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워크 시대 ‘회사형 인간’ 늘어난다

2012. 2. 1. 09:06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스마트워크 시대 ‘회사형 인간’ 늘어난다
한겨레|
입력 2012.01.31 20:50
|수정 2012.01.31 22:30

 

[한겨레]직원들에 태블릿PC 무료 배포…24시간 업무체제


생산성·효율성 높이려 도입…KT 등 통신사가 앞장


일과 휴식의 구분 사라져 노동자들 스트레스 커져

"365일, 24시간 회사에 대한 사항을 모니터링하고 필요한 것은 바로바로 지시할 수 있어야 한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 30일 모든 임원(110명)에게 태블릿피시를 나눠주며 한 말이다. 그는 "(관리자가) 사무실에 앉아 보고만 받으려 해서는 안된다. 현장에 나가 문제점을 파악하고 수정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올해 어려운 경제 상황을 현장경영으로 극복하겠다고 천명하며 태블릿피시를 그'무기'로 내세운 것이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국내, 국외 출장이나 집에서라도 태블릿피시를 통해 업무와 현장을 파악하고 결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임직원들에게 태블릿피시를 업무용 기기로 나눠주며 '스마트워크 시대'를 이끄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 11월 방송통신위원회가 '스마트워크 도입 현황'을 조사해보니, 국내 주요 기업 1794곳 가운데 136곳(7.7%)이 태블릿피시 등을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자 수로는 24만명에 달했다. 89.5%가 업무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스마트워크를 도입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2015년까지 노동인구의 30%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업무를 수행하도록 스마트워크 환경을 구축해 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사무실에서 업무시간에만 처리하던 일들을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다는 편리성이 있지만, 일과 휴식의 구분이 불분명해져 되레 스트레스가 늘어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태블릿피시 활용의 선두주자는 케이티(KT)이다. 케이티는 2010년 10월 임직원 3만2000명 모두에게 아이패드를 지급하고 사내에서 사용하는 업무처리 소프트웨어(모바일케이트)를 설치해 업무용으로 쓰도록 하고 있다. 회사 밖에서도 업무처리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어, 문서 결재 등 업무처리에 활용하고 있다.

에스케이텔레콤(SKT)도 지난해 8월 전 직원 4500명에게 갤럭시탭 등을 나눠주고 종이 없는 사무실을 오픈했다. 최근 이용 현황을 조사해보니, 60%가 태블릿피시를 업무에 활용하고 그 가운데 42%는 하루 1시간 이상씩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원들은 전자우편을 확인(30%)하거나 회의(27%)할 때 주로 쓰고, 자료 검색(16%)이나 일정 관리(12%) 등도 자주 활용한다고 밝혔다.

분위기가 보수적인 은행들 가운데서도 태블릿피시를 도입하는 곳이 늘어났다. 대표적인 곳이 지난해 6월 태블릿피시를 기반으로 해 회의·보고 시스템을 구축한 신한은행이다. 회의 자료를 중앙의 저장공간에 올리고, 사용자가 이를 태블릿피시에서 내려받는 방식이다. 메모, 손글씨, 밑줄 등 종이문서와 유사한 입력 및 저장 기능을 갖춰 누구라도 금세 적응한다.

신한은행 쪽은 "태블릿피시 때문에 회의와 보고를 위해 출력하던 서류가 획기적으로 줄었고, 실시간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업무생산성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 태블릿피시 덕분에 연간 약 400만장의 종이가 절감될 것으로 신한은행은 예상한다.

특히 마케팅에서 태블릿피시는 빛을 발한다. 제약업계는 의사와 약사에게 약의 효능 등을 시각적으로 설명하는 데 태블릿피시가 유용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9월 태블릿피시 영업정보 프로그램을 구축한 대웅제약의 영업사원 박수연씨는 "고객의 문의사항을 바로 찾아 설명하고 동영상·파워포인트 등을 활용해 홍보하니까 호응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중외제약, 동아제약에 이어 한미약품최근 태블릿피시를 영업사원 수백명에게 나눠주며 영업생산성 향상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 처지에서는 태블릿피시 확산이 무조건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회사 업무 프로그램 접속이 언제라도 가능해지면서, 효율성과 생산성은 높아지지만 업무시간 외에 일하는 경우가 잦아졌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한 근로계약이나 단체협약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노동계에서는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노동 시간, 장소와 더불어 기업 조직과 제도에서도 스마트워크는 산업혁명과 맞먹는 엄청난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며 "새로운 시대를 대비한 연구와 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은주 기자ej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