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잘맺어야 `백세팔팔`

2011. 9. 3. 08:56C.E.O 경영 자료

인간관계 잘맺어야 `백세팔팔`
1·2인가구 늘며 친구·지인들과 소통해야 활기찬 노후
기사입력 2011.09.02 17:36:22 | 최종수정 2011.09.02 20:17:15

◆ Happy 100 호모 헌드레드 ◆

싱가포르 시내 티옹바루 플라자 내 1층 맥도널드햄버거 가게. 손님 대부분은 젊은 세대지만 주문을 받는 사람도 할머니고, 햄버거를 쟁반에 놓는 사람도 할머니다. 가게 한쪽에서는 켄기 할아버지(74)가 열심히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있다. 매튜 지배인은 "직원 40%가 65세 이상 노인인데 젊은 사람들 못지않게 일을 잘하고, 젊은 손님들도 친절해서 좋아한다"고 말한다.

싱가포르 노인들의 일하는 모습은 겉으로 보기엔 활기차다. 하지만 속사정은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 생계형 노동이 많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의 65세 이상 노인 중 78%는 자신이 준비해놓은 중앙적립연금(CPFㆍCentral Provident Fund)이 모자라 가족이나 지역사회단체에 의존한다.

유교적 가족관계가 빠른 속도로 해체되면서 자식은 부모를 잘 부양하지 않는다. 자식이 부모를 직접 모시고 살거나 용돈을 드리면 세금감면을 해주고 2000년부터 자식이 부모 부양을 안 할 경우 소송할 수 있는 `효도법`까지 시행하고 있다. 부모 부양을 회피하다 소송에서 패하면 5000달러 이하 벌금이나 6개월 감옥살이를 해야 하는 효도법이 혈연 관계마저 해체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행복한 노후를 위해서는 개미처럼 열심히 일해 CPF에 많은 저축을 해놓든지, 아니면 자신을 부양할 자식이나 친척, 지인들을 많이 확보해야 한다.

요즘 한국도 끈끈했던 가족관계가 빠른 속도로 흐트러지고 있다. `2010 서울시 가구구조 변화 분석`에 따르면 부모와 자녀 2세대로 구성된 서울 거주 전통 핵가족은 10년 새 153만가구에서 132만가구로 13.5% 줄었다. 반면 부부 1세대로만 구성된 가족은 29만가구에서 42만가구로 47.2% 늘었다. 1인 가구는 50만가구에서 85만가구로 70.2%나 증가했다. 65세 이상 독거노인도 102만명에 이른다. 2020년에는 151만명, 2030년에는 234만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신흥 핵가족`이 보편화되고 있다.

자식들의 부모 부양률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부모의 부양 기대도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은퇴 후 자녀와의 동거 의향에 10명 가운데 6명은 부정적이다. 결국 행복한 100세시대를 살아가려면 스스로 자립 능력을 갖춰야 한다.

윤석명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젊었을 때 많이 벌어 저축하고 부부, 자식들, 친구들, 지인들과 좋은 관계를 가져야 활력 있는 노후를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호모 헌드레드` 세대의 행복은 부부, 자식, 지인과 어떤 인간관계를 맺느냐에 달려 있다.

■ 싱가포르 `효도법` 무용지물…노후에도 생활전선에

홍송이 싱가포르대학 교수는 "싱가포르의 노인연금정책의 기본은 본인이 열심히 벌어 CPF계좌에 저축하면 그 안에서 쓰는 구조이고 이게 모자라면 가족이 지원해주고 정부는 마지막으로 보살펴주는 체계로 정리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의 노인들을 위한 지원체계는 소득ㆍ생활수준과 비교할 때 미미하다. 처음부터 자신의 땀과 노력으로 저축해 놓은 만큼 살도록 한 싱가포르 노인 복지정책의 결과다. 정부 지원을 기대하고 젊은 날 제대로 저축하지 않으면 길거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싱가포르 정부는 생활이 어려운 노인들에게 월 800싱가포르달러 정도 주는데 이것으론 생계 유지가 안 된다. 게다가 치아 2개를 뽑는 비용이 300싱가포르달러에 이를 정도로 전반적인 의료비용은 비싸다. 이런 의료비는 본인의 CPF계좌에서 그대로 빠져나간다. 아파서 치료를 받게 되면 자신이 노후에 받아야 할 연금이 줄어드는 구조로 연금이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싱가포르 시내 티옹바루 플라자 빌딩 내 1층 햄버거 가게에서 겐기 할아버지가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팔고 있다. 이 가게 직원 중 40%는 65세 이상 노인들이다

이런 구조 때문에 많은 싱가포르 국민들은 `돈이 없는 사람은 아프지 말고 그냥 죽어야 한다`는 자조 섞인 속담을 내뱉곤 한다. 결국 싱가포르에서 행복한 노후를 맞는 사람은 아주 상위 부유층에 속하거나 젊었을 때부터 개미처럼 열심히 일해 많은 연금을 쌓아둔 사람뿐이다. 이는 자기책임과 효율성을 강조한 싱가포르 고유의 연금체계의 어두운 그림자다.

반면 멕시코 사례는 비록 가난하지만 아직 가족관계가 잘 유지되고 있다. 자식들의 부모 봉양률도 아직은 높다.

멕시코 과달라하라 대성당 인근 식당에서 만난 마리아나 씨(64ㆍ여) 가족. 2남1녀를 둔 그는 미혼인 막내 딸 엘레스티나 씨(32)와 함께 살아가는 멕시코의 흔한 실버세대다. 그녀는 미혼인 딸과 아들 내외 등 6명의 가족과 주 2~3회씩 식사를 함께 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살고 있는 큰아들은 생활비를 보내준다.

마리아나 씨는 "6명의 가족이 모이는 저녁식사 시간은 인생의 가장 소중한 시간"이라며 "대부분의 멕시코 가족관계는 우리처럼 끈끈하다"고 설명한다.

레티시아 로블스 과달라하라대학 공공보건학부 교수는 "멕시코 가정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데 상당한 의의를 두는 전통이 있다"며 "빈곤층이 대부분이라 형편은 좋지 않지만 대신 가족 구성원 간의 친밀한 관계를 최대 과제로 여기며 살아간다"고 말했다. 뿌리 깊은 유대관계가 빈곤한 현실을 잊게 하는 멕시코와 달리 한국 실버세대 가정의 인간관계는 빠른 속도로 단절되어 가고 있다. 사는 게 각박해지는 상황에서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한 자녀의 출가가 당연시되면서 한국사회의 핵가족은 지난 10년간 크게 늘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1990년대 이후 1~2인 가구는 꾸준히 증가하는 반면 4~5인 가구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며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가구구조의 패러다임이 변했듯이 핵가족의 형태도 새롭게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전통적인 `효` 개념에 바탕을 두고 노부모를 부양하는 것이 도리로 여겨지던 아름다운 정서도 차츰 약해지고 있다. 자녀와의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면서 심리적 유대관계도 날이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자녀가 노인세대 부모에게 정서적인 도움을 줄 때 부모도, 자식도 갈등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세대는 본인이 원하는 만큼 자녀가 도움을 주지 않는 데다 도움을 주는 방식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답한 경우가 각각 51.8%, 27.7%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도움을 주는 자녀들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부모에게 정서적 도움을 줄 때에는 부모의 기대치가 너무 높고, 도움을 주고 싶지 않거나 드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도 무리하게 도움을 줌으로써 갈등이 생긴다는 자녀층의 답변이 각각 40.0%, 22.5%로 나타났다.

실버세대의 갈등은 부모와 자녀 간에만 빚어지는 사회문제가 아니다. 실버세대 간의 갈등이 빚어지면서 황혼이혼율이 급증하면서 고령사회의 또 다른 문제가 되고 있다.

고령사회를 행복하게 살려면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유지하면서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유대관계를 젊어서부터 만들어나가야 한다.

[기획취재팀 / 동남아 = 서양원 팀장 / 북유럽 = 이창훈 / 일본 임상균 기자 / 미국 = 김인수 기자 / 중유럽 = 송성훈 기자 / 호주·뉴질랜드 = 전정홍 기자 / 남미 = 김유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