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남궁욱] 정부가 12일 하루에만 104개의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18대 국회가 임기를 개시한 5월 30일부터 지난 11일까지 제출된 정부 발의 법안은 모두 219개. 정부는 5개월여 동안 제출한 법안 수의 절반에 육박하는 ‘법안 폭탄’을 단 하루에 국회에 모두 투하한 셈이다.
정부가 이날 ‘벼락치기’ 법안 제출을 한 까닭은 전날 있었던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의 엄포 때문이다. 홍 원내대표는 1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장관직을 즐기고 일하지 않는 장관은 일하는 이명박 정부 아래선 필요가 없다”며 “12일까지 법안을 내지 않는 경우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해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홍 원내대표의 이 같은 발언이 전해지자 정부 각 부처엔 비상이 걸렸다. 부랴부랴 법안 제출 준비에 돌입했고 하루 만인 12일에 무더기 법안을 제출했다.
문제는 이 같은 법안 제출이 부실 입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정부 발의 법안은 국회에 제출하기 전 여당의 해당 정책조정위에 건네진다. 그런 뒤 실무 당정협의를 거쳐 민의가 반영된 법안으로 탈바꿈한다.
하지만 이런 과정 없이 국회에 제출된 정부 발의 법안들은 여당 의원들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상임위와 본회의를 통과하기 일쑤다. 때로는 꼭 필요한 법인데 여당 의원들의 ‘지원 사격’이 없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12일 제출된 104개 법안 중에서도 이런 법안들이 나올 수 있다. 실제로 한나라당의 한 정조위원장은 “담당 부처가 ‘OOOO 촉진법 일부 개정안’을 제출한 것을 아느냐”고 묻자 “처음 들어본 법안 이름”이라고 답했다. 그는 “중요 법안들의 경우에는 대부분 미리 설명을 들으려 노력하지만 이렇게 한꺼번에 법안이 쏟아지면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남궁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