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방북 기업인들이 ‘형법’과 ‘국가보안법’ 조문을 정독해야 하는 이유

2018. 9. 17. 13:40C.E.O 경영 자료

[기자수첩] 방북 기업인들이 ‘형법’과 ‘국가보안법’ 조문을 정독해야 하는 이유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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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이른바 ‘4대 그룹’ 총수들을 데리고 북한 김정은을 만나러 간다. 임종석 청와대비서실장은 1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 4대 그룹 최고경영진을 비롯해 52명으로 구성된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 명단을 발표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은 대외일정 관계로 김용환 현대자동차 전략 기획 담당 부회장을 대신 보내기로 했다.
 
'미국의 소리'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는 이와 관련해서 “모든 유엔 회원국이 유엔 안보리 결의에 의해 금지된 ‘특정 분야 제품(sectoral goods)’을 비롯해 유엔 제재를 완전히 이행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즉 국내 기업인들이 ‘정치적 이유’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받는 북한과의 경제 협력에 참여할 경우 제재를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한 셈이다.
 
국제사회는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핵·미사일 도발을 끊임없이 강행하는 북한과의 경제협력은 세계 시장을 상대로 하는 글로벌 기업에는 ‘자살’과 같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과 구체적인 대북 투자를 논의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히 미국이 대북제재 흔들기를 시도하는 중국과 러시아를 압박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하는 상황이란 점을 감안하면 일개 기업이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미국을 상대로 ‘위험한 도박’을 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어설프게 북한과 경제 협력을 할 경우 국제사회의 집중포화를 받을 게 뻔하다. 내수보다 수출 비중이 큰 국내 대기업 현실을 감안하면 현재 국면에서 대북 투자를 논의할 경영자는 상식적으로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분초를 다퉈 세계시장에서 활로를 모색해야 할 이들이 방북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왜 가는 것일까. 이 부회장은 현재 소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서 뇌물 제공 혐의로 재판을 받는 중이다. 문재인 정부의 공정거래위원회는 삼성 지배구조의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이 부회장을 직접 거론하며 “3년 안에 삼성이 지배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방북하는 건 혹시 ‘대북경협’을 강조하는 문재인 정부에 ‘정치적 사면’을 기대하는 건 아닌가 하는 세간의 불필요한 의심을 사는 행위인 셈이다. 이와 관련,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재판은 재판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보고 ‘일은 일이다’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지만, 객관적으로 삼성이 북한과 같이할 ‘일’이 무엇인지 꼽는 건 쉽지 않다.
 
▲반도체 ▲전자제품 ▲통신기기 ▲선박 ▲해양생산설비 등 기술집약적 산업 중심의 ‘삼성’이 개성공단 입주 기업처럼 ▲시계 ▲냄비 ▲신발 등을 만들 일은 없다. 삼성이 영위하는 사업 중 일부가 북한과 ‘합작’할 여지가 있다고 해도 조기 추진 가능성이 없고, 온갖 ‘정치적 위험’을 짊어져야 할 ‘대북 사업’에 투자하는 행위는 ‘배임’이다. 만일 방북 기업인들이 주주와 회사에 재산상의 손해를 끼칠 걸 알면서도 분위기에 휩쓸려서 또는 모종의 '이유' 때문에 대북 투자를 결정한다면, 차후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현대아산의 금강산 관광시설과 개성공단의 경우 우리 기업들이 투자하고 국민이 세금으로 지원해 줬지만, 결국 북한이 몰수한 과거를 볼 때 ‘대북 투자’는 ‘결론’이 정해져 있는 ‘도박’이란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더구나 북한에 투자 명목으로 들어간 현금과 현물은 핵·미사일 개발과 남침용 군비 확장에 악용될 수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단순히 ‘배임’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18일,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방북하는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기업인들은 ‘형법’과 ‘국가보안법’ 조문을 정독하고 가길 권한다. 특히 형법상 ‘외환(外患)의 죄’ 중 “대한민국의 군사상 이익을 해하거나 적국에 군사상 이익을 준 자는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 ‘일반이적죄’에 대해 법률자문을 받길 바란다.
 
“반국가단체(북한)의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가 그 목적 수행을 위한 행위를 한 때”의 경우에 대한 처벌을 명기한 ‘국가보안법’ 제4조(목적수행)과 관련해서 지금이라도 회사 법률팀의 조언을 구하는 게 회사의 손실을 방지하고, 개인의 안위를 지키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박근혜 청와대'가 설립을 주도한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했던 기업인들이 해당 출연 행위가 후일 뇌물 공여' 혐의를 받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듯이, 지금의 대북 투자로 인해 나중에 '국민적 지탄'과 함께 '사법 처리 대상'이 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보다 앞서,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북한과의 '협력'에 따라 국제사회 제재를 받는다면, 국가 경제는 그야말로 '파탄지경'에 빠지게 되므로 자신과 기업, 국가의 앞날을 위해 그 행보를 신중하게 해야 한다.
 
 
글=박희석 월간조선 기자