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부모, 미국선 '강력 처벌' 받는다

2012. 9. 6. 08:51지구촌 소식

한국부모, 미국선 '강력 처벌' 받는다

내팽개쳐진 아이들 '성범죄 표적'
방임신고 3000명… 방과후 3시간 이상 부모 없이 방치 55만명
부모탓 말고 정부가 나서야
입력시간 : 2012.09.06 02:41:47
수정시간 : 2012.09.06 08:02:02

 

부모가 돌보지 않고 방임해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된 아동 수가 지난해에만 3,000명에 달했다. 가정의 울타리 밖에 내팽개쳐진 아이들은 성폭력 등 흉악 범죄에 고스란히 노출돼있어 더 이상 부모에게만 맡겨둘 문제가 아니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아동 방임에 대한 개념규정과 부모의 책임을 명확히 해 개입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5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의식주를 포함, 기본적인 보호 양육 치료교육을 받지 못한 만 18세 미만 아동이 2,919명으로 전체 아동학대 피해자(9,148명) 중 31.9%나 됐다. 지난해 학대로 사망한 아동 13명 중 8명(61.5%)이 제때 음식이나 의학치료 등을 제공받지 못한 방임으로 숨졌다.

이 수치는 보건복지부가 아동학대 예방 및 조사를 위탁한 전국 45개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된 수치로, 전문가들은 신체상으로 피해가 드러나지 않는 방임의 특성상 실제 방임 아동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복지부의 2009년 아동청소년종합실태보고서에 따르면 만 6~12세 아동 중 평일 방과 후 3시간 이상 혼자 혹은 형제ㆍ자매끼리만 있는 아동이 54만9,693명에 달했다. 미국 등 선진국은 만 13세 미만 아동이 보호자 없이 혼자 있는 것을 방임행위로 규정, 부모를 처벌하고 있다.

방임은 그 자체로도 가혹하지만 성폭력 살인 등의 범죄에 아동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것이라 더욱 위험하다. 하지만 현행 아동보호법에는 방임에 대한 명확한 정의조차 없다. 방임 부모에 대한 처벌도 없고 지원도 없어 한번 방임된 피해 아동은 신고가 되도 재방임(지난해 266명)되기 십상이다.

신고를 받은 아동보호전문기관 직원은 부모 등 방임 가해자가 거부하면 현장 조사를 할 수 없다. 지난해에도 전체 방임 가해자 중 164명(5.6%)은 전문기관이 아예 만나지도 못했다. 또 선진국은 게임 중독에 걸린 부모가 아이를 방임했다면 중독을 치료하는 등 방임의 원인을 찾아 가족기능을 회복하도록 돕지만, 우리나라는 가해자를 상담(81.3%)하기만 할 뿐 심리치료서비스(3.5%)나 가족기능강화서비스(2.4%)는 거의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어떤 식의 자녀 양육이든 부모의 몫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바꿔 부모가 아동 학대의 주범이 될 경우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양희 성균관대 아동청소년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는 방임 등 아동 학대에 너무 관대하다"며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부모의 문제를 치료하고 돌봄서비스 등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美선 홀로 하교하거나 도서관 가도 신고


 

남보라기자


우리나라에서 방치된 아동을 보고도 신고를 하거나 부모를 처벌하는 경우가 드문 이유는 그만큼 개념 정립과 지원의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과 달리 국내는 관련 규정이 전무한 상태다. 맞벌이 가정이나 취약계층을 위한 아동 보호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 부모가 아동을 방임해도 책임을 묻기 힘들다. 전문가들은 "방임에 대해 명확히 규정하고 지원도 제대로 해서 아동을 방치하는 부모에게 책임을 엄격히 물을 수 있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아동복지법은 '아동 방임은 학대'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아동의 연령이나 방치 시간 등 기준은 없다. 아동복지법 17조에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 보호·양육·치료 및 교육을 소홀히 하는 행위'라고 명시돼 있을 뿐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방임 개념이 모호해서 학교에 안 오고 주변을 배회한다거나 겨울인데 가을 옷을 입고 다니는 아이가 있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그때 그때 방임사례로 간주한다"고 말했다.

반면 미국은 '13세 미만의 아동이 보호자 없이 1시간 이상 혼자 있는 상태'를 방임 행위로 간주한다. 아동이 혼자 하교하거나 길거리를 다니는 것도 금지돼 있다. 이양희 성균관대 아동청소년학과 교수는 "미국에선 아이가 혼자 도서관에 오면 사서가 '아이가 혼자 도서관에 왔다'고 보호기관에 신고하고 관계자가 부모를 조사, 권고 조치할 정도로 철저히 운영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이웃은 신고의무자가 아니지만 서양에서는 이웃도 방임 상황을 목격하면 반드시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부모에게 엄격하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건 그만큼 지원도 잘 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은 각 지역의 아동센터가 아동이 방치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다양한 서비스를 연계하거나 지원하는 지역 거점센터의 역할을 한다. 알코올 중독 등 심신미약으로 제대로 아이를 돌볼 수 없는 부모들을 위한 치료, 상담은 물론 부모역할 교육, 취업지원까지 이뤄지고 맞벌이 등으로 퇴근이 늦는 부모를 위해 시설이나 가정에 직접 파견돼 아이를 돌보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김승권 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방임을 이유로 부모를 처벌하려면 늦은 시간까지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아동센터나 저렴한 비용으로 베이베시터를 둘 수 있는 국가적 인프라가 마련돼야 한다"며 "지역아동센터가 있긴 하지만 직접 찾아오는 사람에게만 서비스를 제공하고 운영시간도 길지 않는 등 시행되고 있는 정책은 극히 제한적"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