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싱 9대로 시작 연매출 1조 대박 비결

2011. 4. 25. 09:23분야별 성공 스토리

한경 인터뷰…2015년 2조 목표
40~50대도 입을 수 있는 SPA브랜드 2012년 봄 론칭
대리점 전환때 가장 힘들어…아웃도어 상품도 출시

/부산=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그때(1988년)는 제가 직접 방송국에 찾아가서 라디오광고를 녹음했어요. 다들 듣자마자 내용이 너무 유치해서 웃음을 터뜨렸다니깐요. " 부산 시장통에서 캐주얼 의류 '인디안' 티셔츠를 팔던 청년이 연매출 1조원을 바라보는 회사로 키운 뒤,그 시절을 회고하면서 미소를 머금었다. 부산에 본사를 둔 세정그룹의 박순호 회장(65 · 사진)이다.

그가 창업한 것은 28세였던 1974년이다. 옷이 좋아 고향인 마산의 니트 도매 의류상점에서 5년 동안 일을 배웠고,부산으로 건너와 세정그룹의 모태인 동춘상회(의류 도매상)를 차렸다. 132㎡(40평) 규모에 편직기 4대와 미싱 9대가 고작이었다. 거기서 직접 짠 원단에 색을 입혀 인디안 티셔츠를 만들었고,지금까지 백화점 매장(50여개)보다는 로드숍(330여개) 중심으로 연매출 1조원에 달하는 기업으로 키운 것이다.

세정그룹은 지난해 950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올해 1조1500억원에 이어 2015년엔 2조원을 달성할 계획이다.

◆인디안에서 아웃도어 제품까지 출시

박 회장은 24일 부산 부곡3동에 있는 세정그룹 본사에서 기자와 만나 "1988년에 시장브랜드 인디안을 토털패션으로 전환해 전국 대리점을 모집하기로 했는데 지금껏 경영하면서 그때가 가장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이미 시장에서 도매로 잘 팔리고 있던 인디안 제품을 대리점으로 바꿔 소매로 판매하는 데 항의하는 상인들이 많았던 탓이다.

그는 "인디안을 제대로 된 브랜드로 성장시키려면 시장에만 의존해선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대리점으로 전환하기 위해 자본과 인력 등 필요한 게 많았고 정말 큰 결심을 하고 맨발로 전국을 뛰어다녔다"고 말했다.

방송국에 찾아가 라디오 광고를 직접 녹음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는 "유치하게 하는 광고가 더 히트칠 거라고 생각해서 내 목소리로 녹음했고 인기를 끌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인디안 광고는 길을 지나가던 부인이 "여보,저기 쇼윈도에 걸린 티셔츠가 뭔지 알아?"라고 물으면 남편이 "그게 바로 인디안 아니에요?"라고 답하는 식이었다. 그 남편 역할을 박 회장이 직접 맡아 녹음한 것이다.

박 회장은 "제일 아끼는 건 아무래도 창업 브랜드인 인디안 아니겠느냐"며 "실을 사와서 직접 편집기로 천을 짜고 여기에 염색해 옷을 만들었기 때문에 제품력으로 평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사세를 확장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인디안,앤섬,올리비아 로렌,NII,크리스 크리스티 등 10여개의 브랜드로 늘어났다.

세정그룹은 최근 아웃도어 브랜드 센터폴을 내놓기도 했다. '도시에서 입을 수 있는 아웃도어'라는 컨셉트로 인디안 매장 안에 코너를 마련한 것이다. 그는 "캐주얼하게 입고 다닐 수 있는 아웃도어를 만들자고 생각했고 원단을 직접 만들고 염색하던 인디안의 기술력으로 만든 게 센터폴"이라고 강조했다.

◆로열티 받는 브랜드 론칭 계획

박 회장은 '모든 연령대가 찾는 통합 패션 브랜드'를 내놓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꿈이 있다면 첫째로는 국내 시장을 좀더 다지는 것이고,둘째로는 아이부터 노인까지 다 입을 수 있는 빈폴(제일모직) 같은 통합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그 브랜드를 키워 (40주년이 되는 2013년엔)해외에서 로열티를 받는 상표로 키우는 게 목표"라며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가 넘는 데도 로열티를 받는 브랜드가 없다는 건 '아픈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패스트패션이 트렌드이기 때문에 내년 봄 시즌에 맞춰 10대 후반부터 40~50대도 입을 수 있는 브랜드를 론칭할 계획"이라며 "갭 자라 등과 같은 컨셉트로 다양한 연령대를 흡수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어 해외 진출의 발판으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정그룹은 다음달에 그룹 내 나눔재단을 설립할 계획이다. 부산 소재 중 · 고등학교에 다니는 어려운 학생들을 7년 넘게 돕고 있는 등 산발적으로 해오던 기부를 체계를 갖춰 하겠다는 뜻이다.

트렌드에 민감한 패션사업을 하면서도 부산 본사를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선 "부산을 지키는 향토적인 기업이 많아야 부산도 발전하는 것"이라며 "부산에 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회사를 운영해왔고 지금도 그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부산=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