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
소셜 디자이너(Socal Designer)’다. 우리 사회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찾아내고 실천하는 독특한 직업이다. 2000년대 초 참여연대 활동을 정리하고 아름다운재단을 설립하며 직접 창안한 용어로 지금까지 명함에 적어 넣는다. 현재 그는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로 이뤄진 ‘희망 네트워크’의 중심에 있다. 바로 박원순(53)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다. 박 이사는
“글로벌 금융 위기는 오히려 한국 경제가 거듭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새로운 대안 경제 시스템에 대한 본격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대기업보다 창조적 소기업이 희망”이며 “농업이야말로 새로운 블루오션”이라고 말했다. 때마침 희망제작소 설립 3주년을 맞은 박 이사를 지난 3월 24일 서울 안국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최근 경제 위기로 대안 경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그동안 성장이 무한히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 일종의 ‘성장 신화’가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게 지금 밝혀졌습니다. 지금의 생산성이 계속 달성될 것이라는 환상이 깨진 겁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경제 시스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어요. 그동안 그런 주장들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앞으로 더욱 많아질 겁니다.
한국은 지금까지 다른 나라를 따라서 여기까지 왔어요. 하지만 여기서 더 나가려면 창조적 자본주의, 창조적 경제 시스템, 창조적 기업이 필요해요. 그게 뭔가에 대해 이제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보통 국내총생산(GDP)은 기업에서만 나오는 것으로 아는데 그렇지 않아요. 영국은 전체 GDP의 20%를 사회적 기업에서 창출하겠다고 해요. 사회적 기업은 기업과 비영리단체의 중간이지요. 미국도 GDP의 7%가 비영리단체에서 나옵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영학석사(MBA)에는 사회적 기업이나 소셜 벤처 과목에 학생들이 몰리는데 한국은 가르치지도 않아요. 변화를 제대로 캐치해 따라가지도 못하고 있는 거죠.
어떤 방향의 변화를 느끼는지요.한국에서 활동하는 영국의 최고경영자(CEO)를 만났는데, 그분 말이
30년 전 영국에서 잘나가던 산업이 전부 일본과 한국에 와 있다는 겁니다. 영국에는 지금 자동차 회사가 하나도 없어요. 그러면
영국은 망했어야 하는데, 오히려 전보다
훨씬 잘 살아요. 한국 경제의 주축인 자동차 조선 철강은 어떻게 보면 전통시대의 ‘굴뚝 산업’입니다. 우리가 계속 갖고 있으면 좋지만 힘들어요. 당장은 아니겠지만 결국
10년, 20년, 30년이면 중국 인도 브라질로 다 갈 거예요. 우리에게 지금
대안적 고민과 산업이 필요해요. 정부가 선정한 10대 성장 동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에코 산업이나 커뮤니티 비즈니스, 창조적 아이디어 산업, 아트와 결합된 산업, 관광산업 쪽의 가능성이 엄청납니다.
농촌에서 그린투어리즘만 잘해도 소득을 몇 배로 끌어올릴 수 있지요. 도시화가 될수록 사람들은 자연에 목말라 해요. 아토피는 단순히 육체적으로만 오는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옵니다. 자살률 세계 1위, 이혼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 이런 것들이 다 그런 연장선이죠. 영국에선 농민들이 먹는 밥 먹여 주고 하룻밤 재워주면서 20~30달러씩 벌어요.
우리 주변에서 소홀이 하고 있는 것일수록 미래에는 빛을 볼 가능성이 커요. 또 흔히 경제는 경제인만 하고 경제를 고민해야 경제가 잘된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이제는 융합적 사고가 핵심이에요. 경제는 경제 외적인 요소를 고민함으로써 더 잘될 수 있어요.
융합적 사고는 어떤 겁니까.이를테면
예술가와 정보기술자가 함께하고, 우리 민속과 역사도 전부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캐나다의
‘태양의 서커스단’은 1년 매출이 현대자동차와 맞먹을 정도지요. 그런데 우리는 국립 서커스 학교조차 없어요. 목포에 가면 원도심이 있는데, 그걸 밀어버리고 주택을 짓는다고 해요. 정말 어이없는 일이지요. 옛날 유명한 동춘서커스단 자리가 거기에 있어요. 그래서 동춘서커스단을 복원하고 그 옆에 국립서커스 학교를 열자고 제안했지요. 그러면 아시아 최초이자 최고인 아트 서커스단을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북한 평양교예단을 데려와 스토리텔링을 더해 ‘심청전’이나 ‘춘향전’을 세계에 파는 겁니다.
한국인은 굉장히 창의적이고 예술적 재능이 많기 때문에 이것만 잘 열어주면 판도라의 상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소기업이 희망’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요.과거 한국 경제는 너무 대기업 중심이었어요. 물론 대기업도 중요하고 나름대로 성장해야 하지만 동시에 보완적인 것으로 창의적인 소기업, 우리 자신의 자산을 기초로 하는 소기업들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해외에도 진출해야 합니다.
외국에는 아주 강한 소기업들이 많아요. 독일에서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100대 소기업을 본 적이 있는데, 그중 극장에 설치하는 무대 커튼을 만드는 기업이 있었어요. 큰 것은 무게도 많이 나가고 창의적인 기술과 아이디어가 필요하지요. 우리도 이런 소기업이 많이 나와야 해요. 물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있어도 그걸 사업화해 기업으로 성공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정이지요. 정부 지원도 필요하지만 핵심은 마케팅이에요. 좋은 소기업들이 자신을 온전히 알릴 기회가 없는 겁니다. 우선 판매가 잘돼야 다음 단계로 제품을 업그레이드하고 디자인도 개량할 수 있는데 원천적으로 알릴 기회가 없으면 안 되는 거죠.
다행히 희망제작소는 좋은 사회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 소기업을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할 수 있지요.
소기업발전소를 만들었는데, 어떤 활동을 합니까.아이디어는 좋은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을
‘희망소기업’으로 선정해 지원합니다. 얼마 전 소기업들을 작가들이 방문해 글을 써 인터넷에 연재했어요. 그것을 보고 방송이나 신문사가 관심을 많이 갖지요. 또 컨설팅이나 디자인을 도와주는
‘착한 전문가 그룹’이 있어요.
인터파크에 ‘희망소기업’은 무료로 입점할 수 있게 돼 있고 디자인은 디자인진흥원이 무료로 해 줍니다. 이미경 CJ 부회장의 지원으로 CJ홈쇼핑 채널에 무료로 나갈 수 있게 약속을 받았는데, 아직은 기업들이 일정한 수준에 오를 때까지 1~2년 더 준비하려고 해요. 최근에는 희망소기업에 투자하는 국민기금을 만들어 보자는 논의도 시작했지요. 올해는 소기업발전소 활성화에 주력할 생각이에요.
희망소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성입니다. 그런 점에서
사회 취약 계층 지원에 초점을 맞추는 마이크로크레디트와는 차이가 있지요.
3년째 전국을 돌며 희망 탐사를 하고 있는데요.2006년 3월부터 시작해 꼭 3년이 됐지요. 광주와 전남을 출발해 전국을 돌며 1000명 정도를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지난번에 의정부 동두천 양주 포천을 다녀왔고 이제 경기도 북부지역 몇 곳이 남았어요. 3년 동안 다니니 지역에 관한한 전문가가 됐어요. 현장에서 만난 분들의 지식과 고민을 함께 나누면서 얻은 것이지요.
현장에 가면 비전이 나옵니다.
희망 탐사에서 무엇을 느꼈습니까.외형적으로 보면 절망적이지요. 농촌은 고령화되고 지역사회는 붕괴 직전이에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를 살리고 농업을 재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례들을 확산하고, 그런 게 가능하도록 제도를 정비해 주면 오히려 농업이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일본 언론들은 ‘농업이 일본을 구한다’는 특집 기사를 대대적으로 싣고 있어요. 실제로
일본은 농업을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보고 있지요. 탈샐러리맨 현상으로 농업 경영자가 크게 늘고 있어요. 도시에서 마케팅이나 금융 쪽 일을 해 본 사람은 시골에 가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요. 농업도 농업만으로 접근하면 안 됩니다. 우리 시대는 융합의 시대예요.
정보기술(IT) 전문가, 예술가들이 농업을 해야 합니다. 또 농업에도 고수가 있지요. 희망 탐사에서 만난 한 농민은 비닐하우스 자동 개폐기를 만들어 이 분야 최고의 선진국이라는 덴마크 네덜란드 이스라엘에 100억 원어치를 수출합니다. 농업 발명왕이지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있으면 도전할 것이 너무 많아요.
약력: 1956년 경남 창녕 출생. 75년 서울대 법대 중퇴. 79년 단국대 사학과 졸업. 91년 런던 정경대 수료. 80년 사법시험 합격(22회). 82년 대구지검 검사. 86년 대한변협 인권위원. 95년 참여연대 사무처장. 2002년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현). 2003년 사법개혁위원회 위원. 2004년 포스코 사외이사. 2006년 희망제작소 상임이사(현).
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