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반년만에…박근혜 정부, 재벌에 두손 들었다

2013. 7. 28. 21:42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집권 반년만에…박근혜 정부, 재벌에 두손 들었다



[한겨레] ‘총수 사익근절‘ 취지 무시하고

대기업 일감몰아주기 과세 완화

하반기 세무조사 대상 축소 등

‘경제민주화’ 대선공약 대거 후퇴

“규제 때문에 투자의욕 꺾인다”

전경련 주장 그대로 받아들인 꼴

“재벌개혁 않으면 경제 실패” 우려


박근혜 정부가 기업 세무조사 축소 발표에 이어 재벌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과세 완화까지 추진하면서 사실상 재벌에 손을 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7일 전경련의 제주포럼에서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에 대해서도 일감 몰아주기 관련 증여세를 줄여주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국세청은 지난 23일 하반기 기업 세무조사 대상을 기존 계획보다 축소하겠다고 발표했다. 재벌의 이익을 대변해온 전경련은 그동안 기업 세무조사와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로 인해 (대기업의) 투자 의욕이 꺾이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결국 박근혜 정부가 재벌의 압력에 굴복한 모양새가 됐다.

박근혜 정부의 일감 몰아주기 과세 완화는 재벌총수의 사익편취 근절을 위해 일감 몰아주기를 규제하겠다는 경제민주화 공약은 물론 그동안 정치권에서 논의된 세법 개정 방향과 배치된다. 일감 몰아주기 과세는 재벌 총수일가의 부당한 부의 형성과 경영권 편법승계 차단이 목적이다. 올해 일감 몰아주기 증여세 납부 대상자 1만여명 중에서 30대 재벌 총수일가는 60여명에 불과하고 나머지 대다수는 중소·중견기업 경영자로 알려지면서, 중소기업계는 제도 취지를 반영해 자신들은 과세대상에서 제외해 달라는 요구를 해왔다. 이에 따라 새누리당이 최근 국회에 제출한 세법 개정안은 중소기업을 일감 몰아주기 과세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기업은 이 법안 적용 대상이 아니다. 6월 국회에서는 재벌 총수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를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박근혜 정부가 검토하는 일감 몰아주기 과세 완화 방안은 대선공약인 재벌 순환출자 규제 취지와도 상충할 위험성이 높다. 기재부는 “일감 몰아주기를 하는 대기업 계열사 간에 지분관계가 있을 경우, 지분율에 따라 과세금액을 줄여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예를 들어,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의 물류 관련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급성장한 현대글로비스의 경우, 정몽구 회장 부자(지분 43.4%) 외에 현대차(4.9%)도 주식을 갖고 있는데, 정 회장 부자가 내야 할 증여세를 현대차의 지분율만큼 줄여준다는 얘기다. 경제개혁연구소 위평량 박사는 “박 대통령이 재벌 총수일가가 적은 지분만 갖고도 계열사간 순환출자를 이용해 그룹을 장악하는 기형적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신규 순환출자 금지를 공약으로 내걸고서, 계열사간 (순환) 출자지분만큼 총수일가의 증여세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것은 앞뒤가 안맞는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정부는 하반기 들어 경제민주화 대신 ‘경제활성화’를 전면에 내걸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0일 언론사 간부와의 간담회에서 “(경제민주화 입법이) 거의 끝에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 이제는 투자하고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경제민주화 (입법) 종료선언’을 했다. 또 다음날에는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투자하는 분들은 업고 다녀야 한다”며, 하반기 정책의 최우선점을 투자 확대에 두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도 전경련 포럼에서 일감 몰아주기 과세 완화 명분을 ‘기업활동 지원을 통한 경제 활성화’로 제시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에서 경제민주화와 지하경제 양성화 등 개혁을 전면에 내걸고 중도성향 유권자까지 공략하는데 성공해 승리했다. 하지만 집권 반년 만에 재벌에 투자와 고용을 의존하며 경제민주화를 후퇴시키고 있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박 대통령이 재벌들에게 투자와 고용을 구걸하는 순간 경제민주화는 물건너갔다. 과거 재벌개혁에 실패한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전철이 재연될 위험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박근혜 정부가 재벌에 백기를 들면서 경제민주화와 경제활성화에 모두 실패할 위험성이 높다는 우려도 있다. 유종일 교수는 “한국의 투자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기 때문에, 우리 문제는 투자 규모가 아니라 투자 효율성이 낮은 데 있다. 투자 효율성을 높이려면 재벌위주 경제체제를 개혁해야 하는데, 반대로 재벌 압력에 굴복하면 박근혜 정부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