총소리에 가슴이 조마조마해 항상 기도하며 살았다"고 회상했다.

두 살 아래지만 남편이 더 자상하다. 항상 먼저 전화를 걸어 아내를 챙긴다. "지혜롭고 합리적인 분이에요. 제가 늦게 귀가해도, 일요일에 나가도 `여자가 왜…`라는 말을 절대 안 해요. 항상 믿어주죠."

군인의 아내로 살아온 그는 장남 전민규 씨(22)의 유엔 레바논 평화유지군 지원에 동의했다. 미국 군사학교(밀리터리스쿨)에서 중ㆍ고교 과정을 마친 민규 씨는 지난해 12월 입대했고 현재 레바논에서 군복무 중이다. 심 총장은 "걱정이 많았지만 아들의 결정을 존중했다"며 "레바논에서 좋은 경험을 하고 올 것"이라고 말했다.

강인한 아들을 키워낸 그만의 비결이 있다. 육아를 친정 어머니에게 맡겼는데 어리광을 봐주지 않았다. 출근할 때는 "엄마는 학교 갈테니 할머니와 잘 있어"라고 말해 아이들을 울렸다. 거짓말을 하면 당장은 울지 않겠지만 아이들이 계속 엄마를 찾아다니기 때문이다.

아이를 포기시키고 이해시키는 방법을 가르치니까 말을 더 잘 듣게 됐다. 나중에 그가 출근할 때는 "엄마, 과자 사오세요"라고 인사까지 했다.

"나는 100점 만점에 60점짜리 엄마예요. 너무 바빠 아이들과 많이 놀아주지는 못했지만 시간 낭비를 한 적은 없어요. 제가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최선을 다했는지 양심을 걸고 이야기하라`고 말하죠."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못했지만 아침에는 꼭 국을 끓여 밥상을 차려준다.

■ 이모할머니 리숙종 학원장 검소한 생활습관 가르쳐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은 남산 근처 26평 아파트에서 혼자 산다. 남편 전인범 27보병 사단장은 강원도 화천에 거주하고, 장남 민규 씨는 유엔 레바논 평화유지군(UNIFIL)으로 군복무 중이다. 둘째 아들 민우 군(19)도 미국 유학 중이어서 큰 집에 살 이유가 없다.

심 총장은 아무리 바빠도 청소와 분리수거, 요리를 직접 다 한다. 다른 사람 손에 살림을 맡기지 않는 검소한 생활습관은 고(故) 리숙종 학원장에게서 배웠다.

리 학원장은 크리넥스 휴지를 절반으로 잘라서 썼을 정도로 낭비를 싫어했다. 고인은 1936년 32세 여성의 몸으로 종로구 경운동에 성신학원을 설립했다. 1940년에는 성북구 동선동 산동네 용지를 매입해 학교를 이전했다. 재개발 지역이라 인근 주민들의 반대가 거셌다. 고인의 집 앞에 오물을 갖다놓고 생명에 위협을 가했지만 교육의 뜻을 꺾지 않았다.

학교 건물 공사 중에 바위산을 깼는데 보석 수정이 나왔다. 겉과 안이 같고 투명한 수정처럼 학교를 운영하겠다는 의지로 종합관 이름을 `수정관`으로 지었다.

□ 심화진 총장은…

△1956년 서울 출생 △1979년 건국대 의상학과 졸업 △1981년 성신여대 의류학과 석사 △1990년 성신여대 의류학과 박사 △1996년 3월 성신여대 의류학과 교수 △2005년 5월 학교법인 성신학원 이사장 △2007년 8월 성신여대 총장 △2007년 8월 세계대학교 총장연맹 동북아시아지역 부회장 △2009년 10월 러시아 극동국립대 명예교육학 박사 △2009년 12월 국립발레단 이사 △2009년 12월 세종문화회관 이사 △2010년 7월 국립발레단 이사장

[전지현 기자 / 사진 = 박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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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9 17:20:30 입력, 최종수정 2010.07.30 09:4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