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준에 ‘셀프개혁’ 맡겨…해임론 귀막았다

2013. 7. 9. 21:52이슈 뉴스스크랩

한계례 뉴스 등록 : 2013.07.09 21:28 수정 : 2013.07.09 21:28

 

문재인·안철수 등 야권 “대통령이 국정원장 교체해야”
원조 친박 ‘무한신뢰’…청와대 “해임 가능성 없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대화록)을 무단 공개해 정국을 혼돈에 빠뜨린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의 거취가 ‘국정원 정국’의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치에 개입한 남 원장을 해임하라는 야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오히려 남 원장에게 국정원 개혁을 당부하며 ‘신임’을 듬뿍 실어줬다. 야권 등에선 남 원장을 유임시킨 채 국정원 수술까지 맡긴 것은 결국 박 대통령이 국정원을 개혁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9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국정원에 ‘셀프개혁’을 주문했는데, 중환자에게 수술 칼을 맡기는 꼴이고 도둑에게 도둑을 잡으라는 말과 다름없다. 대통령이 국정원 개혁 의지가 있다면 최소한 국정원장을 교체해야 한다”고 해임을 촉구했다. 앞서 문재인 민주당 의원도 트위터에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덮기 위해 정상회담 회의록 불법 공개를 감행한 남재준 원장을 해임하지 않고 어떻게 국정원 개혁이 가능하냐”고 반문하는 글을 올렸다. 안철수 무소속 의원도 전날 남 원장의 해임을 공개 요구한 바 있다.

야권에선 남 원장이 대화록을 무단 공개한 것은 국정원의 정치개입 금지를 어긴 불법행위라고 보고 있다. ‘국정원 국정조사’에 쏠린 관심을 희석시키고, 정치권을 ‘대화록 공개공방’으로 몰아가려 한 의도가 명백하다는 것이다. 특히 국가 기밀을 다루는 국정원장이 대화록 공개에 앞장서 “정보기관이 정치적 선동꾼이 됐다”(<워싱턴 포스트>) 외국 언론의 조소까지 받는 등 정보기관 수장의 자격도 잃었다는 주장이다. 취임한 지 넉달밖에 안 된 남 원장은 벌써 민주당으로부터 두 차례 고발(대통령기록물관리법·국정원법 위반 혐의)까지 당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남 원장을 절대적으로 신임하고 있어 야권과 청와대의 견해차는 좁혀질 여지가 없어 보인다. 당장 청와대 참모들은 “남 원장을 해임할 필요도, 그럴 가능성도 전혀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 직속인 국정원장이 ‘집행’한 일에 대해 책임을 물을 경우, 대통령 자신에게 화살을 돌리는 일이 된다는 정무적 판단도 작용한 듯하다.

특히 청와대 내부에선 박 대통령의 ‘셀프개혁’ 지시 자체가 남 원장에 대한 무한 신뢰를 보여준 것이란 평가가 많다. 남 원장은 2007년 대선 경선 때부터 박 대통령을 지원한 국방안보 특보단의 핵심 멤버였다. 박 대통령이 정계 입문 후 신뢰하게 된 첫 군 출신 인사이기도 하다. 남 원장은 정치권 바깥의 ‘원조 친박’으로서, 2007년 경선 패배 뒤에도 변함없이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군 인맥을 관리했다고 한다. 남 원장이 ‘자기 정치’를 하지 않는다는 점도 박 대통령의 신뢰를 얻은 이유라고 한다.

국정원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박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남 원장이 안보관이 확실한 군인 출신이고, 멸사봉공하는 스타일이라서 발탁한 것이다. 해임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남 원장은 국정원의 명예 때문에 대화록을 공개했다는데, 그에 따른 국격 훼손과 국기 문란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 듯하다. 이런 고려도 하지 못한 채 정치에 깊숙이 개입한 원장에게 개혁을 맡기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송호진 석진환 기자 dmzs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