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하우스·설계변경 없애니 분양가 1000만→580만원

2011. 11. 8. 09:17건축 정보 자료실

모델하우스·설계변경 없애니 분양가 1000만→580만원
매일경제|
입력 2011.11.07 17:37
|수정 2011.11.07 19:17

 

◆ 분노의 시대를 넘어서 ⑥ ◆부산 남구 용호동에 위치한 용호 5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 이 동네는 30~40년 된 단독주택 308여 가구가 빼곡히 자리 잡아 주거환경이 매우 열악한 지역이다. 시에서는 지금의 주택을 허물고 아파트를 짓기 위해 사업을 시작했지만 사업 시작 후 '새 아파트에 들어가겠느냐'는 입주 희망조사에 "들어가겠다"고 응답한 사람은 4명에 불과했다.

↑ 부산도시공사가 사업비 절약을 위해 모델하우스를 없앤 대신 사옥 내 설치한 주택홍보관. <사진 제공=부산도시공사>

주거민 대부분이 생활보호대상자 등 저소득층이었기 때문이다. 새집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보상받은 금액 이외에 추가로 돈을 지불해야 하지만 감당할 여력이 안 됐다. 보상가는 3.3㎡당 450만원 안팎인 반면 주변 기존 집값은 이미 700만원대에 근접했기 때문이다. 보상가를 높여 달라는 분노의 목소리가 넘쳐났다.

이는 용호 5지구만의 딜레마가 아니다. 국감자료를 보면 1990년부터 2011년 7월 말까지 전국 113개 지구에서 주거환경개선사업을 시행한 지역을 조사한 결과 원주민 재정착률은 연평균 45%에 불과했다. 절반 이상의 원주민이 비싼 새집 가격을 감당 못해 보금자리를 떠나고 있다. 특히 지방은 재정착률이 36%에 그쳤다.

사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갈등이 불거지자 시와 부산도시공사는 해법 마련에 나섰다. 사실상의 원가공개를 선언하며 "500만원대 반값 아파트를 공급하겠다"고 약속한 후 분양가 거품 빼기에 나선 것이다.

전문기관에 의뢰한 결과 분양가 상한제 가격을 적용한 분양가는 720만원으로 산출됐다.

이종철 부산도시공사 사장은 "보상금만 쥔 원주민들이 갈 곳이 어디 있겠느냐"며 직원들에게 "원가 절감을 위한 모든 아이디어를 동원하라"고 지시했다.

모델하우스부터 아예 없앴다. 이 사장은 "모델하우스가 분양에는 필수 불가결하지만 일단 지으면 최소 20억~50억원까지 들어가야 한다"며 "이것만 해도 가구당 부담으로 치면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까지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모델하우스는 도시공사 사옥 내에 분양 홍보관을 설치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이같이 별도 모델하우스를 짓지 않고 사옥 내에 주택유닛을 설치하는 것이 보통이다.

공사비를 아끼기 위해 발주 방식에서도 역발상을 동원했다. 공사비를 미리 확정해 놓고 설계와 시공을 최적화시키도록 일괄 발주했다. 일반적인 아파트 공사에서는 공사 착수 이후 시공사들이 잦은 설계 변경을 통해 공사금액이 작게는 수십 억원에서 많게는 수백 억원씩 올라가는 것이 다반사다.

수십 억원에 달하는 외주 감리 역시 자체 감리로 대신했다. 또 당초 용호 4, 용호 5 등 2개 지구로 나뉘어 있던 사업지구를 통합 개발로 변경한 후 경비실, 노인정 등 부대시설을 최소화해 시설 비용도 대폭 절감했다.

이를 통해 산출된 가격은 3.3㎡당 분양가격은 580만원. 원주민들 입장에선 보상가격에서 3.3㎡당 100만원 안팎의 추가 비용으로 새집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대신 일반분양가는 이보다 다소 높은 620만원으로 책정됐다.

도시공사에서 산출한 건설원가는 3.3㎡당 611만원. 원주민에겐 공사 원가보다 낮게 공급하고 일반분양자들에겐 2% 수준의 마진만 남기고 공급하는 셈이다. 남겨진 마진을 통해 원주민들에게 싸게 공급하는 것이다.

이는 분양가 상한제 가격보다도 원주민 공급분은 20% 수준, 일반분양분은 14% 정도 낮은 것이다.

이 사장은 "부산의 평균 아파트 가격이 3.3㎡당 1000만원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반값 아파트'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가격이 공개된 후 당초 4명에 불과했던 입주 희망자가 227명으로 늘었다. 원주민의 73% 안팎이 재정착하게 된 것이다. 자발적 집값 거품 빼기로 지역주민들의 분노의 샘을 가라앉힌 것이다.

이 사장은 "공기업으로서 마진을 포기하면 수익이 줄어 정부의 공기업평가에서 불리한 측면도 있는 게 사실"이라며 "그렇지만 공기업 본연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앞으로도 이 같은 사업방식을 굳혀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기업이 앞장 서 아파트 분양가 거품을 빼야 한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한국에서는 통하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이제부터라도 공기업이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문가들은 또 대단위 광역개발 대신 소규모 개발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박상우 국토해양부 토지주택실장은 "지금의 정비사업 방식은 지나치게 면적이 넓어 개발 기간이 상당한 데다 조합 내외부에서 각종 이견에 따라 진통과 기회비용이 너무 커지고 있다"며 "주택호수 100가구 이내의 소규모 면적을 대상으로 개발방식을 바꾸면 개발사업의 몸체를 가볍게 해 말 그대로 주민들 스스로 '사는 곳'을 수선하는 정비사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주택바우처 제도 실시 역시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국토부는 주택바우처 시범사업을 위해 내년도 예산 20억원을 신청했지만 정부 예산안에는 한 푼도 반영되지 않았다. 전면 실시되면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는 게 기획재정부 논리다.

재정이 부담된다면 4~5년 정도 시범사업을 한 후 제도적ㆍ재정적으로 보완해 실시하는 방법도 있다. 1년에 20억원의 예산이면 서울시 무상급식 예산인 695억원의 3% 수준이다.

변창흠 세종대 교수는 "월세 상한제 등 시장 규제책의 방법이 불가능하다면 저소득층에게 '바우처 발급'을 통해 주거비를 보조하고 집주인에게는 정부가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은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기획취재팀=이진우 차장 / 이지용 기자 / 강계만 기자 / 이상덕 기자/ 최승진 기자 / 고승연 기자 / 정석우 기자 / 정동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