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갑부들 ‘기부열전’…관심사도 가지가지

2013. 2. 18. 21:57C.E.O 경영 자료

세계 갑부들 ‘기부열전’…관심사도 가지가지

경향신문 | 김향미 기자 | 입력 2013.02.18 15:38

 

세계 갑부들이 얼마나 큰 집에서 살고 어떤 차를 타는지도 궁금하지만 이들이 '돈을 어떻게 사회에 내놓는가'도 세간의 관심거리다. 지난달 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광산재벌이 '기부서약'에 동참했다. 기부서약은 재산의 최소 절반을 기부하겠다는 약속이다. 아프리카인 최초로 기부서약에 동참하는 이도 나와 주목을 받았다. 또 '기부'에 앞장서온 빌 게이츠는 최근 유전자조작(GM) 종자 개발과 보급으로 개발도상국의 식량증산을 돕겠다고 밝혔다. 기부에 동참하는 갑부들도 늘어나고, 이들이 기부를 하는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아프리카 최초 기부서약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광산재벌 패트리스 모체페 아프리카레인보우미네랄(ARM) 회장(51)은 아프리카인으로는 처음으로 '기부서약'에 동참했다. 그는 지난달 30일 성명을 내고 "기부의 필요성과 도전정신이 매우 크다"며 재산의 반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모체페 회장의 기부금은 그가 1999년 아내와 함께 세운 '모체페 가족 재단'에 제공된다.

패트리스 모체페 회장. 위키피디아이 재단은 교육과 농업 증진 사업, 그리고 다양한 사회 개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모체페 회장은 "사회적인 혜택을 받지 못해 소외감을 느끼는 남아공의 빈곤층을 돕는 데 기부금을 쓰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기부는 내가 살아오면서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의미"라고 말했다.

모체페 회장은 아프리카에서 8번째로 많은 재산을 보유한 부호다. 재산이 27억달러(약 2조9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기부서약'은 미국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58),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83)이 2010년 직접 참여하고 캠페인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70명이 넘는 억만장자들이 동참했다.

"아시아 노벨상 만들겠다"= 대만의 부호인 새뮤얼 인 루엔텍스 그룹 회장(62)은 지난달 30억여만달러(약 1100억원)을 들여 일명 '아시아 노벨상'을 창설한다고 밝혔다. 인 회장은 '당(唐) 상(賞) 재단'을 설립하기로 했다. 이 재단 이름은 문화·과학 연구가 활발했던 중국 당나라의 국명에서 따왔다.

'당 상'은 국적에 관계없이 생물약제학·지속 가능한 개발·중국학·법규 등 네 분야에서 중요 연구를 이끈 이들에게 내년부터 격년으로 수여되며 수상자는 대만의 저명 연구기관인 대만중앙연구원(아카데미아 시니카)이 구성한 특별위원회가 선정한다. 수상금은 5000만대만달러(약 18억원)로 기존 노벨상 상금인 120만달러(약 13억원)보다 많다. 인 회장은 "세계와 인류에 유익한 연구가 더 많이 이뤄지고 중국 문화가 발전하며, 세상이 더 살기 좋은 곳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의 교육 및 자선 분야에 기부를 아끼지 않는 것으로 명성이 높다.

인 회장은 1980년대 중국 철도 건설사업에 일부 자금을 댔다. 그는 중국 정부와 국영기업에서 일하는 걸출한 인재들을 배출하는 베이징대 광화관리학원을 설립하기도 했다. 인 회장은 앞서 재산의 95%를 사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세계 부자 순위 (자료: 위키피디아, 포브스 선정. 2012)■"이름도 바꿔야"= 중국의 갑부 천광뱌오(陳光標·45) 장쑤황푸 재생자원이용유한공사 회장은 최근 자신의 이름을 천광판(陳光盤)으로 바꾼다고 밝혔다. 이름의 마지막 글자를 '표할 표(標)' 대신 '소반 반(盤)'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그는 "이름은 일종의 부호일 뿐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사회에 양식 있는 사람들이 자원과 물자 절약 운동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천 회장은 물·전기·식량 절약 운동과 함께 결혼식·명절 행사 등에서의 형편에 맞지 않는 과소비 타파 캠페인을 펴고 있다. 그는 2명의 자녀를 본명 대신 '환경보호'와 '환경'을 각각 의미하는 '환바오(環保)', '환징(環境)'이라고 각각 부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천 회장은 근검절약이나 환경보호 캠페인만 벌이는 게 아니다. 그는 2008년 쓰촨 대지진 때 36시간 만에 2000㎞ 떨어진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140여명을 구조해 중국 당국에 의해 '영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 지난해 50억위안(약 8700억원)가량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선언했다.

세계 최고갑부 "식량 증대가 중요해"= 세계 갑부 1, 2위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빌 게이츠와 카를로스 슬림(73). 이들은 최근 개발도상국의 식량 증산을 위해 유전자조작(GM) 종자 개발과 보급에 나섰다. 국제 옥수수·밀개량센터(CIMMYT)의 생명공학연구소 설립에 함께 2500만달러(약 271억원)를 기부하기로 한 것이다.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 홈페이지지금까지 GM 종자는 대기업들이 주로 개발해왔다. 이들 대기업은 GM 종자 사용에 높은 가격을 매기고 실수로라도 자신들이 특허를 보유한 종자를 대가 없이 사용하면 소송도 불사해왔다. 옥수수·밀개량센터장 토마스 럼킨은 "새로 설립된 연구소는 현재 주로 사용되는 GM 종자를 확보해 개도국의 가난한 농부들에게 보급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카를로스 슬림 회장. 위키피디아슬림과 게이츠의 기부금으로 GM 종자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해 보급하거나 직접 개발을 통해 개도국에 유전자조작 작물의 혜택을 전달하겠다는 것이다. 게이츠는 폭넓은 유전자조작 작물 이용과 관련해 "법적인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특허를 받기는 했지만 로열티는 내지 않아도 되는 GM 작물을 보급하는 것 또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발도상국 식량 증대를 위한 일이라 할지라도 모두의 환영을 받는 것도 아니다. GM 종자 사용은 환경단체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그린피스 멕시코지부의 알레이라 라라는 "자선과 기아퇴치라는 명목하에 이들은 유전자변형작물을 확대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익명'에 숨은 이런 기부도 있다= 부자들의 '기부'가 공익을 위해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 14일 "미국에서 지난 수년간 보수 성향의 부호들이 막대한 기부금을 대며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부정하는 활동을 양성해 왔다는 주장이 제기됐다"고 보도했다. 2002년부터 2010년까지 총 1억2000만달러(약 1300억원)에 이르는 익명 기부금이 이른바 '기후변화 회의론'을 펴는 싱크탱크 및 시민단체 100여 곳에 뿌려졌다는 것이다.

미국 워싱턴DC 인근인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에 거점을 둔 '기부자 트러스트'와 '기부자 자본펀드' 등 두 곳의 모금기관에 이같은 기부금이 모여들었다. 기후변화 회의론을 지지하는 단체들은 이들 기관을 통해 받은 보수 성향 부유층의 돈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부인하거나 환경 규제를 반대하는 등 지구온난화 문제를 깎아내리는 활동을 폈다.

미국 공화당의 정책과 궤를 같이하는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들이나 정체불명의 '정책 포럼', 기후변화 회의론을 주장하는 과학자 등에 자금이 흘러들었다. 심지어 환경운동가인 앨 고어 전 부통령을 공격하는 영화 DVD 구매에도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드렉설 대학 사회학과의 로버트 브룰 교수는 "이는 일종의 조직화한 '반 운동'"이라며 "이 많은 돈이 어디서 오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기부자 트러스트는 거대한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